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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과 비아냥과 유혹에 맞서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8.07 17:30
그들이 날마다 모르드개에게 말하였지만,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자 그들은 모르드개의 일이 (끝까지) 온전할지 보고자  하만에게 (이를) 알려주었다. 그(~모르드개)가 자신이 유다인임을 알렸기 때문이었다.(에스더 3,4)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가 되기 전에 그에게 유다 사람임을 말하지 말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왕후가 된다는 것은 생각키 어려운 일이지만 에스더는 그렇게 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왕에게 행운이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 살해 음모를 알게 되었고 에스더가 이를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알려 음모를 무산시켰기 때문입니다. 흔히 호사다마라고 하는데, 왕은 그후 하만이란 자를 높이고 그에게 꿇어 절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 해도 모르드개는 따를 수 없었습니다.

위에 있는 그의 말로 미루어보건대 그 이유는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호불호를 잠시 옆으로 밀어놓고 보면 정말 대단한 기백입니다. 그가 식민지 종주국에 사는 식민지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 하만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 ⓒGetty Image

오히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더 초조합니다. 왜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고 거듭 묻습니다. 몇날 몇일이고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사촌 에스더가 왕후여서 아니면 그가 왕 시해 음모를 고발해서 공을 세웠기에 그리 할 수 있을까요? 설령 그렇다 해도 이것은 무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유다인'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그렇게 해야하고 또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자존감의 근원입니다. 디아스포라로 식민지 제국에 와서 살아야 함에도 그 삶을 견디고 이기게 하는 것이 유다인 의식입니다. 모르드개의 이 태도를 선민의식이라고 폄훼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높이고 그에게 절하게 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마치 숭배해야 할 대상처럼 높인 왕은 어떤 존재가 될까요?) 그는  하나님과 그의 구원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위협과 비아냥과 유혹에 맞서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식민지 사람이라는 처지에도 비루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고 하나님은 그와 그의 민족을 위기 속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믿음은 자존감을 높이고 용기있게 하고 사랑하게 하며 꿈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비상하게 하는 오늘이기를. 침묵이 아니라 섭리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고 새힘으로 달려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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