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보도
건대입구역 K안경점, 또 하나의 궁중족발 사건도시화와 자본의 탐욕을 어떻게 제어할까
권이민수 | 승인 2019.08.20 18:11

2018년 6월 세입자를 갖은 수단을 동원해 내쫓으려던 건물주의 횡포에 못 이겨 결국 세입자가 망치를 들게 된 한 사건이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대서특필되었다.

서울한복판의 민낯, 궁중족발 사건

이른바 ‘궁중족발 사건’이었다. 2년간의 분쟁으로 세입자(궁중족발 사장)가 건물주를 망치로 위협하는 과정에서 세입자와 건물주가 서로 몸이 엉키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결국 궁중족발 사장은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 또 하나의 궁중족발 사건으로 회자고 있는 건대입구역 K안경점. 건물주의 횡포로 상가 세입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권이민수

이 사건의 시작은 새로운 건물주가 당시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97만원이던 ‘궁중족발’의 임대료를 보증금 1억원, 월세 1200만원으로 보증금은 3배, 월세는 무려 4배 가량 올려달라고 요구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보호받지 못하는 임차상인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고 많은 시민들의 공감과 분노를 샀다. 이러한 여론의 형성은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궁중족발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하고도 2달이 지났음에도 서울의 새로운 명소마다 건물주와 임차상인들의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소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때문이다. 그 지역에서 거주하던 상인들이나 예술인들이 한 지역의 상권을 살려놓으면 투기자본이 모여들게 되어 결국 지역 상권을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던 상인들과 예술인들이 높아진 월세 등의 이유로 그 지역에서 쫓겨나게 되는 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독일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언급했다. ⓒGetty Image

‘신사’(상류층, 고급)를 뜻하는 gentry에서 파생된 말로 “낙후된 지역을 고급화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임대료가 저렴하고 도시화가 덜 진행된 지역에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고 지역이 발전하면서 기존에 거주 중이던 원주민을 밀어내는 현상을 일컫는다. 독일 출신의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최초로 사용했다.

“One by one, many of the working class quarters of London have been invaded by the middle classes – upper and lower. Once this process of ‘gentrification’ starts in a district it goes on rapidly until all or most of the original working class occupiers are displaced and the whole social character of the district is changed.”
“런던의 많은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상류층과 중상층에 의해 하나씩 하나씩 점령당했다. 일단 한 지역에서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이 시작되면 모든 혹은 대부분의 원주민 노동자 거주자들은 대체되고 그 지역의 전체 사회적 특성이 변화될 때까지 빠르게 진행된다.”(루스 글래스, London: Aspects of Change, 1964).

지금 쓰여졌다고 해도 이질감이 없는 이 문장은 이미 1964년 영국 런던에서 진행되었던 현상이었다. 이제 이 젠트리픽케이션이 서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평가되고 있다.

또 하나의 궁중족발, 건대입구역 K안경점

서울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인 건대입구역 부근도 젠트리피케이션이 한창이다. 건대입구역 부근 K안경점을 운영하는 K씨는 2018년 10월 건물주와의 재판 후 법원을 나오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려졌다. 뇌졸중이 발병한 것이었다.

K씨는 쓰러진 직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신체의 왼쪽이 마비되어 결국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평소 일도 열심이고, 취미로 골프나 등산을 즐길 정도로 건강했던 K씨였지만 2015년부터 지속된 건물주와의 갈등이 그의 건강을 앗아간 것이다.

동업자인 H씨에 따르면 “K씨는 건물주와의 분쟁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또한 H씨 본인도 “심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법적, 제도적 분쟁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이러한 분쟁에 익숙할 리 없는 임차상인들의 고통은 가중되는 것이다.

K안경점은 2013년에 5년 계약을 맺으면서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업은 별 탈 없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2015년 C씨가 새로운 건물주로 오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아직 계약이 만료되지 않았음에도 새로운 건물주는 인테리어를 새롭게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가게를 비울 것을 종용했다. K씨와 H씨가 이를 거부하자 계약 이전부터 건물 뒤에 설치되어 있던 가건물을 핑계로 건물이 무너질까 염려된다며 소송을 걸어 K안경점을 내쫓으려 했다.

물론 건물주는 인테리어 이후 K안경점을 1순위로 들어올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조하긴 했다. 그러나 보증금과 월세는 그대로가 아니었다. 심지어 얼마나 올리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월세와 보증금을 얼마나 올릴 것인지를 묻는 H씨의 질문에 건물주 C씨는 묵묵부답이었다. H씨는 “우리들이 (가게에) 돈도 투자하고 길도 닦고 굉장히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는데 그걸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무지막지하게 내쫓으려고만 하면, 우리는 살길이 없다. 같이 살 수 있게끔 건물주가 우리와 대화를 했으면 좋겠는데 일체 없다”며 답답해했다.

처음 소송에서 K안경점은 승소했다. 하지만 계약기간 5년이 지나자마자 이번에는 건물주가 명도소송을 걸어왔다. 즉,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낙찰 받고 대금을 지급한 후 6개월이 경과됐음에도 점유자가 자진해 건물을 비워주지 않을 때 낙찰인이 관할법원에 제기하는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이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으면 강제로 점유자를 내보낼 수 있다.

현재 K안경점 뿐 아니라 안경점 위에 위치한 헤어숍도 건물주 C씨와 분쟁 중에 있다.

▲ 궁중족발 사건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었지만 급속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권이민수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문제없는가

지난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을 이끌었던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한 관계자는 K안경점 분쟁을 두고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건물주가 대화로 풀 수 있는 부분을 활용하지 않았기에 이와 같은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한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고 말았다”고 평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이 공고해진 사회, 그 사회에 기반하여 실질적으로 차등 적용되는 법, 그 법을 등에 업고 자신의 재산권만 보호하고자 하는 임대인, 이 모든 것이 뒤섞여 발생한 것이 K안경점의 사례”라며 이러한 건물주와 임차상인의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법의 개정과 문화의 변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 관계자는 건물주 C씨도 한때 임차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임차인의 권리를 행사하여 권리회수 기회 보호도 받았던 전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임차인의 경험과 권리에 대한 이해가 있는 C씨가 오히려 그 경험을 이용해 다른 임차인을 쫓아낸다는 사실이 모순되는 것이다. 

K안경점 H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줄곧 “싸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분쟁에 휘말린 임차상인들은 ‘싸움꾼’이 아니라 장사를 하면서 생존을 이어가길 원하는 ‘상인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싸우고 싶지 않은 임차상인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싸움의 장으로 몰아넣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싸움을 멈추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이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권이민수  simin004@nate.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이민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