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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활동 감시와 윤리적 투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끈다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15)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19.08.20 18:22

하나님 앞에 서 있는 회중은 동시에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 안에서 세상을 형성할 책임을 진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교회는 참여의 원칙, 생태학적 규율의 원칙, 정의의 원칙, 인간존엄성 보장의 원칙 등 기독교 경제윤리의 네 가지 원칙들에 따라 교회의 구성원들이 경제 활동에 나서도록 교육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오늘의 세계에서 기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만큼 기업 활동에 대한 감시와 윤리적 투자를 통하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큰 과제가 되었다. 

기업친화적인 국가

지난 3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경제 도그마로 자리를 잡으면서 기업의 소임은 영리추구이고, 국가는 기업이 자유롭게 영리를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제도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한정하여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기업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지나쳐 기업 활동의 자유를 억누르는 것은 악으로 치부되어 왔다. 설사 국가의 규제가 최소한에 그친다 하더라도 주주들의 경영 통제가 활성화되어 있는 조건 아래서는 기업이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 염려가 없다는 주장이 목청을 올렸다. 신자유주의 도그마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기업이 자원할당의 효율성을 추구하고, 온갖 수익 기회를 활용하여 영업수익을 최대화하지 않으면, 주주들이 경영진을 문책하거나 개편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경영진의 책임 의식이 높아진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적 요구가 기업 경영의 표준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기업 경영은 이윤극대화의 강박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생산의 세계화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교역을 국제적 규범으로 확립한 세계무역체제 아래서 생산의 세계화는 날개를 달았다. 상품의 제조공정이 잘게 분할되고, 공정 운용비용이 가장 싼 지역으로 생산 입지를 옮기는 공정별 세계 분업이 촉진되고, 각 공정에서 생산되는 각종 부품을 모아서 완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기 좋은 곳에 생산 플랜트를 설치하는 생산의 세계화는 다국적 기업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 생산 공정의 세계화와 부품 공급을 둘러싼 세계적인 경쟁은 완제품 생산을 지배하는 거대기업이 수많은 중소기업들과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체제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빚어내기도 했다.

▲ 시민의 한 사람으로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은 의무이자 권리이다. 이를 통해 기업이 윤리적 투자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Getty Image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국내외 기업들이 국내총생산에 더 많이 기여해 줄 것을 기대하고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들고 나왔다. 국가는 기업의 요구에 따라 사회적 규제와 환경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고, 다양한 계급, 계층의 이해관계를 조율하여 공익을 최대한 실현하라는 계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대통령이 나서서 권력이 기업에 넘어갔다고 인정하는 나라가 어떻게 기업을 규율할 수 있겠는가? 기업이 노동과 자본의 이익에 기여하여야 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세상 물정 모르는 도덕군자의 한가한 훈계 정도로 여겨져 씨알조차 먹히지 않게 되었다.  

기업과 시민사회

요즈음 시민단체들이 위축되었다고들 한다. 시민단체들에 정작 시민이 없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디지털 정보화가 고도로 발달한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역량은 엄청나게 커졌다. 최근 1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경험한 촛불군중의 힘은 우리나라에서 시민사회의 역량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월 초에 아베 내각이 대한 수출규제에 착수하자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이 벌이고 있는 일본 상품 불매 운동과 일본 여행 보이콧 운동의 위력도 시민사회의 힘을 입증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국가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화 국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국가가 쇠퇴하고 기업 친화적인 정책이 관철되면서 시장의 무질서가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기업에 대한 감시 기능, 압력 기능, 향도 기능을 떠맡지 않을 수 없다. 시민사회는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세력들을 감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여 국가가 나서서 그 세력들을 제재하게 하든지, 국가에 압력을 가하여 시장의 무질서를 규율하는 입법 활동에 나서게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시민사회는 윤리적 투자 운동을 조직하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이끄는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초국적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이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활동도 초국적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다. 

기업 활동의 감시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은 엄청나게 크다. 기업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상품을 공급하고, 세금을 납부하고, 기업의 환경을 이루는 사회공동체와 국가를 위해 특별히 기여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기관으로 존립하기 위하여 합리적 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사회적 책임을 지는 한 가지 방식이다. 기업 내부의 지배구조를 민주화하여 성공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기업의 환경을 이루는 시민사회와 소통하여 기업 운영의 시민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이다.

시민사회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기업 활동을 감시하여야 한다. 이 일을 잘 하려면, 우선 감시 목록부터 제대로 작성해야 할 것이다. 감시 목록은 기업 내부에 관련된 목록과 기업의 환경을 이루는 사회에 관련된 목록으로 나누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첫째, 기업 내부에 관련해서는, 경영 전권으로 인정되어 온 기업의 경제정책, 인사정책, 사회정책 등이 자본의 이익에만 기여하고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가를 감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목록은 한없이 길겠지만 다음의 몇 가지만큼은 빼놓을 수 없다.

▲ 기업이 임금 착취, 열악한 노동조건, 장시간 노동 강요 등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 기업이 일터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외면하거나, 노동자들을 기업 운영의 책임 있는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고, 단지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가?
▲ 기업이 해고회피 노력이나 사회계획을 마련하지 않고서 경영조건의 변화를 빌미로 삼아 고용조정에 나서고 있지 않는가?
▲ 기업이 노사교섭을 단위사업장에 고착시키고 노동측 교섭대표들을 사회심리적 강박상태에 밀어 넣고 있지 않은가?

둘째, 기업의 환경을 이루는 사회에 관련해서 기업의 책임을 논할 경우에는 감시 목록은 좀더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목록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망라되어야 할 것이다.

▲ 기업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실현하지 못하여 자원할당의 효율성 측정을 어렵게 만들거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 기업이 경영자의 황제식 전횡이나 기업 내부의 의사소통의 형해화로 인해 기업 성공의 잠재력을 잠식하고 있지 않은가?
▲ 기업이 기업 활동이 기업의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를 방치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사회비용과 환경비용을 외부화하고 있지 않은가?
▲ 기업이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을 기업 경영에 내부화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 기업이 지역사회에 등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
▲ 기업이 문어발식 경영과 내부거래를 통해 실질적인 시장권력을 독점하고 있지 않은가?
▲ 기업의 경영자가 관료적 부패나 정치적 부패에 연루되어 있지 않은가?

만일 시민사회가 이와 같은 기업들을 감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면, 그 기업들은 시민사회에 의해 직접 제재당할 수도 있다. 기업 이미지를 땅에 떨어뜨려 기업 브랜드 가치를 하락시키거나, 상품 불매 운동을 조직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일이지만, 나이키가 베트남에 설치한 공장을 운영하면서 건강에 극히 해로운 작업장 환경을 현지인 노동자들에게 강제한 것이 시민단체들에 의해 적발된 후, 미국의 소비자들은 대대적인 나이키 상품 불매 운동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개별적인 대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기업들을 제재하여 시장질서를 바로 세우는 입법 활동에 나서도록 국가를 설득하거나 강제하는 일이다.

윤리적 투자

시민사회는 윤리적 투자 운동을 조직하여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영어권 세계에서 윤리적 투자 운동은 19세기에 퀘이커나 감리교 등의 종교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주로 기업문화나 고용조건 등에 관심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주식 투자에 나섰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감리교는 주식투자를 장려하되, 술의 제조나 도박과 연루된 기업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그 후 주식투자와 관련된 윤리적 판단 규준들을 세밀하게 작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기울어졌다. 베트남 전쟁 기간에는 세계평화펀드를 조성하여 전쟁에 개입한 기업들에 투자하지 않도록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였고, 1980년대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에 아랑곳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반대운동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사례들은 매우 많다.

윤리적 투자 운동의 주체는 개인일 수도 있고, 개개인들의 출자로 구성되는 펀드일 수도 있다. 개개인의 투자는 분산되어 효과가 적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펀드를 형성하여 윤리적 규준에 따라 주식 투자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것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투자에 앞서서 투자의 우선순위를 윤리적으로 재고하도록 촉진하는 효과를 갖는다. 영국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펀드들이 50개 이상 조직되어 있으며, 이 펀드들은 사회적인 규준들과 생태학적 규준들에 따라 투자 대상을 선정하고 이를 생활세계에 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 펀드들의 자산은 수 억 파운드에 이른다고 한다.

윤리적 투자 운동은 시민사회의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펀드를 운영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시민사회 활동의 취지와 역량을 고려하여 펀드 수익의 일부를 장기 저리 혹은 무이자로 대부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원 활동은 흔히 연대성 예금, 윤리적 예금, 나눔의 예금 운동으로 지칭되고 있다. 

윤리적 투자 운동의 감시 목록

윤리적 투자 운동은 직접 투자 활동 이외에 기업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센터를 운영할 수도 있다. 이 센터는 매우 구체적인 감시 항목들을 작성하고 감시 결과를 시민사회에 공표하게 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생태계 안정과 관련해서는, 기업의 환경정책, 광산채굴과 폐기물 처리 방식, 오존층 파괴 물질의 방출, 유전자 조작, 집약농법, 제초제 사용 여부, 열대우림 파괴, 수질오염, 대기오염 등의 감시 목록을 운용한다.

기업의 시스템 통제에 관련해서는, 기업 지배구조, 경영자의 수입, 기회 균등, 작업장 안전과 건강 보호, 노동조합과 종업원 참여, 직업교육과 훈련 수준 등의 감시 목록을 설정한다.

시민사회의 가치관에 대응하여 기업 활동의 정당성을 얼마큼 확보하고 있는가에 관련해서는, 술, 담배 등 유해상품 제조, 동물실험, 인권 유린, 군수품 제조와 판매, 핵 산업, 포르노그래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제3세계와의 연대 등의 감시 목록을 마련해 둔다.

물론 이와 같은 감시항목을 설정하고 기업 활동을 감시하려고 해도,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정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지고 무수한 기업들을 감시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기업의 특성상 기업 내부자의 제보가 없이는 기업 활동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기업 활동에 대한 감시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어서 기업의 정책결정과 그 집행 과정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만일 독일식의 감독위원회와 유사한 감독기구가 기업 안에 조직될 수 있도록 법률적 뒷받침이 이루어지고, 이 감독위원회에 자본측 대표와 노동측 대표, 그리고 시민사회 대표들이 동등한 자격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서 기업의 경제정책과 관련된 기밀 사항을 제외하고는 사회정책, 인사정책, 환경정책 등과 관련된 정보를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 공개해야 할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한다면, 기업윤리적 관점을 갖고 기업 활동을 감시하는 일에서 큰 진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업 활동 감시에 근거하여 각 기업의 윤리 지수를 평가할 수 있다면, 윤리적 투자 운동을 유도하는 데에도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취하기 위한 교회의 활동

오늘날 자본의 초국적 활동으로 인해 잉여는 지역으로부터 중앙으로, 주변부로부터 중심부로 유출되어 그곳에 축적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업의 이윤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양 찬양되고 있다. 이 거대한 물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절망적인 느낌을 받는다. 시민사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취하고, 이를 촉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한다고 해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물결을 당장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취하기 위해 시민사회가 맡아야 할 감시 기능, 압력 기능, 향도 기능을 저버릴 수는 없다. 시민조직들은 지역적, 국내적, 세계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제동을 걸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윤리적, 법적, 제도적으로 강제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규율하는 글로벌 가버넌시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필자는 개신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기 위하여 기업 감시 기구를 창설하고, 기업윤리상을 제정하고, 윤리적 투자 운동을 벌일 것을 촉구하고 싶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를 사회선교의 전략적 과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별히 기업윤리상의 제정과 관련해서는 NCCK가 나서서 일종의 기업윤리평가기구를 창설하고, 그 기구의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별도의 기금을 모을 수 있다고 본다. 그 일과 관련해서는 가톨릭,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과 힘을 모으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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