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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릉 찌르릉, 누가 달리고 누가 비키는가?명상 자전거 3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 승인 2019.08.23 17:21

(1)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예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람더러 비키라고 벨을 울리지 않는 것이다. 길의 주인은 사람이며, 다음은 자전거, 그 다음은 자동차이다. 약자순으로 배려받아야 한다.

아예 벨을 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다. 그 대신 다른 자전거를 추월할 때, 사람을 비껴 지나갈 때, 대상에게 부드럽게 “지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일종의 방향지시등이다. 이것이 매너다.

현행 법에 의하면 자전거는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있다. 자전거도로가 없다면 차도 끝 차선으로 달려야 한다. 보도를 타서는 안 된다. 보도는 어린이, 노인, 신체장애인만 달릴 수 있다.

차도가 아닌 인도에서 벨을 울리며 보행자를 비키라고 하는 것은 비매너다. 인도는 사람의 것이다.

멀쩡한 성인이 자전거를 타고 인도를 다니는 것은 불법이다. 게다가 벨을 울리다니. 나쁜 짓이다.

(2)

‘자전거’라는 동요가 있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사람 조심하세요
어물어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원래 가사는 아래와 같다.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찌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어물어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음악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찌르릉’이라는 의성어가 ‘따르릉’이 되었고 ‘영감’은 ‘사람’으로 순화했다.

(3)

이 동요에 대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 자전거를 탄 사람은 거만한 부자다.

당시 자전거는 비쌌다. 동요가 만들어진 1930년대에 자전거는 노동자 월급의 3배 정도였다. 지금 승용차 가격이라는 말도 있다. 부의 상징이었다.

“내가 가니 비켜라. 자전거가 가니 비켜라.”
자전거를 탄 사람은 부자다. 힘센 사람이다.

ⓒ전성표

힘 있는 자가 가니 비켜라.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난다. 게다가 경로효친의 나라에서 노인더러 조심하라니. 이 얼마나 패륜적인 노래인가.
자전거 탄 사람은 부자, 힘 있는 자, 앞에 가는 노인은 힘없는 민중.

그렇다면 이 노래는 시건방진 패륜 노래가 된다.

(4)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 저기 가는 저 영감은 일본 제국주의다.

이 시가 써질 당시 당시는 자전차왕 엄복동이 자전거로 전국대회를 싹쓸이 하던 때였다. 자전거로나마 일제를 이기던 때였다. 그러므로 어물어물하는 꼬부랑 영감은 엄복동이 자전거 경기에서 통쾌하게 박살 낸 일본이다. 어물어물하지 마라. 엄복동이 나간다. 조선이 나간다. 나라를 빼앗기 울분을 자전거로 풀었던 세상이다.

자전거 탄 사람은 엄복동, 혹은 조선인이 되고 어물어물하며 저기 가는 꼬부랑 영감은 일본 제국주의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일본을 이기는 통쾌한 승전가가 된다. 

(5)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 저기 가는 저 영감은 봉건 잔재다.

20세기에 사진, 전화, 담배, 시계 같은 물건이 외국을 통해 들어왔다. 당시 자전거는 이렇게 들어온 신문물의 하나였다. 신문물(新文物)은 구문물(舊文物)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당시 구문물은 무엇이었을까? 봉건제였겠지.

이 노래의 어물어물하는 꼬부랑 영감은 봉건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앙시앵 레짐을 거부하고 개화를 칭송하는 노래가 된다.

(6)

이 동요에 대해 이런 해석 또한 가능하다. - 자전거를 탄 사람은 일본 순사다.

이 노래는 식민지 시대에 나온 노래다. 일본 순사는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순찰했다. 일본 순사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독립군을 잡으려고 돌아다니니 우물쭈물하다가 잡혀가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일본 순사를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일종의 독립군가가 된다.

ⓒ전성표

쪽발이 순사가 지나가니 숨어!

(7)

무엇이 진실일까?

이 동요를 작사한 사람은 목일신(1913~1986년)이다. 목일신은 13세 때 일찍이 동아일보에 시를 발표한 문학 소년이다. 
미국 선교회에서 목사인 그의 아버지에게 자전거 한 대를 기증했다. 부친은 그 자전거로 각 처의 교회를 순회하며 일을 보았는데, 쉬는 날에는 아들에게 양보해 주었다. 그럴 때면 목일신은 시오리 되는 보통학교를 그 자전거를 타고서 다니게 되었다.

1926년, 목일신이 보통학교(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 그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와서 지어 본 것이 동시 '자전거'이다.

이후 목일신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전주 신흥학교에 다녔는데 전단을 직접 제작하여 배포 했다. 체포돼 퇴학당하고 1개월간 복역하게 된다. 그때가 1929년, 자전거 동시를 쓰고 3년이 지나서이다.

이후 그는 평생 아동문학작가와 국어교사로 살았다.

(8)

그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의 아버지는 목홍석(1)(1885~1928년)이다. 목홍석은 목사였고, 3·1운동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을 위해 고향 고흥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할 것을 기획하고 작성한 선언문에 조선혈족동맹태업이라고 쓰고 조선의 독립을 기하는 시위운동을 책동’(2)하여 보안법 위반으로 고문을 받고 3년형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그는 자녀들에게 애국심을 심어 주었다. 목일신이 보통학교를 다닐 때 일제는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목홍석은 아들에게 우리말로 글을 지으라고 가르쳤다.

목홍석은 고문 후유증으로 43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이들 부자 모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3)

동요 자전거는 집안 내력으로 보아 패륜 노래, 승전가, 개화곡이라기보다는 독립군가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당시 초등학생, 중학생은 지금과 달랐다.

4.19 혁명만 하더라도 186명의 희생자 중 77명이 학생이었다. 대학생의 숫자는 22명(29%)에 지나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36명(47%)이었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19명(25%)이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열사가 마산상고에 학생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성적과 입시에 짓눌린 지금 청소년과 옛날의 청소년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숙했다.

(9)

목일신의 고향 전남고흥에서는 매년 ‘목일신 창작 동요제 및 동시대회’가 열린다.

고흥군에는 그의 동시 ‘누가 누가 잠자나’ 시비가 있다. 고흥군은 목일신 기념관과 자전거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가 인생 후반 26년을 보낸 부천에는 ‘목일신 공원’이 있다. 부천에는 목일신 선생의 이름을 딴 일신초등학교, 일신중학교가 있다.

부천에서는 목일신 선생을 기념하는 ‘따르릉 문화예술제’가 매년 열린다.

부천 심곡천(深谷川)에는 목일신교라는 다리가 있다. 2019년부터는 목일신 아동문학상을 공모한다. 부천중앙공원에 목일신 동요비가 있다.

목일신의 고향 고흥과 제2의 고향 부천은 그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10)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라며 벨을 울리는 것은 비매너다. 그때는 이런 개념을 없을 때였다. 그러나 이 노래는 보행자를 위협하는 노래가 아니다. 이 동시는 ‘순수한 동심’일 가능성도 있지만 독립군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는 노래다.

이 노래의 작사자 가문에 감사드린다. 목홍석·목일신 부자에게 큰 절 올린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않고, 또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There is no good tree which produces bad fruit,
nor, on the other hand, a bad tree which produces good fruit.

- 예수 -

미주

(미주 1) 자(字)는 치숙.
(미주 2) 목홍석에 대한 대구법원 판결문.
(미주 3) 사족으로 목일신의 딸 목수정 작가는 민주노동당 문화담당 정책연구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원회장을 했다. 3대에 걸친 집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s15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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