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기독교강요 헌사, 프랑스 개신교도들의 무죄를 주장하다프랑스 왕 프랑수와 1세에게 드리는 헌사 (2)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19.08.24 17:36

정확히 프랑스 개신교도들이 비난을 받은 죄가 무엇이었습니까? 비록 『기독교강요』가 1536년에 바젤에서 인쇄되었다고 할지라도, 칼빈은 그의 원고를 1535년 여름에 완성했습니다. 우리는 서문의 “왕에 게 보낸 편지”에 1535년 8월이라고 적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개신교들에게 어떤 죄목이 부과되었나

게다가, 1535년은 프랑스 지식인 계급으로부터 비판의 파도를 수반했던 벽보 사건 이후 그의 나라의 복음전도자들을 향해 보인 프랑수와 I세의 입장의 일시적인 경직과 일치합니다. 벽보는 단지 양쪽 진영의 온건파들에 의해 시작되었던 조정의 과정을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왕국의 지성인들 가운데 어떤 자들에게는 “맹목적이고 격렬한 완고함의 히드라”와 관계를 끊으라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프랑수와 I세는 칼 V세와 맞서 동맹을 맺은 독일의 영주들에게 그의 이교도 진압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독일 제국의 국가들에게 보내는 1535년 2월 1일자 각서에서 프랑수와 I세는 종교를 가장하여 그의 국가를 공격한 어느 누구나 ‘치안방해죄’를 범한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어느 정도는 그의 동료 신자들에게 가해진 치안 방해죄라는 비난을 부인할 목적으로 프랑수와 I세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의 『기독교강요』 서문으로 썼던 것입니다. 그 책의 모든 판들에서 나타나는 이 편지는 본질적으로 교리적이고 정치적인 성격의 비난들을 논박􏰀며 종교개혁을 수호하려는 탄원이었습니다(Inst. 프랑 스왕 프란시스1세에게 드리는 헌사, 71).

▲ 프랑수와 1세 ⓒ위키피디아

이제 『기독교강요』 서문의 내용을 직접 살펴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프랑수와 1세에게 드리는 헌사, 그 배경은 방금 확인했던 내용이니까 넘어가겠습니다. 43쪽을 보면, 치안방해죄라고 적시된 죄목, 다시 말하면 가톨릭교도들이 프랑스의 개신교도들에게 가했던 비방의 내용이 나옵니다.

제왕의 주권을 탈취하며, 모든 법정과 그 판결을 무너뜨리며, 일체의 질서와 정부를 전복하며, 국민의 평안과 안녕을 교란시키며, 모든 법을 폐기하며, 모든 통치권과 소유를 분산시키는 것, 간단히 말해서 모든 것을 혼란의 와중으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것이 곧 내가 옹호하고자 하는 교리의 유일한 목표라는 것입니다.(헌사, 43)

그리고 칼빈은 구체적으로 핍박을 받는 신앙동지들을 위해 왕에 게 탄원􏰀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길게 적고 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해 폐하께서 충분한 심리를 해주시도록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혼란 속에서 이 주장은 전혀 법질서에 따라 취급을 받지 못하였으며, 또한 법적으로 신중하게 다루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난폭한 격정에 따라 대우를 받아왔습니다. … 나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주장이자 모든 신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장을 지금 변호하려는 것 뿐입니다. 이 주장은 현재 폐하의 나라에서 완전히 찢기고 유린당하여 가장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것도 폐하의 승인도 없이 어떤 바리새인들의 횡포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 가장 영명하신 폐하시여! 특히 지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지상 에서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진리가 그 존엄 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 이 때에 폐하께서는 이 정당한 변호에 대하 여 귀와 마음을 막지 않으셔야 할 것입니다. … 사실 진정한 왕은 왕국을 통 치함에 있어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러 나 자신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 왕은 벌써 왕적 통치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약탈을 일삼는 자인 줄 압니다. … 사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미천한 소인이라는 것을 너 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비참한 죄인들이며, 사 람 앞에서는 가장 경멸을 받을 존재입니다. 그리고 만일 폐하께서 부르고 싶으시다면, 우리를 이 세상의 배설물이나 찌꺼기라고 불러도 무방하며 (고전4:13참조), 이보다 더 추악한 이름을 붙여도 마땅한 존재입니다. … 그러나 우리의 교리는 세계의 모든 영광 위에 우뚝 솟아나야 하며, 일체의 세상의 권세가 정복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 교리가 우리에게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헌사, 43-45).

그리고 칼빈은 여기서 개혁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믿는 바를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폐하의 열심과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혹은 적어도 우리의 신앙고백을 읽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드리기 위해서 무엇인가 더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모든 예언은 '믿음의 분수대로'(롬12:6)하기를 원했을 때, 그는 성경의 모든 해석을 시 험하는 아주 확실한 믿음의 규칙을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 믿음 의 규칙에 따라 우리의 교리가 검토되기만 한다면, 승리는 분명히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옷을 입기 위해 일체의 덕을 벗어버렸 다는 것, 하나님에 의해 생명의 충만함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는 어떠한 선 도 없다는 것,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죄의 노예라 는 것,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 할 눈먼 자라는 것, 우리는 하나 님에 의하여 바로 세워져야 할 절름발이라는 것,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도 우심을 받아야 할 약한 자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 며, 하나님 안에서 우리 자신을 자랑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랑의 모든 기회를 우리에게서 제거하였다는 것,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신앙 과 일치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고전1:31;고후10:17참고). 우리가 이러 한 사실과 이와 비슷한 것들을 말하면, 반대자들은 우리의 말을 가로막고, 그것은 자연의 맹목적인 빛, 가공적인 준비, 자유의지, 영원한 구원에 공로 가 되는 선행, 그리고 일체의 공덕까지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불평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일체의 선, 덕, 의, 지혜에 대한 찬양과 영광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헌사, 46-7).

칼빈의 신앙의 유비

앞에서 우리가 개론적으로 종교개혁과 칼빈에게 영향을 주었던 여러 요인들을 살펴보았을 때, 그 중 하나로 유명론을 거론한 바 있습니다. 중세 유명론이 실재론적 입장을 거부하고, 그래서 그것이 종교개혁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지금 ‘헌사’에서 우리는, 칼빈이 “우리의 신앙고백”이라고 말한 부분에서 실재론적 입장에 터􏰀고 있는 가톨릭의 신학방법론, 곧 ‘존재유비’와 칼빈이 “믿음의 분수대로”라고 말하며 진술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극단적인 방법론적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재론은 보편적 존재와 개별적 존재들이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 즉 보편적 존재의 성질을 개별적인 것들이 다 간직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유명론은 이 보편적 존재를 거부하고 개별적 존재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확인했는데, 가톨릭 교황주의자들은 바로 개별적 존재, 인간본성, 인간존재 안에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 즉 자유의지, 영원한 구원의 공로가 되는 선행, 공적 등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구원의 도구가 된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던져버려야 한다, 벗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생명의 충만함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는 어떠한 선도 없다는 것,􏰀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를 얻기 위해 우리가 죄의 노예라는 것,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 할 눈먼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유명론적 입장이 영향을 미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의 주장이 유명론은 아닙니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신앙의 유비”입니다.

존재유비(analogia entis)는 다음 글에서 자연계시를 말할 때, 다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존에 이미 주어져 있는 것, 예컨대, 자연의 맹목적인 빛, 가공적인 준비, 자유의지, 선행, 그리고 일체의 공덕 등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고,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는 “믿음의 분수대로”(à l’analogie et similitude de Foi),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원리를 따르겠다는 표명입니다. ‘존재유비’는 중세 가톨릭의 기본적인 신학방법론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신앙의 유비’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새롭게 발견되고, 20세기 칼 바르트에 의해서 말씀의 신학의 기본적인 신학원리로써 작용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