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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회적 경제를 옹호해 온 전통 지켜야 한다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16)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08.26 18:03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과 법제화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는 사회적 경제에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에 대량실업 문제가 발생하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박으면서 고용 불안과 빈곤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자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주도로 사회적 경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창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07년에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었고, 2011년에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이 두 법은 사회적 경제의 기본 단위인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을 지원하고 규율하기 위한 법제였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오랫동안 국회에 계류되어 있어서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하고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은 ‘사회적 경제 발전기금’의 조성과 운영에 관한 규정들을 갖고 있지만, 관 주도의 기금 운영만 갖고는 사회적 금융의 생태계를 조성하기에 미흡하다. 사회적 금융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가칭 “사회적금융기본법”을 별도로 제정할 필요가 있다. 만일 이미 제정된 “사회적기업육성법”과 “협동조합기본법”에 더하여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이 처리되고, 가칭 “사회적금융기본법”이 제정된다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경제를 육성하기 위한 법제를 모두 갖춘 유례없는 국가가 될 것이다.

사회적 경제에 관한 논의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19세기의 사회 문제’를 경험한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구상이 19세기 초반부터 활발하게 제시되어 왔고, 협동조합 운동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힘입어 오늘의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는 사회적 경제가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고, 이에 관련된 이론적 작업이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도 사회적 경제를 논의하고 형성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와 교회의 공헌이 적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필자는 사회적 경제를 형성하는 데 기독교가 어떤 공헌을 하였는가를 살피고자 한다. 이에 앞서서 사회적 경제가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적 경제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오늘 사회적 경제는 국가 부문과 시장 부문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유지하는 제3섹터에서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합리성을 결합하고자 하는 경제 활동을 총칭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의 핵심 과제는 경제적 합리성의 추구로 인해 사회적 연대가 희생되지 않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역사에서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합리성이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가를 살펴보면, 이 둘을 서로 결합시키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Getty Image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전국적 규모로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시장경제가 역사적으로 확립되었을 때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합리성은 서로 길항관계에 있었다. ‘맨체스터 자본주의’로 알려져 있는 악명 높은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와 착취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자본 축적을 위해 사회적 연대를 희생시켰다.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합리성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둘을 결합시키려는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주류였다.

자본주의 체제가 자본의 과잉 축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세계대전들과 대공황으로 난파하자 케인즈 이론에 바탕을 둔 국가개입주의가 자리를 잡게 되었고, 국가개입의 틀에서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합리성을 서로 결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났다. 국가개입주의는 세 가지 정책들을 서로 결합시켰다. 하나는 자본소득의 일부를 조세로 퍼내어 사회복지의 재원으로 삼는 소득재분배 정책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별노사교섭 제도를 활성화하여 노동의 권력을 강화시켜 자본의 권력에 맞서게 하는 정책이고, 마지막 하나는 노동능력의 상실이나 소멸에 대응하고 노동능력을 재형성하기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하게 설치하는 정책이다.

이 세 가지 정책들에 기반을 둔 개입국가는 사회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그것은 인류의 사회사에서 매우 돋보이는 모델이었다. 그러나 개입국가는 노동과 자본의 갈등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인플레 속의 경제침체인 스태그플레이션은 그 필연적 결과였으며, 국가는 점점 더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채무를 짊어지기 시작했다. 채무 이행의 압력에 몰린 케인즈주의적 개입국가는 금융시장의 자유화를 용인하고 마침내 신자유주의 국가에 길을 내주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국가는 금융자본의 자유를 제도화하여 금융의 지구화를 촉진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하여 노동권력을 급속하게 약화시키고,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의 요구가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을 일축하고 노동업적에 연계된 복지 구상을 제도화해 왔다. 그렇게 해서 금융자본을 정점으로 하는 자본의 약탈 체제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고용 기회를 얻지 못하는 실업자들과 미취업자들이 증가하고, 고용 불안과 생계 불안에 시달리는 프롤레타리아(프레카리아트)가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하고, ‘새로운 가난’이 만연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으며, 이에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은 크게 침식되었다. 금융의 지구화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합리성은 다시 사회적 연대로부터 분리되었다.

최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적 경제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실험되는 것은 바로 앞에서 말한 금융의 지구화 조건들 아래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충격을 완화하지 않으면 사회적 연대가 경제적 합리성의 추구로 인하여 파괴될 것이고 사회적 해체를 피할 수 없으리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경제의 역사적 뿌리 - 맨체스터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경제에 대한 최초의 논의와 실험은 ‘맨체스터 자본주의’에 대한 대응에서 비롯되었다. ‘맨체스터 자본주의’는 본래 영국의 면직공업 도시 맨체스터에서 나타난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자본의 가혹한 노동 지배와 착취를 구현한 ‘순도 높은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기에, ‘맨체스터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과 대응은 맨체스터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도 활발하게 나타났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19세기 초의 공산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 맑스와 엥겔스가 ‘공상적’이라고 규정했던 사회주의자들, 교구민들의 가난과 비참에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교역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은 서로 다른 전망과 논거를 갖고서 ‘맨체스터 자본주의’가 가져다 놓은 19세기의 사회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사회적 경제의 선구적인 형태는 농촌 분해 과정에서 도시로 몰려든 프롤레타리아트와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도태되기 시작한 장인들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인 공제조직들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상호부조와 자선활동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였고, 부르주아의 지배에 맞서서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를 위해 힘을 모아나갔던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구상들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의미 있는 최초의 구상은 협동과 연대에 바탕을 둔 결사체를 통하여 사회주의를 구현하고자 했던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제시하였다. 영국에서는 오웬(Robert Owen, 1771-1851)이 노동자들의 결사체인 뉴라나크(New Lanark)를 실제로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이 결사체들로 구성된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프랑스에서는 생시몽(Claude Henri de Rouvroy, comte de Saint-Simon, 1760-1825)이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의 협력에 바탕을 둔 연대적인 산업국가에 관한 구상을 내어 놓았고, 푸리에(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1772-1837)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치와 연대의 원칙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일종의 지역 꼬뮌인 팔랑크스(Phalanx)를 설립하고 팔랑크스를 기본 단위로 하는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자고 제안하였다. 그 뒤를 이어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은 시장을 매개하지 않고 생산자협동조합과 소비자협동조합의 합의에 따라 재화와 서비스의 수급을 조절하고 사회적 신용제도를 창설하자고 주장했다. 이러한 구상들과 실험들에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적 경제의 맹아가 담겨 있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을 이어받은 부쉐(P. J. B. Buchez, 1796–1865), 르후(Pierre Henri Leroux, 1797-1871) 등은 협동조합의 기본 원리를 가다듬었다. 소비협동조합의 운영 경험에 근거해서 이용실적에 따라 배당한다는 원칙이 세워졌고, 협동조합의 자산은 공동자산이므로 지분으로 분할해서 매각하거나 상속할 수 없다는 원칙도 확립되었다. 이 원칙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협동조합 운동의 주요 원칙들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맑스(K. Marx, 1818-1883)는 이와 같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구상들이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했으나,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결사체 운동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의 맹아를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윤의 축적을 위해 인간과 자연을 무덤에 쓸어 넣는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으로서 그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사체가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를 이성적으로 규율하는 경제를 비전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협동조합 운동이 독점과 빈곤의 폐해를 해결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도 분명히 지적했다.

이에 반해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와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를 옹위하는 헤게모니 세력에 대항하는 ‘진지전’에서 협동조합 운동이 갖는 의미를 중시하였다.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연대를 조직원리로 삼는 협동조합 운동은 사회주의적 가치를 선구적으로 구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이윤 추구를 위해 인간과 자연과 사회를 갈아버리는 ‘사탄의 맷돌’ 같은 시장경제에 대항해서 대안적 경제를 추구하는 결사체, 협회, 혹은 협동조합이 갖는 역할에 주목하였다.

영국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구상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적 경제에 대한 명확한 구상을 제시했다. 영국 차티스트 운동과 프랑스 2월 혁명에 자극을 받은 영국의 모리스(F. D. Maurice, 1805-1872)와 루들로(J. M. Ludlow, 1821-1911)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과 비참에 몰린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을 펼쳤다. 모리스는 사회가 하나님이 제정한 질서에 따라 유기적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한편으로는 경쟁을 자연질서처럼 여기는 당대의 정치경제학을 거부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의 적대적인 계급투쟁을 거부했다.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은 세력 연대를 추구하여 협동적이고 연대적인 사회질서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질서를 실현하는 방편은 협동조합 운동과 교육 운동이다. 모리스는 기독교적 협동이 그리스도가 인간 생활의 모든 부문에 현존하게 하여 인간사회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만든다는 아놀드(Thomas Arnold, 1795-1842)의 사상에 공감하고 협동조합 운동과 교육 운동을 강력하게 장려하고 지원하였다. 이러한 협동조합 운동과 교육 운동을 뒷받침하는 이론은 루들로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는 프랑스 협동조합운동의 창시자인 부쉐의 영향을 받았고, 기독교 정신에 따라 공장 지역에서 빈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협동조합 운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갔다. 모리스와 루들로는 협동조합의 구성원들이 서로 협동하고 공감하고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능력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협동조합 운동은 계급들 사이의 동료의식에 바탕을 둔 협력적인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하리라고 믿었다.

1844년 니일(E. V. Neale)은 최초의 근대적 소비자협동조합인 ‘로치데일 공정선구자협동조합’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그는 옥스퍼드 오리엘 칼리지에서 수학한 뒤 1937년 변호사가 되었으며,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로치데일에서 시작된 협동조합 설립 운동은 소비자협동조합에서 신용협동조합과 생산자협동조합으로 그 활동영역을 넓혔는데, 이러한 운동을 지원한 단체가 바로 노동자생산조합추진협회였다. 이 협회는 모리스, 루들로,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 1819-1875) 같은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설립한 기구였다. 로치데일 교구 신부였던 윌리엄 나소 몰스워스(William Nassau Molesworth, 1816-1890)는 “실천으로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고 양심에 기초한 확신을 심어주고 협동조합인인 교구민에게 정치나 종교적 의도에 개의치 않고 현명한 조언과 우호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은”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1855년 로치데일에서 열린 협동조합원 대회에서는 협동조합의 3대 원칙이 채택되었는데, 오늘날까지 협동조합의 운동의 대헌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3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이 인간적인 조합은 현실의 이익이 일치하는 조합원들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2) 진정한 노동자는 함께 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3) 우리들의 교환을 지배하는 원칙은 이기심이 아니라 정의이다.

프랑스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의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구상들

수많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을 배출한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부쉐와 르후 등이 발전시킨 협동조합 이론은 기독교 사회주의자요 역사경제학자인 샤를르 지드(Charles Gide, 1847–1932)에 의해 정교하게 이론화되었다. 그는 협동조합을 기본 단위로 하는 사회적 경제를 구상하였다. 협동조합을 통하여 임노동 본위의 노동사회를 해체하여 협동과 연대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지역 사회에서 소비자협동조합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점차 경제의 모든 영역에 다양한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이를 토대로 삼아 국가 체제를 협동조합 공화국으로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세계를 협동조합 공화국 연합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생각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이상을 새로운 버전으로 제시한 것이라 할 만하다. 지드의 구상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가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상황에서 실현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구상은 오늘날 사회적 경제를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가톨릭교회이다. 가톨릭교회는 1891년에 반포된 교황 레오 13세의 사회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의 영향을 받아 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회회칙은 한편으로는 인간을 공동체적 유대로부터 벗어난 고립된 개인으로 보는 관점을 거부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사회와 국가에 해소시키는 사회주의적 관점도 거절했다. 사회회칙은 인간 사회가 가정을 기본 단위로 하고 사회적 분업과 통합에 의해 구성되는 유기적인 공동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인간사회는 가정과 같은 작은 단위로부터 시작해서 사회와 국가와 같은 보다 큰 단위로 확대되는데, 이러한 인간 사회에서 사람들의 자발적인 결사체와 협동조합은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고, 사회와 국가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인간사회를 운영하는 기본 원칙은 자연법에 바탕을 둔 보조성의 원칙이다. 큰 단위는 작은 단위가 자치적으로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되, 작은 단위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보조해 주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가톨릭 사회회칙 “레룸 노바룸”은 이와 같은 관점에서 사회의 각 단위들이 서로 협력하여 사회적 연대를 실현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같은 사회회칙의 영향 아래서 가톨릭 사제들과 평신도들은 협동조합 결성을 촉진해서 가정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연대적인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이다.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와 사회적 경제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논의는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에서 매우 활발하게 벌어졌다. 독일 개신교는 사회 문제에 깊이 개입한 루터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고, 사회봉사와 선교를 중시한 경건주의 전통을 이어 받았다. 이러한 전통의 영향사 안에서 19세기의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대결하면서 사회선교의 과제를 명확하게 제시한 사람은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 1808-1881)이었다. 그는 1848년 3월 혁명을 경험하고 난 뒤에 9월에 모인 개신교 교회대회에서 이러한 사회선교를 담당할 내방선교 구상을 밝혔으며, 그 이듬해에 내방선교 중앙위원회를 구성한 뒤에 독일 각 지역에 선교협회를 결성하면서 활발한 사회선교를 펼쳐나갔다.

비헤른은 모든 사람이 국가의 행복한 시민으로서, 교회의 축복받는 지체로서 기독교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기대하였다. 그는 교구 단위에서 빈민 구호를 권유한 마르틴 루터의 라이스닉 금고 규정의 정신을 받아들여 가정과 시민이 나락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빈민구호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그는 개인중심의 임기응변 조치가 내방선교의 항구적인 활동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도우려는 개개인의 의지이다. 이러한 자조의 노력이 없다면, 국가가 개입하더라도, 대중의 빈곤화와 몰락을 방지할 수 없을 것이다. 비헤른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부조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한 개별적인 원조는 개개인을 원자화하고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고 스스로 도울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결사체를 만들어 공동체적 복지를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비헤른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주택건설공동체, 소비자공제회, 노동조합, 신분이익단체 등으로 결속하여 공동체적 자조의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자기책임의 원칙과 연대의 원칙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비헤른의 구상은 노동자들의 자활을 위해 협동조합 설립을 강력하게 주장한 빅톨 아이메 후버(Victor Aimé Huber, 1800-1869)의 이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후버는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의 역사에서 노동자들의 결사권을 옹호한 최초의 유력한 이론가였으며, 노동자의 공동체적 자조의 원칙에 따라 노동자의 주택 문제 해결을 사회적, 교회적 의제로 부각시켰다.

협동조합 설립을 옹호한 비헤른과 후버의 영향을 받은 라이파이젠(Friedrich Wilhelm Raiffeisen, 1818–1888)은 독일 농촌 지역에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을 창설하였다. 그는 교회 교구를 기본 단위로 하는 지역 신용협동조합을 창설하였으며, 협동조합이나 기업을 창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자금을 지원하였다. 라이파이젠의 주도로 독일에서는 신용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이것은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데 사회적 금융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는 보수적인 분파로부터 자유주의적 분파를 거쳐 사회주의적 분파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었다. 그 가운데 사회적 가치를 중시한 개신교 사회협회(Evangelisch-Sozialer Kongress)는 아돌프 폰 하르낙(Carl Gustav Adolf von Harnack, 1851–1930)이 의장으로 활동하던 기간(1903-1909)에 무엇보다도 경제적 자유주의에 맞서서 국가가 경제적 합리성과 사회적 연대를 서로 결합시키는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고, 해고법 제정, 노동 시간과 노동의 종류에 관한 법적 규율, 노동자와 경영자의 공동결정 제도, 노동자 숙소 건립에 대한 기업의 의무 등을 강조하였다. 개신교 사회협회는 사회적 경제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의 지배구조, 노동시장, 거시경제 등을 규율하는 정책을 일관성 있게 수립하여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개신교의 입장은 나치 독일을 청산하고 독일을 재건하기 위하여 기획된 사회적 시장경제 구상의 바탕을 이루게 된다.

스페인에서의 사회적 경제의 발전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 ‘맨체스터 자본주의’가 붕괴되고 사회적 자본주의가 등장하여 경제적 합리성과 사회적 연대를 나름대로 결합시키면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에 관한 담론은 복지국가 담론의 틀 안으로 흡수되었다. 물론 협동조합은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 생산, 소비, 서비스,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계속했지만, 그것은 사회국가에 의해 규율되는 시장경제의 틀 안에 통합된 특수한 경제 부문이었다.

스페인의 경우는 다소 예외적이다. 내전과 독재, 지역차별의 상처가 깊이 남아 있었던 스페인에서는 강력한 협동조합 운동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모드라곤 협동조합 운동이다. 대량실업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궁핍에 허덕였던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궁벽한 소도시인 몬드라곤에서는 자끄 마리탱의 사회적 가톨릭주의의 영향을 받은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José María Arizmendiarrieta, 1915–1976)가 협동조합 운동을 이끌었다.

돈 호세 마리아 신부는 자유로운 행위의 주체인 인간이 경제의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바로 그러한 인간이 창의성을 발휘하며 함께 일을 해서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협동조합 운동이 자조와 연대의 공동체를 수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우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는 굳건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는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통찰과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통찰을 서로 결합시키는 지혜로운 안목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신념과 안목을 가진 돈 호세 마리아 신부는 교육이 협동조합 운동의 관건이라고 생각하여 먼저 기술학교를 설립하였고, 기술학교에서 교육을 마친 다섯 사람들을 중심으로 1943년 최초의 생산협동조합이 창설하였다. 그는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자본 공급과 경영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힘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교육과 신용협동조합의 지원을 기반으로 해서 생산, 소비, 판매, 물류, 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협동조합들이 만들어지고 이 협동조합들을 네트워크로 묶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형성되었다.

이 복합체에 속한 협동조합들은 몬드라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 여러 지역들에도 퍼져 있지만, 적어도 협동조합 복합체의 본산인 몬드라곤은 협동조합들을 중심으로 해서 사회적 경제 시스템을 갖춘 지역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현재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의 조합원은 80,321 명, 매출 규모는 140억 유로에 달하며, 이 복합체는 스페인에서 랭킹 7위의 기업 집단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운동은 참여와 정의, 그리고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기독교 박애주의 정신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운동에서 실천되는 기독교 박애주의 정신은 노동능력을 상실한 조합원이 은퇴할 때까지 100%의 급여를 지급하고, 부양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150%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는 데서 엿볼 수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운동과 같은 예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원주를 중심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전국적 범위에서 활동하는 한살림 협동조합 운동이 그것이다. 가톨릭 원주 교구의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의 영향 아래서 조직된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모태로 해서 발전한 한살림 협동조합 운동은 전국 차원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고, 이와 동시에 지역 차원에서 사회적 경제를 형성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위해 교회가 할 일

교회는 참여와 정의, 그리고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에 근거한 박애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사회적 연대와 빈민구제를 성실하게 수행해 온 전통을 갖고 있고,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운동이 태동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이념을 제시하고 교육을 실시하고 실무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큰 공헌을 해 왔다. 이러한 전통을 회상하면서 앞으로 사회적 경제를 발전시켜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는 데 교회가 기여할 것이 무엇인가를 전망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사회적 경제의 형성에 관련해서 교회는, 첫째,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전망을 갖고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운동, 그리고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것을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교회는 사회적 기업을 창설하거나 사회적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이미 조직되어 활동하는 기독교사회적기업지원센터가 이를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셋째, 적정 규모의 지역에서 교회들이 서로 연대하여 기금을 조성해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기독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경영 컨설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이파이젠 신용협동조합의 예를 참고하여 우리 시대의 상황에 맡는 신용협동조합 운동을 구상하고 전개하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기업들과 협동조합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사회적 경제의 생태계가 조성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교회가 사회적 경제의 정신을 구현하는 마을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마을 교회의 역할을 수행하자는 것이다. 마을 만들기는 그 자체가 사회적 경제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프로젝트인 동시에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는 실험이기 때문에 교회가 마을 교회로서 할 일을 찾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다섯째, 교회는 기독교적 관점과 기준을 갖고서 사회적 경제의 제도화와 거기서 비롯되는 문제들에 대해 윤리적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시민사회에 공표하여 사회적 경제가 건전하게 형성되도록 조력하는 것을 과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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