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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창 3:1-13, 22-24; 롬 5:12-21; 마 18:1-14)창조절 첫째 주일(9월1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08.30 17:22

1. 창조절과 아마존 화재

오늘은 삼위일체 교회력 셋째해로 교회력으로 한 해의 첫 시작인 창조절(Creation) 첫째 주일입니다. 창조절의 상징 색깔은 생명창조를 뜻하는 녹색입니다. 기간은 9월 첫째 주일부터 대림절(Advent) 직전까지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창조절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고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늘도 계속해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창조와 해방의 사역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다짐하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가 태초에만 있었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사역에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1990년 3월 5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JPIC(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제 1차 세계대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와 환경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신학의 주요 주제로 회복시켰습니다. 따라서 그 동안 서양신학이 앞장서온 자연생태계를 향한 ‘정복주의적 사고’뿐만 아니라, ‘인간중심’, ‘기독론 중심의 구속사 신학’까지 반성하게 되었는데, 창조절기는 이렇게 창조 세계의 보전을 고민하는 절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브라질 산불>

그런데 이러한 창조절기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세계가 불타고 있습니다. 바로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열대우림의 화재입니다. 오늘로 한 달째인데, 서울의 15배 이상의 면적이 불이 탔으며, 아마존 생태계의 20% 이상이 훼손되었습니다(2019년 8월 28일 현재). 1분당 축구장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산림이 손실되고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해마다 아마존은 불이 납니다. 2019년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약 7만 2000회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수치는 작년에 비해 83%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왜 그럴까요?

환경보호 활동가들은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브라질 대통령(38대) 때문이라고 합니다. 잠시 브라질의 현대사를 살펴볼까요?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비슷합니다. 2003-2011년 브라질 대통령을 지낸 룰라(Lula da Silva) 전 대통령(36대) 시절 브라질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4천만 명의 실직자를 구제하고, 세계 최악의 빈곤 국가였던 브라질을 구제한 영웅으로 추앙되었습니다. 그러나 퇴임 이후, 부패와 돈세탁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9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후 대통령이 된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Dilma Vana Rousseff) 대통령(37대)은 2014년 재선 당시 경제 적자를 숨기기 위해 브라질 회계 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탄핵되었습니다. 따라서 기존 정당의 부패 스캔들, 역사적인 실업률 때문에 브라질 국민들은 군 장교 출신인 보우소나루를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브라질의 트럼프’, 혹은 ‘열대의 트럼프’라고 불립니다. “군부의 유일한 실수는 사람들을 너무 적게 죽였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당일 정부를 폐쇄할 수도 있다.”는 막말로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위협한 인물입니다. 아무튼 보우소나루는 2019년 1월 1일 브라질의 대통령직에 취임합니다. 그리고 이후 아마존 개발을 위해 환경규제를 완화시키고, 개간과 벌목을 활성화 시켰습니다. 밀림을 개간하려면 벌목해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불을 지르는 방법입니다.

<룰라, 호세프, 보우소나루 대통령>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산불의 원인에 관해 환경단체들은 일부러 불을 질러 초목을 없앤 후, 농지를 무분별하게 개간했기 때문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말미암아 창조 세계를 파괴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천지 창조의 모습이 아니라, 창조와 동시에 타락한 인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창조(recreation)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은 이러한 죄와 탐욕에 물든 인간을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으나, 아담의 표상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의 문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 하나 없이, 작은 자까지 찾아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작은 자는 오늘날 창조세계의 모든 동식물과 자연 환경까지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2.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성서의 창조는 항상 타락과 연결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어느 날 사건이 벌어집니다. 뱀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1-3)

뱀이 여자를 유혹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4-7)

죄는 숨길 수가 없죠? 말씀을 계속 볼까요?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8-13)

이상이 타락 사건의 전모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가 중요하죠?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2-24)

죄의 시작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죄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과 같이 된 것입니다. 공동번역은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먹고 끝없이 살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창 3:33).”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거칠게 답하자면 이렇습니다.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인간의 생각, 가치, 판단, 이념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여성신학자 구미정 교수는 선악과에 대해 이렇게 해석합니다.

“선악과 이야기의 초점이 누가 먼저 선악과를 따 먹었나 하는 범인 색출에 있지는 않을 테다. 여자가 왜 따 먹었는지, 또 어쩌자고 자기 혼자 먹지 않고 남자에게도 주는 ‘물귀신 작전’을 쓴 것인지, 시시콜콜 여자의 범행 동기를 캐묻는 것도 주요 관심사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악과 이야기는 오랜 세월 여자에게 죄를 묻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판도라의 부주의와 호기심 탓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바람에 세상에 온갖 재앙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말하듯이, 기독교 전통 또한 아담은 가만히 있는데 괜스레 이브라 유혹해서 인류가 타락하게 되었다고 말해왔다.”(『구약성서, 마르지 않는 삶의 지혜』 사계절, 2015)

그렇다면 선악과 사건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학자들에 의하면, 선악과 사건이 문서로 기록된 때는 다윗-솔로몬 시대였다고 합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가 문서화된 시대가 그때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시대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성서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다윗-솔로몬 시대는 어떤 사회였나요? 이스라엘이 가장 부강한 시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강력한 중앙 집권 군주들이 장기 집권을 하던 시대라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과 번영은 소수의 상층 계급 사람들만 누릴 뿐, 다수의 민중들은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를 구미정 교수는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제 아이라 싸우는 ‘창녀의 이야기(왕상 3:16-38)’에서 찾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보여주는 이야기라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주거 환경이 열악했으면 산모가 잠을 자다가 제 자식을 깔아뭉개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는 말인가요! 또한 아무리 지혜로운 판결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산 아이를 칼로 반 토막을 내라는 명령을 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것은 그만큼 그 당시 사회가 가난한 밑바닥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폭력적인 사회였음을 폭로하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선악과 사건의 핵심은 분명해졌습니다. 제 아무리 제왕적 권력을 쥔 사람이라도 넘지 못할 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미정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한, 어떤 인간도 하나님처럼 전능하려고 들면 안 된다는 교훈 말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에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이러한 유한성을 자각하고 분수를 지키며 겸손하게 사는 인간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다.”(구미정, 57)

그렇다면 선악과 사건의 범죄자는 누구인가요? 바로 지혜자인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로 내려가면 아담과 하와의 범죄이며, 미래로 거슬러 올라오면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이 됩니다. 또한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시대도 솔로몬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죠?

3.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아무튼 죄는 이렇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ἐνὸς ἀνθρώπο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따라서 바울은 죄에 관해 보충 설명합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롬 5:13) 이러한 죄는 유전되죠?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 5:14)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본문으로부터 ‘원죄(原罪, original sin)의 교리를 만들어 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들어볼까요?

“보십시오. 나는 채찍에 맞아 육체의 병에 걸린 채, 내가 당신과 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범했던 모든 죄의 짐을 지고 지옥으로 내려감으로써 우리 모두를 아담 안에서 죽게 한 ‘원죄’에다가 많은 죄와 슬픔을 더했습니다.”(『고백론』, 5.9)

“사람의 본성은 본래 오류나 죄가 없이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본성은 이제 의사를 필요로 하는 건강치 못한 처지에 놓여 있다.”(『자연과 은총에 대하여』, 3)

​“우리의 첫 시조가 공개적으로 불순종에 이르게 된 것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부패가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악한 행동은 반드시 악한 의지가 있어야만 생겨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악한 의지의 뿌리가 교만이 아니었다면 무엇이겠는가? 왜냐하면 ‘교만이 범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신국론』, 14.13)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만으로부터 시작된 원죄에 여러 죄악들을 포함합니다. 가령 유아들이 세례를 받는데, 그 죄를 세목별로 분석을 해, 그 안에 여러 가지 죄가 들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다스림 보다는 자기 자신의 다스림을 택했었기 때문에 거기에는 ‘교만죄’가 있고,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신성모독죄’가 있습니다. 자신을 죽게 만들었기에 ‘살인죄’도 있고, 영혼의 순수함이 뱀의 아첨으로 말미암아 더렵혀졌기 때문에 ‘영적 간음죄’가 있고, 아담과 하와에게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 했는데, 자기를 위한 음식으로 삼았기 때문에 ‘절도죄’도 있습니다. 또한 사람이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추구했기 때문에 ‘탐욕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실자의 모형인 아담과 같은 한 사람이 오셔서, 이번에는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합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볼까요?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5-18)

결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19-21)

이렇게 한 사람으로부터 들어온 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었으나, 아담의 모형인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모든 사람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입니다.

4.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복음서 말씀은 한 생명이라도 잃어버리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잘 보여줍니다. 먼저,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 누가 큰가?”라고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1-4)

어린아이를 자신을 낮추는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주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참된 겸손이 제자됨의 도리인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겸손한 사람, 곧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까지 합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5-6)

어린 아이, 곧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돌을 목에 달아 바다에 빠져 죽으라고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차별받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이 되겠죠? 따라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7)

‘실족하게 하는 일’은 ‘죄를 짓게 한다’는 말입니다. 늘 죄를 짓도록 만드는 인간이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극단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8-9)

그리고 예수께서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없음)” (마 18:10-11)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 사이의 차별로 인해 늘 실족하는 사람이 생기는 이 세상에서 서로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창조세계와 인간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2-14)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분명합니다. 길 잃은 어린 양! 저는 이것이 비유뿐만 아니라, 정말 양 한 마리로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그 한 마리 양, 혹은 작은 자 하나에게까지 세심한 배려를 하는 세상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5. 잃어버린 동물과 작은 자인 자연

아마존의 화재를 보며, 지금 길 잃은 어린 양, 혹은 작은 자는 누구일까를 생각해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 그러나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불사름 당하는 자연이 바로 작은 자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동물식용을 위해 산림을 초원으로 만들고, 또 거기에 살다 인간의 식재료로 죽어가는 동물들! 인간의 식욕과 탐욕 때문에 자연과 식물과 동물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들이 바로 잃은 양이며, 작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브라질 산불 때문에, 핀란드는 브라질산 소고기 수입 금지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농축산물 수입과 무역협정 거부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브라질 주요기업과 단체들의 사업에 타격이 있을 것입니다. 식탐을 벗어야 합니다. 육식을 줄여야 합니다. 탐욕을 떨쳐내야 합니다.

오늘 원죄로 죄된 본성을 타고 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이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지극히 작은 자인 자연과 동식물까지 돌보는 그러한 사명의 길에 부름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명의 길로 달려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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