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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문제의 의미”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09.02 17:20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명하셨다.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그 광경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10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합니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확실히,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서야 비로소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태복음 17:9~13/새번역)

모세,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시는 놀라운 모습, 빛나는 구름 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 산을 내려오며 제자들은 그 의미를 반추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더욱 확신케 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는 말라기 4:5의 약속 때문입니다.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오지 않았느냐는 의문입니다. 이미 왔지만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대했다고 주님께서 답해주십니다. 그제야 세례자 요한을 말씀하시는 줄 깨닫습니다. 세례 요한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있는 성찰기도를 해보면, 얼마만큼 눈멀고 귀먹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성찰기도 또는 양심성찰은 하루에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 합니다. 그때까지 지나온 일상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그 가운데 함께 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살피고, 자신의 영적 삶을 성찰하는 기도입니다. 지나온 일상의 순간순간 하나님 함께 계셨다면, 무엇이라 말씀하셨을지,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셨을지 찬찬히 그려봅니다. 그러다 보면 매순간에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지 깨닫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현존을 놓쳤는지 깨닫습니다.

▲ Vladimir Kush, 「Arrow of Time」(10×21 inches)

실망해서 차갑게 대했던 사람을 주님의 현존 가운데 다시 바라보면, 그 순간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들을 만납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냉정한 말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그때 자신이 왜 까칠하게 대했던 것인지. 무엇보다 주님께서 어떤 마음이셨을지 그제야 보이고 들리기 시작합니다. 불안과 상처에 낙심하고 분노했던 순간도 다르게 보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며 무엇이라 말씀하셨을지, 그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냐시오가 성찰기도를 강조한 이유를 알만합니다.

하루하루를 성찰하다 보면, 반복적인 패턴을 발견합니다. 함께 계신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순간 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패턴입니다. 주님 말씀에도 그런 반복이 나타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12절) 주님 보내신 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핍박하는 반복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신앙인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 아닙니까.

블라디미를 쿠쉬의 「시간의 화살」이라는 작품은 시간을 날아가는 화살로 표현합니다. 너무도 빠르게 끝을 향해 날아가는 시간을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표현은 화살이 모래시계의 틈을 통과하는 모습입니다. 모래시계는 시간의 반복을 떠오르게 합니다. 쏜살같은 시간이 모래시계의 반복 속을 날아가는 것입니다. 삶은 태어나서 죽는 직선적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끊임없는 반복이 있습니다. 비슷한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비슷한 사람에게 비슷한 일로 상처를 받곤 합니다. 그 사람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도 거기에도 그런 사람이 또 있습니다. 반복하지 않으려고 도망가고 또 도망가지만 과연 피할 수가 있는 것일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도 하나의 반복을 마주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예언자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세례 요한에게도 반복되었습니다. 이제 그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것을 아십니다. 그 반복을 해결하여 없애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 반복을 받아들이며, 오히려 그것을 통해 더 놀라운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십니다. 해가 뜨고 집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고 갑니다. 수많은 삶과 죽음이 반복됩니다. 끊임없는 반복을 받아들이며, 사랑의 여정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삶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화두를 푸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에서 하나의 단계를 깨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갖지 못하듯, 반복되는 문제는 삶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관문이자 과제가 아닐까요? 해답을 찾아서 그 단계를 극복해야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불 보듯 뻔한 반복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주님을 따라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피할 수 있어도 피하지 않고, 그 일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향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때 삶이라는 미션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땅에서 하늘을 사는 단계에 진입하겠지요. 구원과 영생이라는 단계에.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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