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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직무관계 규정과 교역 민주주의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18)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09.09 00:57

교역자의 ‘근로자성’?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서 부목사들이 가혹한 근무 조건 아래서 초과 근로를 하는 데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부목사들의 ‘근로자성’을 내세우면서 법에 호소하여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고자 한다는 한 목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부목사를 위시하여 부교역자들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직무관계와 급여, 근무여건 등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노사교섭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 만큼 부교역자들이 교회에서 겪는 어려움이 크고, 그 해결책을 교회 안에서 찾기 어렵다.

그러나 교역자의 ‘근로자성’을 내세워 교역자의 직무관계와 급여 등의 문제를 풀려는 시도는 많은 검토를 필요로 한다. ‘근로자성’은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노동계약이 성립하고 고용자의 지배 아래 노동을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성립되는 개념이다. 청빙제를 채택하는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노동계약이 성립되지 않는다. 교역자의 청빙은 청빙하는 사람들이 청빙받는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지도를 받을 것을 약속하는 교회법적 행위이다. 그렇기에 교역자의 청빙은 교인총회 참석자의 3분지 2 이상의 동의와 교인들의 서명이라는 절차에 따르도록 교회법에 의해 까다롭게 규정된다.

더 근본적으로 따져야 할 문제는 교역자의 ‘근로자성’을 법률로써 인정받아 부교역자들이 겪는 문제들을 푸는 것이 교회의 고유한 업무들과 그 업무들을 수행하는 교역자의 정체성에 비추어 볼 때 적절한가 하는 것이다. 교역자가 수행하는 업무들은 교회의 자기이해에 근거하고 있는데,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전제하는 세속국가의 헌정질서에서 교회 고유의 업무들에 해당하는 교역자의 업무들을 세속 법률들에 의해 규율한다는 것이 타당한가?

이 엄중한 질문들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없다면, 부교역자들의 직무를 규율하는 지침은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세계관적 기관인 교회 나름의 원칙에 따라 제정되어야 한다. 필자는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가 설정하는 참여의 관점에서 이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참여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각기 다른 분량으로 받은 지체들로 구성된 유기체인 교회(고전 12장)가 협의체적 성격을 유지하면서 지체들 사이의 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협력하도록 이끄는 원칙이다.

교역자의 정체성과 직무관계

오늘의 교역은 교역자 한 사람에 의해 수행되기보다 여러 교역자들이 함께 팀을 이루어 수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회에 필요한 교역자들의 수효가 늘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수행하여야 할 일이 다양해지고 전문화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는 세상에서 화해하고, 치유하고, 해방하고, 생명을 북돋는 하나님의 활동에 동참하면서 매우 다양한 일을 수행한다.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일, 회중을 가르치고 교회의 진리를 전달하는 일, 영혼을 돌보고 봉사활동을 벌이는 일,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전문적인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이 일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교회의 청빙을 받아 함께 일하는 교역자들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여 강력한 교역 지도력을 발휘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오늘의 교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주체는 교역자 개인이기보다는 교역자들이 꾸리는 전문가 동역단(collegium)이라고 말해야 할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 전문가 동역단이 제대로 조직되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교역자 개개인의 지도력도 바로 서기 어렵다.

▲ 2015년에 발표된 부교역자 월 평균 사례비 현황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에서 전문가 동역단을 구성하고 운영하면서 강력한 교역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교역자는 남성이거나 여성이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경력이 길거나 짧거나, 학력이 많거나 적거나 간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소정의 절차에 따라 교역자로 임직하여 전문가로서 일한다는 점에서 동등하다. 그러나 이러한 교역자들의 동등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교역자들 사이의 현실적인 관계를 다 설명했다고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교단 헌법은 당회가 조직된 교회에 담임목사(혹은 위임목사, 이하 ‘담임목사’로 표기)를 두고, 부목사는 담임목사를 보좌하는 목사로 규정하고 있다. 부목사의 청빙은 담임목사의 추천을 받도록 되어 있고, 담임목사가 사임하면 함께 사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의 참모로서 직무를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하나님이 맡긴 전문적 교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 교역자의 정체성과 교회 헌법에 의해 규정되는 교역자들 사이의 직무관계는 서로 충돌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한 교회를 섬기는 교역자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 교역 지도력 행사는 고사하고 교회를 분란에 빠뜨릴 소지가 있다.

교역자들이 구성하는 전문가 동역단이 지도력을 발휘하여 교회의 덕과 유익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최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최적의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밝히기 전에 전문가 동역단을 구성하면서 고려하여야 할 두 가지 근본사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모든 교역자들에게는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행위의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역자들 사이의 직무관계는 서열적 지배관계가 아니라 협의체적 동반자관계라는 것이다.

전문가적 행위의 자율성

흔히들 교역자를 가리켜 교회를 섬기는 종이라고 하지만, 교역자가 교회를 섬기는 종이라는 것은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를 통하여 교회를 섬긴다는 뜻이다.(마르틴 루터)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직무는 결코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섬기는 웨이터의 직무가 아니며, 농장이나 집안일을 섬기는 머슴의 직무가 아니다. 교역자에게 주어진 가장 고상하고 가장 중요한 직무가 섬기는 종이라는 직책으로 표현되었다고 해서, 만의 하나라도, 자신이 속한 교회의 교역자를 비하하는 말본새로 쓰여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전문가로 세워졌기에 그는 자유로워야 하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교역자가 회중에게 입바른 소리를 지껄이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의 뻔한 기대를 저버리고, 회중의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을 위해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그의 지위는 강력하여야 하고 자율적이어야 한다. 설교의 직무를 맡은 교역자의 자율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존엄성과 권위에 대응한다. 따라서 교역자는 그 누구의 지시도 받을 수 없고 그 어떤 직접적인 통제나 감독을 받아서도 안 된다. 교역자는 교회의 일을 나누어 맡아 수행하는 기능인이 결코 아니며, 당회는 교역자들의 일을 감독하는 감독위원회일 수 없다.

이와 같은 교역자의 자율성은 영혼을 돌보는 일에 관련해서도 강조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신도가 밝힌 고백의 비밀을 교역자가 지켜야 한다는 직무상의 의무를 놓고 볼 때, 교역자들이 모여서 동역단을 구성하고 있는 경우에도 교역자가 교역 전문가로서 누려야 할 자율성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가치로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역자가 영혼을 돌보는 일에 관련하여 어떤 일을 언제,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수행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교역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협의체적 동반자 관계

그런데 오늘의 현실 교회에서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사이의 직무관계는, 불행하게도, CEO와 간부직원, 사령관과 참모, 명령자와 수행자의 관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교회경영’이나 ‘교회행정’이라는 낱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교회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업들을 전투적인 구호로 독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로 구성된 교역자 집단이 기업이나 국가기관 혹은 심지어 군대의 조직 원리에 따르는 서열적 지배관계에 부지불식간에 익숙해지기 쉽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담임목사가 나이가 지긋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교적 서열의식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장로교회 전통에서는 교회에 대한 주권이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고백이 특별하게 강조되어 왔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 또 그렇게 존속할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어떤 단일한 직책의 우위나 지배가 있을 수 없고, 어떤 한 직책이 다른 한 직책을 지배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J. Calvin, Institutio IV, 6, 9-10)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에서는 전제적 지배도, 서열적 지배도 성립되지 않는다. 교역자들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캘빈은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교회에서 교역자들이 구성하는 단체는 자유롭게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된 교회에서는 어떤 한 직책의 전제나 서열적 지배가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교역자들은 전문가적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전문가들 상호간의 협의와 협력에 근거해서 동역단을 꾸릴 수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전문가 동역단을 협의체적 동반자관계로 성격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담임목사의 지도력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지도력이 전제의 형태를 취할 수도 없고, 서열적 지배의 형태를 취할 수도 없다면, 교역자들 사이에서 담임목사가 맡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역할은 목회적 돌봄이다. 아마 그러한 역할 모델을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디모데전서 3장 4-5절일 것이다. 여기서 디모데전서의 저자는 감독의 덕목을 여러 가지로 나열하면서 가정을 잘 다스리는 능력과 회중을 잘 보살피는 능력을 병행시키고 있다. 저자는 감독이 가장으로서 아내와 자식, 그리고 노예들을 잘 다스리고 가정의 지체들을 보살피는 책임을 제대로 지는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도 디모데전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일이 가정을 ‘다스리는 일’과는 엄격하게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당시의 가부장적 가족 문화를 감안할 때, 가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가부장의 절대적인 지배권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바로 그와 같은 지배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모데전서 3장은 오직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목회적 돌봄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또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셈이다.

디모데전서 3장이 말하는 ‘감독’은 오늘의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새겨도 무방할 것이다. 담임목사는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책임을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부교역자들을 목회적으로 돌보는 직무를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교역의 전문가로서는 다른 부교역자들과 동등한 자율성을 행사하지만, 교회 헌법이 규정한 담임목사로서는 교역 전문가 동역단에서 최고의 지도력을 발휘하여야 하고, 이를 위해 그는 기꺼이 부교역자들을 위한 목회를 맡아야 한다.

담임목사의 교역자 목회는 교역자들이 교역에서 느끼는 좌절이나 동요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교역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경쟁이나 심리적인 긴장을 완화하고, 교역자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협응하며 교역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이러한 일이 강권이나 명령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담임목사가 부교역자들을 목회적으로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교역 전문가들을 위한 목회는 담임목사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지도력이다.

전문가 동역단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방안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이 전문가 동역단을 꾸려서 교역 지도력을 행사하고자 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교역자들의 교회내 지위를 안정시키고 강화시키는 일이다. 대부분의 교단 헌법은 부목사의 임기를 1년으로 규정하고 있고, 부목사의 청빙과 계속 시무에 관련하여 담임목사의 권한을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다. 현장 교회의 교역에서 담임목사의 지도력이 갖는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들이 마련되었겠지만, 필자는 부교역자들이 교역자로서 누려야 할 전문가적 자율성을 강력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직무관계를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단기적으로는 부교역자들의 시무 기간을 당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은 교회의 ‘전도목사’처럼 3년으로 규정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전문가 동역단에 참여하는 교역자의 시무 기간을 따로 정하여 운영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교단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 헌법에 근거하여 교단 총회 차원에서 가칭 ‘교역자 직무관계법’ 같은 것을 제정하여 그 법제에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직무관계에 관한 제반사항을 규율하는 지침들을 담아야 할 것이다.

가칭 ‘교역자 직무관계법’은 교회에서 함께 일하는 교역자들이 상대방을 교역 전문가로 인정하는 일, 각 교역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교역자 동역단을 구성하는 일, 교역자 동역단의 업무를 분장하고 서로 협력하는 일 등을 규정하고, 거기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예상하고 그 문제들을 처리하는 법적인 지침들을 담아야 한다. 교역자의 전문성은 교역자 개인의 됨됨이와 교역자 자신이 수행하는 직무의 통일성에 근거하기 때문에 교역자의 직무 수행에 관련된 평가나 비판은 교역자의 인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위험한 사태를 회피하기 위해서 교역전문가 동역단이 업무 평가에 관련된 지침들을 정교하게 만들고 그 지침들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직무 지침은 교역 전문가의 활동을 표준화하고 계량화하는 것일 수 없다. 교역의 성과는 경영의 성과처럼 양적인 평가 기준을 가질 수 없고, 시장에서처럼 고객의 만족도를 측정한다고 해서 파악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역자가 전문가로서 수행하는 자율적 행위를 촉진하면서 교역자 동역단이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직무 지침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역자 동역단이 교회 회중과 더불어 공동체 형성의 목표와 비전을 명확하게 가다듬고 이를 공유할 수 있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교역자가 자신의 교역 활동을 이와 같은 목표와 비전에 투명해지도록 스스로 조절하고 평가할 수 있다. 교역자 동역단이 이와 같은 조율과 평가를 함께 훈련한다면 직무 지침에 따라 전문가적 교역 활동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역자가 고백의 비밀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것을 내세워 동역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함께 섬기는 일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에 어떤 해법이 있는가 하는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교회는 신부 앞에서 밝히는 고백을 성사로 취급할 만큼 고백의 비밀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비밀의 준수는 교역자와 신도 사이에서 반드시 유지되어야 할 성실 의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성실 의무가 준수되지 않을 경우에는 교역자와 신도의 신뢰관계가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신도가 품고 있는 비밀을 교역자들 사이에서 공유한다면, 그것은 이미 비밀이 아닐 것이므로 수습할 수 없는 위험한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고백의 비밀을 성실하게 지키는 일과 하나님의 백성을 함께 섬기는 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전문가 동역단을 운영할 때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교역자 직무 지침에 명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대 교회가 수행하여야 할 복합적인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교역자가 전문 분야를 정하여 그 직무를 수행하고 그 직무의 수행과정과 성과를 교역자 동역단이 공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동역단은 유기적 전체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각 분야에서 수행하여야 할 일을 함께 기획하고 이에 대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오직 그렇게 할 때에만 ‘교역 민주주의’(ministry democracy)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직무 분담과 협력,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을 규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교역자 직무 지침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수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전문성에 따라 교역자들에게 분배되었다고 해서 어떤 교역자가 자신의 직무 영역을 독립된 영역으로 간주하고 그 영역에서 마치 주권자로서 행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역자들이 협의체를 이루어 민주적으로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는 기본방침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와 봉사의 위임에 따라 교회가 세상에서 수행하여야 할 일들은 설교와 목회처럼 교역자 개개인의 전문가적 자율성에 맡겨진 것도 있지만, 교육, 봉사, 공동체 형성 등과 같이 교역자들의 직무 분담과 협력을 통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교역자 직무조건과 급여에 대한 규율

가칭 ‘교역자 직무관계법’에는 교역자의 직무 수행 시간과 직무 조건, 급여에 관해서도 합리적인 지침이 담겨야 할 것이다. 교인들의 요구에 따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교역에 임하여야 한다는 것은 전인적 주체로서 자신을 형성하면서 최고의 교역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준비하여야 할 교역자들에게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교역자들에게는 노동과 휴식의 균형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 자신과 가족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급여가 부여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쉽지 않은 문제들을 풀기 위한 방안을 다음 연재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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