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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어록복음서Q복음서를 발견하기까지 (7)
김재현 교수(계명대) | 승인 2019.09.13 22:51

지난 글들을 통해 이야기했던 마쉬에서 클로펜보그에 이르는 Q연구 역사는 그야말로 Q 내러티브를 은폐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Q의 내러티브는 논의에서 제외되거나(Marsh, Schleiermacher, Robinson, Koester), 부인되고(Holtzmann, Lührmann), 비유나(Weisse), 교훈으로(Dibelius) 취급되었다. 즉 Q의 나머지 부분에 비해 비본질적인 “첨가물”(Wernle, Harnack, Bultmann, Kloppenborg)로 간주되어왔다.

왜 학자들은 내러티브를 Q로부터 제거했는가

왜 마쉬에서 클로펜보그에 이르는 학자들이 Q에서 내러티브의 존재를 제거하거나, Q 내러티브를 비본질적인 첨가물로 간주했는가? 연구사에 대한 반성의 결과는 그들이 어록/내러티브라는 이분법(dichotomy)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분법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의견은 훌트그렌의 Q 연구사에 관한 논의에서 발견하게 된다.

Q와 공관복음서 사이에 어록/내러티브라는 이원론을 강화시킨 세 가지 계기가 있다. 첫째는 Q가 가지는 “현저한” 어록적 특성이다. 마가에 없는 마태와 누가의 공통부분을 정리하니 약 100여절의 어록들이 출현했다.

이것은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는 강력한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저한 어록적 특징은 먼 거리에서 본 도식적 인상이다. 세밀하게 살펴보면 Q에서도 내러티브적 본문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둘째, Q에 수난 내러티브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는 Q가 어록 자료일 뿐이며 내러티브 장르와 거리가 멀다는 인상을 주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수난 내러티브가 없다는 사실이 Q의 내러티브적 특징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셋째, 외부 문헌의 증거 및 외부 문헌과의 비교가 Q의 어록적 특징을 강화시켰다. 특히 슐라이어마허의 파피아스 비망록에 대한 재해석은 Q 연구의 방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근래의 파피아스 비망록에 관한 연구는 “로기아”가 단순히 어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를 포함한 신탁을 뜻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1960-1970년대 이후에는 Q와 도마복음과의 비교작업이 Q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복음서가 보여주는 예수에 대한 그림을 종합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Getty Image

Q에 대한 학자들의 선입견

Q와 공관복음서 사이의 어록/내러티브라는 이분법은 개괄적인 도식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틀린 것은 아니지만 세밀한 분석의 차원에서 볼 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Q가 전반적으로 어록으로 구성된 복음서라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Q가 또한 적지 않은 내러티브적 자료와 내러티브 배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시험이야기(Q4:1-13)와 가버나움 백부장 이야기(Q7:1-10)는 어록/내러티브의 이분법에 대한 강력한 반증이다. 뿐만 아니라 Q가 연대기적 배열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Polag, Sato, Allison). 이와 같은 사실은 어록/내러티브의 이분법이 Q의 소수 내러티브들을 억압하고 은폐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둘째, 수난 내러티브가 없다는 사실은 결코 Q에 내러티브가 없다는 것의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예수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는 수난 내러티브와 달리 예수의 삶의 연대기에 관심을 가지는 전승이 생성되고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험프리는 마가복음이 Q가 발전한 QN(Q 내러티브)와 수난 내러티브의 근거가 되는 PN(Passion Narraitve)로 구성된 것으로 보았다.

뒤에 논의하겠지만 Q는 예수 생애 최초의 연대기를 거의 구성해 가고 있었다. 또한 Q 내러티브에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희미하게 암시되고 있다. Q는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내러티브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셋째, 외부문헌, 특히 도마복음서와의 비교는 어록복음서/내러티브 복음서의 이분법을 형성시켰다. 그러나 Q에 대한 편집사적 연구, Q의 구조와 도마의 구조가 매우 상이하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특히 사토는 Q의 시작부분에 있는 연대기적-전기적 요소(chronologisch-biographisches Moment)가 지혜적 어록 수집록의 고유의 특징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1)

Q와 도마복음서는 거의 어록을 재료로 구성되었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도마복음의 파편적 성격과 달리 Q는 편집사적 연구가 가능한 본문 배열을 포함하고 있다. Q와 도마복음이 다른 점은 어록으로 된 전승 자료가 아니라 그 두 복음서의 편집양상이다.

Q복음서는 어록과 내러티브의 조화

보다 최근에는 로빈슨-쾨스터-클로펜보그의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대가 일어났다. Q와 디다케와의 비교,(2) Q와 마가복음과의 비교,(3) Q와 구약 성서와의 비교(4)는 Q가 도마복음서나 견유학파 전승과 같은 헬라 문화보다는 히브리 문화 및 성서의 신구약 정경과 더 가깝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도마복음은 Q를 바라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평이 아니다. Q+도마복음(어록복음서)/ 마태+마가+누가(내러티브 복음서)라는 이분법이 깨어진다면 Q가 어록이라는 선입견 없이 Q의 내러티브적 측면을 연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Q에 내러티브가 있음에 대한 증거는 Q 연구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특히 최근에 와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Q 연구사를 재발굴해 보면, Q에 내러티브적 본문이 있다는 주장(Bussmann, Weiss) 뿐 아니라 Q가 내러티브적 구조와 배열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Streeter, Polag, Sato, Allison, Fleddermann)을 발견할 수 있다.

Q를 찬성하는 Q 연구가들에 대한 연구사적 고찰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Q 연구사를 고찰해 보면 Q의 발굴기부터 최근까지 학자들은 지속적으로 Q에 내러티브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록 도마복음의 발견 이후 로빈슨과 클로펜보그의 활약으로 Q 내러티브에 관한 논의는 약화되었지만, Q에 내러티브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의 계속해서 제시되어 왔다.

둘째, Q는 공관복음서와 같은 전체적인 내러티브 장르의 전승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Q 내러티브는 부분적 내러티브이다. 그리고 Q에 내러티브적 요소와 구조가 있다고 해도 이제 막 연대기적-전기적 배열이 시작되는 단계를 반영하며 그 내러티브적 특징은 매우 희미하게 존재한다.

Q는 전체적으로 예언적 어록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내러티브적 구성과 배열은 절반 정도의 범위를 차지할 뿐이다. Q는 “절반의 복음서”(Halbevangelium)라고 불리운 적이 있는데,(5) 그야말로 Q는 절반의 내러티브 구조와 절반의 어록 구조가 결합한, 예언적 어록에서 내러티브로 가는 애매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보다 적절하게 표현하자면 Q 복음서는 어록이 내러티브를 포괄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셋째, Q 내러티브를 인정하는 학자들의 대부분은 Q의 시작부분이 세례요한의 출현/선포와 더불어 출발한다는 것에 대해서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Q 내러티브가 어디에서 중단되는가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서로 다른 의견이 제시된다. 다음 글에서는 Q 내러티브 논의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연구자 중 두 사람인 사토와 앨리슨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종합해서 Q 내러티브의 범위를 확정하고자 한다.

훌트그렌과 험프리는 각각 이중전승과 Q에 내러티브가 있음을 주장했다. 훌트그렌은 자신이 재구성한 이중전승 전체(이는 기존의 재구성된 Q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으며 심지어 수난 이야기까지 포함된다)에서 내러티브를 발견한다. 험프리는 Q가 마가복음의 자료가 되는 과정에서 내러티브 자료(QN)로 발전되었다고 판단하며 그 자료를 재구성한다.

이 두 사람의 작업은 비록 Q 내러티브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Q의 본문설정에 있어 독자적인 재구성에 의존하거나 독자적인 QN 내러티브 자료를 가정하기 때문에 보다 깊고 세밀한 검토작업을 요구한다. 그러한 검토작업은 논문의 주제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비록 간략한 시론에 머물렀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플레더만은 Q에 대한 서사비평적 접근의 선구적인 작업을 시도했다. 그는 Q에 플롯, 등장인물, 배경설정, 화자, 주제, 그리고 음조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그는 Q에 대한 서사비평적 분석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Q와 서사비평을 연결시킨 그의 작업의 의미는 몹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글에서 사토, 앨리슨의 연구를 계승 발전시켜 플레더만의 작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

미주

(미주 1) Sato, Q und Prophetie, 4.
(미주 2) R. A. Horsley, "Logoi Propheton?: Reflections on the Genre of Q," The Future of Early Christianity : Essay in Honor of Helmut Koeseter, ed. B. A. Pearso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1), 195-219. R. A. Horsley, "The Contours of Q," R. A. Horsley and J. A. Draper, Whoever Hears You Hears Me, 41-60.
(미주 3) E. P. Meadors, Jesus: The Messianic Herald of Salvation (Tübingen: J. C. B. Mohr(Paul Siebeck), 1995).

(미주 4) Sato, Q und Prophetie. D. C. Allision, The Intertextual Jesus: Scripture in Q (Harrisburg,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Horsley and Draper, Whoever Hears You hears Me. 앨리슨과 마찬가지로 홀슬리, 드래퍼는 Q와 외경경전과의 연관성도 밝히고 있다.
(미주 5) Schulz, Q, 23-25.

김재현 교수(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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