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생활 칼럼
페트라요르단에서 보내는 세 번째 편지
수헤이르 | 승인 2019.09.14 14:56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을 중심으로 볼 때 북쪽은 산과 밭이 많아 초록으로 채색된 땅을 볼 수 있는 반면 남쪽은 주로 광야나 민둥산으로 땅의 솔직한 민낯을 보게 된다.

암만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선사시대부터 살았던 아라비아 유목민의 일족인 나바테아인이 세운 고대도시 페트라가 나온다.

<페트라>

그곳은 성경에서 ‘셀라’라 불리던 에돔 왕국의 수도가 있던 곳으로 이삭의 큰 아들 ‘에서’가 살던 곳이기도 하고 헬레니즘과 로마시대를 거치며 아라비아의 향료와 중국의 비단 그리고 인도의 향신료가 거래 되던 곳이다.

그러나 무역이 쇠퇴하면서 페트라는 쇠퇴하였고 6세기 경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1500여 년 동안 사막에 묻혀 졌다. 그 후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의 탐험가 요한 루드비히 부르크하르크에 의해 발견 되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페트라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한 곳이다. 불가사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신비한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얼마나 위대한 힘과 지혜와 열정을 주셨는지를 볼 수 있었다.

페트라를 보고 온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이라고 한다.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 한 두 곳일까 마는 지금부터 이천년 전 바위산을 깎아 만든 고대도시의 신비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 가 보는 것도 평생에 남을 추억이 될 것이다.

나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을 가진 페트라를 오래 전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최후의 성전’에서 본 적이 있고, 드라마 ‘미생’을 통해서 더욱 자세히 보게 되면서 나도 저곳에 가 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팔월, 더위가 한창 쏟아져 내리던 날, 드디어 나도 페트라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암만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반은 족히 달린 것 같다. 해발을 가늠 할 수 없이 높은 민둥산을 돌고 돌아 달리다 보니 눈을 의심 할 만큼 놀라운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이 보였다. 페트라였다.

야간 페트라를 먼저 보기로 계획하고 나선 일정이었다. 야간 페트라는 월, 화, 목요일에 열린다기에 요일과 시간을 맞춰 나섰지만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페트라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 먼저 들어갔다. 페트라 박물관은 그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과 고대 유목민의 삶을 볼 수 있도록 잘 전시되어 있었고 박물관 주변에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야간 페트라>

드디어 페트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야간 페트라를 보기 위해 온 많은 사람들이 협곡 사이로 난 길을 엄숙하게 걸어 들어갔다. 세상의 문명은 모두 숨죽이고 있는 태고의 밤, 단지 별빛과 촛불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묵묵히 걷다보니 수백 개의 촛불이 한꺼번에 밝혀주고 있는 광장이 나왔다.

종이로 씌운 촛불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광장에 안내인이 인도해 주는 바닥에 앉아 다리를 뻗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안내인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아랍차를 한 잔씩 주었다.

아랍차는 맛도 좋지만 향이 더 좋다. 그 향은 뭐라 설명 할 수 없이 묘하다. 차를 마시며 아랍 전통 악기 연주를 듣다보니 베두인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이 나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 노래를 불렀다. 가사의 뜻을 모르는데도 답답하지 않았다. 왠지 그 분위기에서는 그런 노래를 불러야만 할 것 같았다. 흥얼거리듯 가락이 이어지면서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노래는 계속되었다.

듣고 있는 나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 속으로 호로록 들어가는 것 같았고,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홍해 바다 어딘가를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하늘엔 별, 지상엔 촛불, 그 속에서 나는 노래 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그때 갑자기 전등이 일제히 켜지면서 알카즈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조용히 아랍음악을 감상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우리 앞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알카즈네를 사진에 담기에 바빴다.

<알카즈네>

축제는 끝나고 사람들은 조용히 일어났다. 평생에 간직할 공동의 추억을 각자의 가슴에 간직한 채 그들은 올 때처럼 묵묵히 왔던 길을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다시 페트라를 보기 위해 일찍 숙소를 나섰다. 어둠속에 숨어 있던 페트라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먼저 ‘시크’에 들어섰다. 지난밤에 별과 촛불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나섰기에 볼 수 없었던 협곡 시크를 경이로운 눈으로 올려다보며 걷다보니 돌을 파서 만든 수로도 시크를 따라 함께 가고 있었다. 물이 귀한 광야에서 물줄기를 찾아 댐을  만들어 페트라 도시에 이렇게 공급 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예고도 없이 갑자기 ‘알카즈네’가 눈앞에 나타났다. ‘보물창고’라는 뜻을 가진 알카즈네는 페트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절벽을 안으로 깎아 만든 신전이다. 신전 안으로 들어 가 볼 수는 없지만 그 유명한 알카즈네를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시크>

알카즈네 광장에서 물을 마시고 사진도 찍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무더위 속에 시크를 걸어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바위에 구멍을 뚫어 만든 돌무덤 군을 지나 원형 극장에 다다랐다. 이 원형극장은 나바티안 왕국의 전성기에 돌을 깎아 만든 곳으로 8,000 명 이상을 수용 할 수 있는 규모라니 그들의 배포가 놀라웠다.

나는 불쑥 원형극장 무대에서 누가 듣든지 안 듣든지 고려가요 ‘가시리’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필이면 이때 생각나는 노래가 ‘가시리’라니...

<원형극장>

페트라 가까이에 있는 아론의 무덤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무리라 싶어 마음을 접었다.
 
왕의 무덤을 끝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 페트라를 나왔다. 페트라는 계속 발굴 하고 있다니 기대에 찬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해 본다.

나를 태운 차는 다시 남쪽으로 달렸다.
붉은 사막 와디럼을 향해...

<왕의 무덤>

수헤이르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수헤이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