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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괴물 장애 아들 게르하르트가 잠들게 허락해 주세요”“환자 K”, 나치 장애인 학살 T4 작전의 첫 희생자
이정훈 | 승인 2019.09.19 17:46

2003년 10월 베를린에서 진행된 한 행사에서 명단 하나가 발표된다. 공개된 이 명단의 제일 첫 자리에는 “Gerhard Kretschmar”(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이 명단의 정체는 무엇이고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는 누구일까?

▲ Hadamar(하다마르) 연구소에서 발견된 사망자 명단의 한 페이지. 이 연구소에서 장애인 학살 T4작전이 수행되었다. 이 사망자들이 안락사 되었음에도 이를 숨기기 위해 봉인되었었다. ⓒUnited States Holocaust Medical Museum; https://collections.ushmm.org/search/catalog/pa6789

먼저 이 명단은 독일 정부 기록 보관소 연구자들이 3년간의 발굴 작업으로 완성한, 이른바 나치의 비밀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T4 작전의 희생자들 이름이 기록된 것이다. T4 작전은 장애인들을 학살하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는 이 학살 작전의 명분을 만들어준 장애 아이였다.

장애인 학살 작전의 명분을 줄 장애 아이가 태어났다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의 부모, Richard Kretschmar(리하르트 크레취마르)와 Lina Kretschmar(리나 크레취마르)는 나치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크레취마르 부부는 독일 동부 라이프치히 부근 폼센의 작은 작센 마을의 농장 노동자로 생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도 여느 가정과 같이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크레취마르 부부의 아이는 리나 크레취마르가 임신한 후 5달 만에 태어났다. 아버지 리하르트 크레취마르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를 데리고 라이프치히의 소아 병원을 찾아갔다. 리하르트 크레취마르는 소아과 의사 Werner Catel(베르너 카텔)에게 자신의 아들이 “잠들게 해달라”(put to sleep)고 요청한다.

하지만 베르너 카텔은 아이를 안락사 시키는 것은 불법이라며 거절한다. 결국 리하르트 크레취마르는 1939년 7월, 독일 제3 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 앞으로 편지 한통을 보낸다. 편지의 내용은 “이 괴물”(The Monster, 리하르트 크레취마르가 직접 이 단어를 사용했다)을 안락사를 막는 것이 불법이 아닌지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고, 결국 자신의 장애 아들이 “잠들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 편지를 받아 든 히틀러는 이 아이를 살펴보도록 자신의 개인 주치의였던 Karl Brandt(칼 브란트)를 크레취마르 부부에게 보낸다. 칼 브란트를 보내며 히틀러는 리하르트 크레취마르가 쓴 것처럼 아이의 상태가 심각하면 지역의 의사와 상의해 죽이라고 명령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칼 브란트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기형아의 아버지는 총통에게 이 아이 혹은 이 괴물의 생명을 죽일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히틀러는 나에게 이 아이를 진찰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시각장애아였고, 백치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리 하나와 팔 하나가 없었습니다.”

칼 브란트는, 정확하게 그 지역의 어느 의사인지는 몰랐던 것 같고, 게르하르트에게 용해제 형태의 ‘진정 최면제’(luminal)가 투여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 약물로 인해 게르하르트는 3~5일 후 의식을 잃고 결국 1939년 7월25일에 사망한다. 리하르트 크레취마르가 히틀러에게 편지를 보낸 날짜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모든 일이 불과 열흘 안에 벌어진 것이다.

▲ 장애인 학살 T4 작전의 주요 인물이었던 히틀러의 개인주치의 칼 브란트. 1947년 8월20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되는 판결을 듣고 있다. ⓒWikimedia Commons

하지만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가 안장되어 있는 교회 문서에 따르면, 게르하르트의 사인은 전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T4 작전의 또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안락사가 아니라 “심부전”으로 인한 사망인 것이다. 이후 이 약물은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학살된 다른 장애인 희생자들에게도 사용되었다. 

1939년 게르하르트가 살해당하고 며칠 후 15명의 정신과 의사는 히틀러의 직무실로 호출되었고, 히틀러가 10년 이상 꿈꾸었던, 비밀 안락사 프로그램을 통해 이루어질 꿈이 시행될 것이라고 전해 듣게 된다. 결국 게르하르트 사건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장애를 가진 30만 명에 육박하는 장애인들에게 “자비로운 죽음”(mercy killing)을 초래한 나치 비밀 법령의 근거를 제공하는 구실이 되었다. 크레취마르 부부는 단지 자신들의 아들만 죽기 원했지만 다른 부모들은 나치에게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아이들을 빼앗겼고 결국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았던 “환자 K”

하지만 2003년 10월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나치의 의사들이 안락사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에도 게르하르트는 단지 “환자 K”로 불렸다. 또한 2차 대전에 끝나고 나치에 대한 전범재판이 이루어졌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도 나치의 의사들은 동일한 용어를 사용했다. 이름이 밝히지 않았고 알지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게르하르트는 “환자 K”로 역사에 묻힐 것 같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 정부 기록 연구자들이 안락사 프로그램과 관련 공개되지 않았던 740여개의 파일을 연구하던 가운데 “환자 K”의 이름이 “게르하르트 크레취마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파일들은 원래 히틀러의 직무실에 있던 것으로 스타시(Stasi), 즉 동독 비밀경찰이 기록 보관소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칼 브란트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과정에서 나치의 계획 또 하나를 폭로한다. 이 계획은 ‘열등한 민족을 지배할 수 있는 민족’(master race)을 창조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열등한 인종, 즉 장애인들을 학살하고 우수한 아리안 민족들의 아이들만 태어나게 하는 계획을 수행할 구실이 바로 “환자 K”였다는 것이다.

안락사 프로그램을 관장할 본부가 설치되어 있던 베를린 소재 ‘티어가르텐 4가(街)’(Tiergartenstraße)의 이름을 따라 T4라는 암호명으로 지칭되었다. 1939년을 시작으로, 6개의 병원이 장애인들 “처리”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03년에 발표된 문서에 의하면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등에 산재해 있던 296개의 의료시설로 마침내 이 작전은 확대되었다.

이 시설들에서 장애인들은 약물과 가스, 굶주림으로 학살되었다.

▲ 장애인 학살 T4작전이 수행되었던 하마다르 연구소 ⓒWikipedia

인간의 존엄을 위해 역사를 직시해야

2003년 당시 발표된 보고서는 “가치 없는 생명”(unworthy of living)으로 취급된 사람들의 삶을 폐기처분하기 위한 제3 제국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수백 개의 병원과 진료소를 포함한 나치 기록의 가장 포괄적인 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는 안락사 프로그램에 의해 학살당한 275,000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들 중 200,000명의 이름과 사건 세부 사항을 담고 있다.

2003년 당시 독일 문화부 장관인 Christina Weiss(크리스티나 바이스)는 명단을 공개하는 행사에서 “이 보고서는 진실을 마주하고 희생자들의 존엄을 회복시키기 위해 작성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바이스 장관은 “우리는 이 범죄들이 비밀로 붙여질 의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거짓 애도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에 가담했던 의사들은 가명이었습니다. 희생자들의 명단은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인정하고 기록을 바로 세우려는 시도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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