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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가 말하는 땅(에스겔 47:13-23)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09.20 17:57

현대인들은 땅을 일터로 대하기보다는 부동산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땅의 분배에 관한 말씀에 대한 느낌이 옛날 사람들이 받았을 느낌과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땅은 부동산이 아니라 생명의 터전입니다. 그곳은 누군가가 가족을 이루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삶의 필수요소입니다. 농경사회에서 땅을 잃었다는 것은 살아갈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희년법에서는 어떤 이유로 남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든지, 희년이 되면 돌려주라고 명령합니다. 땅은 “돌아갈 곳”이기 때문입니다(레25:10).

그리고 땅에 대한 가장 중요한 사상은 레위기 25장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땅이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의 터전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은 삶의 기회를 공평하게 나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모세와 함께 이집트에서 나온 무리가 가나안 땅으로 스며들어 가던 시절과 다르게, 에스겔이 말씀을 선포하던 시절에는 이미 땅의 경계선들이 분명하게 그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겔의 땅 분배에 관한 말씀 선포는 거의 혁명을 일으키라는 부추김에 맞먹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성서의 땅 ⓒGetty Image

이런 과격한 메시지가 필요했던 이유를 우리는 ‘공평’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든 안정되면 기득권이 발생하고, 기득권이 발생하면 빈익빈 부익부가 점점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습니까?

에스겔 47장에는 또 한 가지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는데, 바로 이방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민자인 외국인들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주라는 말씀이 22절과 23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서의 ‘진멸’ 명령과 비교하자면 놀라운 차이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차이는, 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중요성을 모르던 백성들에게 선포된 말씀과 이제 그 의미는 알지만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워야 하는 백성들에게 선포된 말씀의 차이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어느 명령도 글자 그대로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선포된 말씀들의 중심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다.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오직 야훼”였고, 에스겔과 그 백성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거룩한 평화 공존”이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얼마 전 한 정치인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동등한 임금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가 기독교인이고 무려 전도사씩이나 했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차별 없는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은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꿈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믿는 사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씀 가운데에서 바르게 깨닫고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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