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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프랑스 왕 프랑수와 1세에게 드리는 헌사 (6)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19.09.21 18:12

칼빈은 여기서 로마 교회에 반하여 참된 교회의 성격을 천명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서 다스리고 있는 한 확실히 살아있으며, 계속 그 생명을 유지할 것입니다. 교회는 내적, 외적인 반대자들에 의해 동요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이시며 머리이신 한 침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까지나 그리스도의 손에 의해 지탱되고, 그의 보호하심으로 방어되며, 그의 능력으로 안전하게 보존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일단 약속하신 것을 틀림없이 이루시어 자기 백성과 더불어 “세상 끝날까지”(마28:2) 함께 계실 것입니다. 따라서 칼빈은 반대자들이 자신들에 대하여 교회 안에서 혼란과 물의, 분리를 일으키고 소동을 일으킨다고 온갖 비방과 중상 모략을 하는데, 자신들은 결코 이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를 대항하여 싸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합니다(헌사 61이하).

교회의 표지들

『기독교강요』 제4권 교회론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만, 바로 여기서 교회의 ‘표지들’에 대한 개혁자들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표지들이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니케아의 표지라고 알려진 교회의 표지들입니다.

니케아 신경을 보면 교회의 4가지 표지들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믿습니다”는 말입니다.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적인 교회, 사도적인 교회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볼 때, 당대의 교회가 철저하게 부패했기 때문에, 교회를 교회로 드러내 주는 이 4가지 표지들만으로는 교회가 참된지, 거짓된 교회인지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교회로 드러내는, 거짓교회로부터 참된 교회를 판별해 주는 새로운 표지가 필요했습니다. 이 새로운 표지가 루터에 의해 작성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에 처음으로 명시되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을 순수하게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대로 성례전을 거행하는 것이었습니다.

▲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Getty Image

그러니까 칼빈은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머리이며 주이신 교회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거짓 교회를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그 교회를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가 공격하는 교회는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대적들은 현재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만을 인정하고, 이것을 가두어 둘 수 없는 테두리 안에 제한시키려고 함으로써 진리에서 멀리 떠났습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기초로 하여 논쟁의 방향을 바꾸려합니다. 첫째, 그들은 교회의 형체를 유형적이며 가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로, 저들은 그 형체를 로마 교회의 교황청과 교직 계급제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은 이와는 반대로, 교회는 어떤 유형적인 형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형체는 그들이 어리석게 찬양하는 그런 외부적인 화려함에 내포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혀 다른 표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전파와 성례의 합법적 시행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언제나 손가락으로 지적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발광을 하고 있습니다(헌사, 62).

어거스틴은 교회를 정의할 때,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가시적 교회는 눈에 보이는 교회를 말하고, 불가시적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인데, 칼빈은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칼빈의 교회론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칼빈의 교회론과 예정론의 통합

지금 교황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가시적 교회는 분명히 외형적 형태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주교좌성당, 바로 여기 들어와야만 소위 그리스도의 백성이요,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울타리 밖에서 지금 새롭게 개혁운동을 전개하는 루터나 칼빈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이단자들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불가시적 교회는 굉장히 그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아담부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교회까지, 이 큰 교회가 불가시적 교회입니다. 이 불가시적 교회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예정론, 교회론 이런 모든 교리들이 다 통합니다. 칼빈은 예정론이 약간 무리가 있는 교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예정교리를 중요한 교리로 전개􏰁는데(3권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바로 교회론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4절에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이 예정론의 성경적-신학적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택하신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시적 교회에 어떻게 다 포함되겠습니까?

가시적 교회라는 것은 교회를 정의하는 아주 작은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가시적 교회는 교회의 더 큰 개념으로 가시적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비판적으로 교회가 잘못할 때 불가시적 교회의 개념으로 가시적 교회를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교회를 향한 개혁

칼빈의 말을 더 읽어보겠습니다.

힐라리는 실로 민중들이 어리석게도 감독직의 위엄을 예찬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가면 밑에 감추어져 있는 무서운 해독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일을 충고하겠습니다. 적그리스도를 경계 하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은 어리석게도 벽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교회를 집과 건물로 알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과 건물 안에서 평안이라는 이름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들 안에 마침내 적그리스도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는 것에 어떤 의심이라도 있습니까? 이것들 보다 오히려 산, 삼림, 감옥, 호수, 그리고 깊은 구릉이 더 안전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이런 곳에 추방되어 살면서도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헌사, 63).

오늘날 대형교회,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인 교회, 외관상 화려한 교회 등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참 교회, 거짓 교회에 대 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외형적인 화려함, 외적인 풍요로움에 완전히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칼빈도 여기서 교회의 형 체를 거짓된 허식에 의해 판단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지 적합니다. 단지 외형적으로 화려하고, 사람 수가 많다는 것이 결코 참 교회를 결정􏰁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법에 따르면 아합을 속인 400명의 선지자들이 어찌하여 교회를 대표하지 못하겠습니까(왕상22:12). 그러나 교회는 실로 고독하고 멸시를 받았지만, 진리를 말한 미가야 편에 있었던 것입니다(헌사, 64).

칼빈은 이런 대조를 통해서 참교회가 어떠한 교회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4권 교회론을 공부하면, 500년 전에 쓰여진 칼빈의 교회론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생각을 일깨워주고 미래전망을 새롭게 말씀대로 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보고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언자적인 외침들을 여기서는 맛보기로만 보여주는데, 교회론 전체가 이런 식입니다.

당시 교회에 대한 아주 통렬한 비판이 오늘날 교회에도 똑같이 해당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칼빈이 성서적인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똑같습니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잘못을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우리에게 500년 전의 칼빈의 교훈은 그렇게 낯설지 않습니다.

칼빈이 말했다는 것을 빼버리고 그대로 인용하면, 21세기의 예언자의 목소리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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