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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 지지 않은 신앙(다니엘 1:1-21)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09.24 17:27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고기를 거부하고 채식을 했다는 얘기는 잘 알지만,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다니엘이 채식이 육식보다 훌륭한 건강식임을 증명했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꿰맞추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채식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육식 거부 이유는 첫째, 채식이 몸에 좋아서가 아니라 왕궁의 모든 고기가 제사장들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바벨론 왕궁의 고기는 야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에게 바쳐졌던 제물이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고기를 거부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둘째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고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낙타, 사반(바위너구리), 토끼, 돼지, 뱀장어, 악어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레위기 11장). 아무 고기나 주는 대로 먹다 보면 율법에 금지된 고기를 먹게 될 수 있으므로 채식을 결심한 것입니다.

▲ Daniel refusing to eat at the King's table, early 1900s Bible illustration ⓒWikipedia

그 외에, 금욕과 절제의 차원에서 채식을 결심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고향에서는 잔칫날에나 먹던 음식들을 왕궁에서 계속 대접받다 보면 분명히 그 음식들에 길들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육신만 포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바벨론의 노예가 될까 두려워서 고기를 거부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위와 같은 점들로 볼 때, 다니엘과 친구들이 채식을 결심한 이유는 건강 때문이 아니라 신앙 때문이었고, 신앙적 민족적 정체성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 말씀이 선포된 상황을 상식적인 차원에서 먼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이렇게 엄격하게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거부했지만, 나중에 바울은 묻지 말고 먹으라고 가르칩니다(고전10:25).

양자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서로 상황이 달랐을 뿐입니다. 다니엘과 그 일행이 받은 고기는 그들을 바벨론에 길들이기 위해 주어진 사료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이 제공하는 맛있는 고기는, 그것을 먹을수록 바벨론이 좋아지고 멋있어 보이게 할 것이며, 결국에는 하나님마저 잊게 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거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초대교회 사람들의 상황에서, 음식을 대접받을 때마다 “이 고기가 신전에서 나온 것입니까?”하고 물어본다면 이방인들과의 거리를 좀처럼 좁히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이 굳이 “이 고기는 신전 고기입니다”하고 꼭 찍어 말하지 않는 한 묻지 말고 먹으라고 가르칩니다. 복음이 율법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 1장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는 채식주의가 아니라 ‘신앙인의 정체성’입니다. 다니엘은 우리에게 지금 내가 부닥치고 있는 현실에서 내 신앙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고,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신앙의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혹은 어디에나 있지만 나를 넘어뜨리는 유혹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깨닫고 결단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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