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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우주를 얼로 채우시는 하느님우리 시대 하느님과의 소통 방법 (4)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09.29 17:24

창조·생성·변화·진화·소멸 등의 존재사건이 벌어지는 유한우주의 존재사건들은 무한우주인 텅빔[빈탕한데]에서 펼쳐지고 있다. 별별 짓을 다 받아주는 것이 마음이고 온갖 일이 다 벌어지는 데가 빈탕한데이기 때문에, 다석은 마음과 허공이 하나라고 보았다.(1)

그래서 텅빔이 곧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혼돈과 혼란 속에서 아무런 법과 원칙 없이 펼쳐지는 듯한 우주의 존재사건이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보이지 않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 나감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뜻의 차원에서 우주에서의 변화의 흐름을 보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임을 알아보며 그런 하느님을 이름한 것이 ‘한얼님’이다.

하느님은 우주의 얼이다

한얼님은 무한 공간과 무한 시간을 채우고 있는 신령한 힘을 말한다. 우리는 이를 절대생명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사람은 얼의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생명인 한얼과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이 얼의 존재임을 잊어버리고 육신에 탐닉하고 소유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 스스로가 우주의 얼인 한얼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한얼은 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성스러운 존재다. ‘성스러움’, ‘거룩함’은 한마디로 ‘없이 계심’이다. 인간이 이 ‘없이 계심’에 가까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간에게 더 이상 ‘성스러움’도, ‘신적인 것’도, ‘신성’도 없어져버린 것이다. 우리가 이 ‘없이 계심’을 볼 수 있는 시야를 되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떠나버린 신의 도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 거룩함은 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눈으로도 볼 수 없다. 오직 얼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인간이 얼의 존재[얼나=얼의 나]로 솟나야만 그 성스러움을 맞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성스러움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다석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이 없다면 어때, 하느님은 없이 계신다. 그래서 하느님은 언제나 시원하다. 하느님은 몸이 아니다. 얼[靈]이다. 얼은 없이 계신다. 절대 큰 것을 우리는 못 본다. 아직 더할 수 없이 온전하고 끝없이 큰 것을 무(無)라고 한다. 나는 없는 것을 믿는다. 인생의 구경(究竟)은 없이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모시자는 것이다.”(2)

다석은 “참이신 하느님은 없는 것 같다. 없는 것 같은 것이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얼로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가득하다.”고 말한다.(3) 다석은 우리가 코로 쉬며 연명하는 목숨은 참 생명이 아니라고 말한다.

▲ 텅빈 우주를 얼로 가득채우시는 하느님은 텅빔 그 자체이시다. ⓒGetty Image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는 얼생명이 참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면 코로 숨쉬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는 얼숨이 있다. 숨 안 쉬면 끊어지는 이 목숨은 가짜 생명이다.

“하느님의 성령인 말숨(말씀)을 숨쉬지 못하면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하느님이 보내는 성령이 얼나인 참나다. 석가의 법심, 예수의 하느님 아들은 같은 얼나인 영원한 생명이다.”(4)

하느님은 우주의 생명, 우주의 진화다

우주의 텅빔 속에 신령한 힘으로 고루 퍼져 있어 우주 안에서의 모든 존재자가 하느님의 뜻대로 생성·변화·소멸하도록 이끄는 한얼로 인해 우주는 살아있는 우주생명이 된다. 이 전체로서의 우주생명은 살다가 나중에 죽어서 없어지는 상대생명인 낱생명과는 달리 죽지 않는다. 영원히 계속 사는 절대생명이다.

우리말 ‘생명(生命)’이라는 말-웋일름을 따른 몸사름-속에 이미 ‘천명(天命)’, 곧 ‘하늘의 뜻’, ‘웋일름’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우주를 생명으로서 고찰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의 뜻에 따른 우주의 변화, 우주의 진화를 읽어낸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신을 우리는 ‘한얼님’, ‘한울님’이라고 이름하였다.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낱생명은 참생명이 아니다. 낱생명들은 나서 살다가 죽어 없어지는 나들이와 죽살이를 거듭하는 상대적 존재로서 상대생명일 뿐이다. 참생명은 이 모든 상대생명을 감싸면서 그것들을 살게 하고 있는 절대생명으로서 얼생명이다.

우주생명으로서의 이 얼생명은 텅빔 또는 빈탕한데로서 하늘이며 한얼이다. 모든 낱생명들은 자신들의 생명의 몸집을 태우는 번제를 통해 우주생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데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생명에서 몸의 차원과 마음의 차원만이 아니라 얼의 차원도 있음을 깨닫고 있다.

얼생명으로서의 인간의 얼나[얼의 나]는 우주생명인 한얼과 하나이다. 가짜생명인 몸나[몸의 나]에 매달리지 않고 이 몸나를 끝까지 깨고 참생명인 얼나로서 솟날 때 사람은 한얼과 하나 되어 하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다.

다석은 성령의 바람을 범신(汎神)으로 보고 범신이야말로 진정한 생명운동이라고 말한다.(5) 우리는 성령의 바람으로 정신적인 숨쉼을 한다. 성령이 바로 우리 맘의 얼이며 참나다.(6) 다석은 성령과 통하는 사람은 모든 생명에서 하느님의 마루[뜻]를 읽어내고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여 말로 세워[말슴] 말로 쓰면서[말씀] 하느님의 소식을 전해주며 말숨을 쉬는 말씀[말숨]살이를 산다고 말한다.

다석은 우주적 생명을 이어받아 지금 여기 살고 있는 낱생명으로서의 나를 ‘긋’이라 즐겨 표현한다. 광대한 우주생명의 역사의 흐름 속에 하나의 점에 불과한 나지만 내 안에 불타는 하늘의 일름[명(命)]을 깨달을 때 나는 하늘과 하나 되어 생명의 역사를 함께 써가는 얼나로 솟날 수 있다. 이렇게 몸생명을 깨끗이 끝내고 참생명의 역사에 동참하는 몸나로서의 나의 결단을 다석은 ‘가온찍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민족의 한 끄트머리 현대에 나타난 하나의 첨단이다. 나의 정신은 내가 깨어나는 순간순간 나의 마음 한복판에 긋을 찍는다. 가온찍기(ㄱ·ㄴ)이다. 이 한 긋(點)이 나다. 나는 한 끄트머리이며 하나의 점이며 긋수이기도 하다.”(7)

다석의 제자 함석헌은 우주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보고 그것이 곧 진화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함석헌은 역사는 결국 생명의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국민의 역사이거나 인류의 역사이거나 문화의 역사이거나 천연의 역사[박물(博物)]거나 구경에 있어서는 이 대우주를 꿰뚫고 흐르는 대생명의 역사”라고 말한다.(8)

함석헌은 또한 진화를 진보로 받아들인다. 물질은 생명을 향해, 생명은 의식을 향해 그리고 의식은 양심을 향해 나아온 것이 진화의 역사이다. 그는 지금까지 우주의 역사가 진화를 거듭하여 발전해 왔듯이 인간 역시 진화를 거듭하여 더 고차원적인 존재 곧 영적 생명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진화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믿음”(9)을 보았던 것이다.(10)

함석헌은 역사를 생명의 진화로 본다. “역사는 영원의 층계를 올라가는 운동이다. 영원의 미완성곡이다. 하나님도 죽은 완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원의 미완성이라 하는 것이 참에 가깝다.” 역사는 그저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산 것이기 때문에 그 운동은 자람이다. 생명은 진화한다.(11) 역사는 자라나는 생명이다.

미주

(미주 1) 류영모, 『명상록. 진리와 참 나』, 박영호 풀이, (서울: 두레, 2000), 248.
(미주 2) 박영호, 『다석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 하권』 (서울: 문화일보, 1996), 321.
(미주 3) 같은 책, 71.
(미주 4) 같은 책, 93.
(미주 5) 참조. 류영모, 『다석어록: 죽음에 생명을 절망에 희망을』 (서울: 홍익재, 1993), 215.
(미주 6) 참조. 같은 책, 233.
(미주 7) 류영모, 『다석어록』, 30; 참조. 류영모, 『다석강의』, 다석학회 엮음 (서울: 현암사, 2006), 217, 294, 370, 861.
(미주 8) 함석헌, 『함석헌 전집 9. 역사와 민족』 (서울: 한길사, 1993), 42; 장회익, <온 생명과 함석헌 생명사상>, 『씨ㅇ·ㄹ의 소리』, 통권 제175호(2003.11/12), 68-91.
(미주 9) 함석헌, 같은 책, 같은 곳.
(미주 10) 참조 김상봉,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세계역사’>, 『씨ㅇ·ㄹ의 소리』, 통권 제183호(2005.3/4월호), 27.
(미주 11) 함석헌, 같은 책, 57.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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