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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기독교, 광화문 광장에 서다혼란의 시대에(겔 18:1-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10.06 17:20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오늘 에스겔은 에스겔에 나오는 속담,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는 말씀을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속담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는 에스겔이 처한 시대적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겔이 기록될 때 그의 나이가 몇 살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에스겔 1장 1절의 ‘서른 째 해’를 그의 나이로 보기도 합니다만, 그 역시도 정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겔에 나오는 연대들과 열왕기하의 연대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략적인 연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전반적으로 ‘여호야긴’이 사로잡힌 때를 기준으로 연대를 이야기합니다. 여호야긴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힌 때는 기원전 598년입니다.

여호야긴은 왕위에 오른지 석 달만에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에스겔은 당시에 함께 포로로 끌려간 인물이기 때문에, 젊다면, 여호야김 시대에 태어난 사람일 것이고, 나이가 있다면 요시야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됩니다. 그는 요시야 13년(약 기원전 626년)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예레미야보다 어릴 것으로 보입니다만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에스겔이 예레미야와 동시대 인물이라는 점은 에스겔을 읽어가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에스겔의 예언이 예레미야와 여러 부분에서 겹치기 때문입니다. 분명 에스겔은 예레미야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레미야는 국가의 멸망이라는 예언을 했고, 그에 대한 성취가 생전에 이루어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예레미야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국가 멸망의 이유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공통점은 국가의 멸망을 직접 경험한 예언자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멸망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말씀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말해졌던 속담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도 전가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속담은 예레미야에도 동일하게 나옵니다. 예레미야 31장 29절을 보면,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들이 되돌아 올 때,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에 이 속담은 사라지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이 속담은 우리가 생각하는 ‘원죄의 논리’와 같이 아버지가 죄를 범하면 아들도 죄를 범한다는 의미, 악인의 DNA가 자녀에게도 전달된다는 의미로 이스라엘 내에 퍼져나가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바벨론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왜 멸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민 속에서 이러한 속담이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 포도를 구실 삼아 자신의 죄를 감추려 하는 것은 아닌가 ⓒGetty Image

아마도 그 근거는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십계명 두 번째 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이나 신명기 5장 9절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죄를 갚으시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민수기 14장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에도 등장합니다. 18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던 순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멸망당하는 이유를 조상들의 죄에서 찾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열왕기하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는 이스라엘의 멸망 이유를 ‘므낫세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므낫세가 온갖 우상을 다 들여왔고,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다고 역사에 남깁니다.

조상의 죄 때문인가?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들은 아마도 당시 유행했던 속담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합니다. 므낫세의 죄가 그의 아들 아몬에게 이어졌고, 그의 손자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등,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므낫세의 죄는 씻겨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시대에 애굽에 의해 속국이 되기에 이르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 시대에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므낫세 이후에 4대가 지나면 여호야긴이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말씀에 부합한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죄 이해, 멸망의 원인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 에스겔은 반대합니다. 예레미야의 경우, 회복될 때에 이 속담이 사라지리라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멸망 자체의 원인은 조상들의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겔은 이 속담에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이런 속담을 이야기함은 어찌 됨이냐!’로 말씀이 시작됩니다. 이 속담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에스겔은 각자의 잘못은 각자가 감당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레미야의 경우는 바벨론 점령 이후 이스라엘에 남아서 예언을 전했고,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예언을 전했습니다. 포로기 전부터 이런 속담이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으면서,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들과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 차이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이 속담을 통해 비판하는 바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풍조였습니다. 자신들이 멸망당한 이유는 조상들의 잘못 때문이고, 지금 자신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여기는 모습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에스겔은 오늘 본문 이하에서 구체적인 잘못들을 열거하면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합니다. 정확하게는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의 죄를 고발합니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만약에 조상들의 잘못은 무조건 우리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신앙이 널리 퍼져있었고,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직접적인 상황을 목도한 상태에서 이들은 어떤 신앙의 태도를 취했을까요?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왔을까요? 아니면 자신들은 어차피 심판 받을 사람들이니까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까요?

심지어 이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하나님보다 더 강한 바벨론의 신을 섬기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이 믿었던 하나님은 자신들을 반드시 심판하는 분이기에 차라리 바벨론의 신을 섬기자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18장 6절이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있는 점은 이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에스겔이 이 속담을 두고 분노에 찬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고 있다면, 두 번째 이유가 더 그럴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근거가 되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또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의 혼란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다기보다 자신들이 유리하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기반으로 오히려 우상숭배에 뛰어들었음을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

혼란의 시기에

이스라엘은 분명 혼란에 빠져있었습니다. 국가가 멸망한 시기였기에 당연히 혼란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기원전 598년은 바벨론에서 지명해서 세운 ‘시드기야’라는 왕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완전한 멸망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는 건,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한 후인 586년입니다. 에스겔이 연대 순으로 정확하게 배열되어 있다면, 오늘 말씀은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6년째 되는 해입니다. 그렇기에 아직 예루살렘 멸망까지 7년이 남아있긴 합니다. 하지만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바벨론이 세운 시드기야를 자신들의 왕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이미 이스라엘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여기며 회개하지 않고 죄로부터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분명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보다 더 잘못된 모습은 혼란을 틈타 하나님의 말씀을 멋대로 해석하는 풍조라고 봅니다.

오늘 속담이 퍼져나간 데에도 분명 신앙적인 고민이 있었을 것이고, 처음 이를 이야기했던 사람들이나,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들의 목적은 회개의 촉구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해서 우리의 자녀들은 복의 길로 이끌자는 신앙 회복 운동 속에서 이 속담이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이 속담은 자신들의 죄를 피해가는 근거로 사용되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떠나는 근거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속담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에 우상을 숭배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나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정말로 대를 이어 벌을 내리시려는 목적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말씀의 목적은 ‘잘 지켜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혼란의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지켜라’라는 말씀의 본질보다는 주변적인 말씀을 붙들고 그것이 하나님의 참 뜻인양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뜻대로 행동했습니다.

그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로 잘못한 일이며,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간 이들 앞에서 소리쳐 외쳤던 말씀입니다.

혼란을 틈타는 사람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저는 지금 시대는 정말로 혼란한 시대라고 봅니다. 대화는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이분화 되어가는 사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무조건 옳은 것이고, 남의 이야기는 귀 기울일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사회, 그렇기에 서로를 향한 욕설만이 난무하는 사회입니다. 정치는 사라져 있고, 정치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서로 헐뜯기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정치판이야 항상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여기에 기생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혼란을 틈타 잘못된 말씀을 가지고 성도님들까지도 혼란에 빠지게 만들고 잘못된 신앙을 가지게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통령 하야나 퇴진 운동까지야 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거기서 헌금은 왜 하는 겁니까? 왜 대통령이 퇴진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마냥 ‘믿으시면 아멘하시라’는 이야기가 나옵니까?

이런 자들은 혼란을 틈타 말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잘못된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함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악한 길로, 잘못된 길로 이끄는 이들입니다. 그저 삯꾼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세상에 악을 뿌리는 이들입니다.

여러분이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에 서 있건, 바른 정보와 바른 판단으로 그 입장에 서 있다면 그곳이 어디여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이와 조금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의 혼란을 틈타 말씀을 왜곡하는 이들의 소리는 분명 지금 기독교가 가진 문제이고, 우리 모두가 함께 회개해야할 문제입니다. 또한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변화시켜가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나라가 혼란하다고 해서, 신앙도 혼란해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바른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 선한 길을,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바른 길에 서 있고, 바른 말씀 위해 서 있을 때, 우리는 에스겔과 같이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들을 향해 잘못되었음을 외쳐야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참된 말씀 안에 서 계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혼란을 틈타 세상을 이용하여 잘못된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참된 길로만 곧게 나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기독교가 아니라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가는 기독교를 만들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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