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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총회의 同聲愛/同性愛的 性向에 대하여NCCK신학위원회 사건과 신학 9월호 (1)
송진순 교수(이화여자대학교) | 승인 2019.10.08 17:50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제104회 총회)
회복,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소서!(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제104회 총회)
교회다운 교회, 칭송받는 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제69회 총회)
화해의 성령이여 하나되게 하소서(한국기독교장로회 제104회 총회)
다가올 침례교 시대(기독교한국침례회 제109차 총회)
지경을 넓히는 총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68차 총회, 5월)
변화하는 시대, 성결의 복음으로(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제112년차 총회, 5월)

2019년 9월, 장로교단을 비롯하여 교단별 총회가 열렸다. 각 교단 총회는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위치와 역할을 성찰하며 교회 ‘회복’과 ‘혁신’에 역점을 두었다. 그간 교회가 대외적으로는 사회와 소통하지 못한 채 사회적 신뢰도를 잃고, 대내적으로는 자본과 권력으로 정치 세력화되고 목회자와 지도부의 권위적 태도와 윤리적 문제로 퇴락하며 교세가 현저하게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번 총회 주제들은 교회의 자성과 개혁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개막 후 총회의 외적 현상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각 총회는 이러한 결의를 담아내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장통합 총회에 참석한 1484명의 총대 대부분이 남성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었고 총대 평균 연령은 62.5세로 보고됐다. 그 중 26명이 여성 총대였다.

총대의 연령, 지위, 성비 불균형은 심각한 상태였다. 그나마 기장총회는 64명의 여성을 총대로 선출하여 예장통합에 비해 나은 상황이었으나 시행 중인 여성 총대 할당제 30%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예장합동과 고신, 합신 교단 총회는 단 한 명의 여성 총대도 없는 100%의 중장년 남성 목회자들로 구성되었다.

매년 총회에서 백 개에서 수백 개의 헌의안이 상정되는 가운데 누구의 시선과 누구의 목소리로 현안 과제를 논의하고 의사 결정을 진행하는가라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최고 의결기구로서 교회 정치기관인 총회에서 고령의 기득권 계층인 남성 목회자가 갖는 인식적 편향성은 한국 교회의 정형화된 틀을 깨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들과 차이를 인정하고 나아가 타자를 배제하지 않는 관용적이고 대안적인 해법들을 도출하는 과정을 가로 막고 있다. 교회 안팎에서 총회 구성과 논의방식에 대해 해마다 같은 문제 제기를 하고 있으나 이러한 상황조차 닳고 진부한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보란 듯이 총회에는 목사 정년을 70세에서 75세로 연장하자는 헌의안이 올라왔다.

교인 대다수가 개교회에서 열리는 당회와 상위 기구인 노회/지방회 조차 생소한 마당에 총회에 관심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애초에 교인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의 문제들을 평등하게 공유하고 토론하는 환경은 한국 교회 지형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먼 이야기로 느껴질 뿐이다. 실제 아홉 개 주요 교단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총회 주제, 일정, 장소 등 총회 전반의 정보와 총대 구성 나아가 가장 중요한 헌의안과 기존의 회의록을 열람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교단 공식 홈페이지라는 공적 공간은 총회 관련 정보를 기재하지 않거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 혹은 차단함으로써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한국 교회 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물론 총회 참관자를 공개 모집하고 헌의안을 미리 공개하는 교단도 있으나 이는 극히 일부 교단일 뿐, 대부분 교단 총회는 주제조차 제대로 명시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서야 총회 관련 보도들이 인터넷 뉴스에서 상세하게 보도되고 유튜브를 통해 총회 과정이 생중계되기는 했으나 이것 역시 사안에 따라 공개여부가 선택적으로 결정된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가 열렸던 모 교회 ⓒ임석규

교회의 경직된 권력을 기반으로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인 구조에서 총대들은 과연 ‘어떠한 교회’의 회복과 혁신을 꿈꾸고 있는가, 묻고 싶을 뿐이다.

2017년 모 기독교 인터넷뉴스에서 독자 200명을 대상으로 총회 결과에 대한 흥미로운 설문을 실시했다. 102회 장로교단의 ‘최악의 결의’와 ‘최고의 결의’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최악의 결의는 각 교단의 ‘동성애 관련 결의’(46.9%)에 이어 ‘요가, 마술 금지’(통합, 11.2%), ‘하나님께 허락받지 않은 이혼 후 재혼은 간음’(합동, 7.1%), ‘종교인 과세 2년 유예 국회 건의’(합동, 8.7%) ‘여성안수 불가 재확인’(합신, 4.1%) 등의 결과가 나왔다. 반면 최고의 결의로는 ‘여성 총대 의무 할당제’(통합, 24.2%)를 꼽았다.

이에 대해 노회 당 1명 이상 여성 총대 선출로 인해 최소 60명 이상의 여성이 참여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이러한 기대는 현실화 되지 못했다. 또한 ‘교인 500명 이상 교회 분립’(고신, 23.6%), ‘목회자 성적비행 예방교육 의무화’(통합, 16%), ‘설교 표절 근절 대책 수립’(고신, 10.8%) 등이 뒤를 이었다.

총회 결의들은 총대들의 일관되고 하나된 목소리와 그들만의 시선을 반영했다. 대다수 결의들은 교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들과 다변하는 사회적 현상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탁상에서 이루어진 투표였음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올 총회에서도 총대들은 회복과 혁신을 외치면서도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고 서로의 권익을 다지며 그들만의 신본적, 윤리적 체계에서 하나의 당위적 해법을 제시했다. 그들을 결집시켰던 하나된 열망은 교계 신문을 넘어 지상파 언론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교회 앞에선 몸싸움이 일어나고, 대형교회를 가득 메운 천여 명의 남성 목회자들이 직접 거수로 이전의 재판 결과를 뒤집으며 하나의 소리를 연출했다. 총회는 그렇게 성대한 막을 내렸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교단 총회의 풍경과 결의안은 그 자체로 한국 교회의 현주소였다.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교회는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온 국민이 행복을 누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예장통합은 총회를 마치면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거룩한 말씀에 근거한 하나의 목소리는 다른 소리들이 새어나올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의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삶과 경험들을 묵살했다.

그들의 특권적 인식, 계몽적 태도, 권위적 자세가 교회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갈등을 무마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결과 해마다 총회에서 동성애 이슈는 그들의 결속과 개혁 의지 그리고 신적 권위의 트로피처럼 전시되었다. 이를 통해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이를 정죄하고, 나와 다른 견해를 갖는 교인, 신학생, 신학자와 목회자의 사상을 검증하고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교회에 발 딛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들은 일관되게 “동성애는 죄이지만 동성애자들을 배척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사랑으로 포용한다”라고 주장한다. 비록 한 방향의 주장이 결의되고 시행되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들은 상대의 존재를 지우고 권력으로 그들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들이 충분히 소리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서로가 소통하고 이해함으로써 일정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과정들을 수용해야 한다. 그들은 같은 성의 지향을 가진 이들과 다른 목소리들이 공명할 수 있는 참여적이며 수평적 방식의 대화를 열어가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서 출발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음을 선포하면서 모든 이들과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며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앞에 있는 다른 이의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실천적 대화를 통해 예수는 그 나라를 꿈꾸고 실현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게 부름받은 존재들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르지만 존재 자체로 부름받아 예수의 삶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고백한 자들이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인 우리가 자신을 먼저 열어 보이고, 다른 이의 삶과 경험들을 존중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어간다면, 그것이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실천하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교회가 울타리를 넘어 사회와 소통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평화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수많은 회의적인 물음에도 불구하고 총회에서 다른 소리들이 공명할 수 있는 그날을 상상해본다.

송진순 교수(이화여자대학교)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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