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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용사 야훼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10.13 16:23
네 가운데 계신 네 하나님 야훼는 구원의 용사시며, 너로 말미암아 기뻐 어쩔 줄 몰라하시리라. 너를 사랑하여 잠잠/용서하시고 너로 말미암아 소리치며 기뻐하시리라.(스바냐 3,17)

이렇게 짜여진 텍스트의 구조를 abab 형식의 평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제를 따라 이를 간단하게 표시하면 구원 - 기쁨 - ‘용서’ - 기쁨의 반복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야훼는 너 곧 이스라엘 가운데 계십니다. 지금 비로서 이스라엘 가운데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그 가운데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를 떠났을 때에도 그가 이스라엘을 벌할 때에도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시고 그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를 떠난 그들과 함께 그들의 고통 가운데 계시며 아파하셨습니다. 그들을 적들의 손에 넘기셨지만 끝까지 그렇게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용사처럼 일어나셨습니다.

아픔 속에 감춰져 있던 기쁨이 터져나옵니다. 사람의 말로 하면 주체할 수 없이 솟아나는 기쁨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도 기쁨이었을런지요? 아니면 부담 또는 부자유였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을 떠났고 떠나려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진리에 의한 자유가 참 자유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 안에 정의가 세워지고 평화가 깃듭니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는 세계는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사람의 욕구는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데 근본적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들과 함께 그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의 허물과 죄에 대해 더이상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대신 기쁨의 소리를 지르십니다. 하나님은 그 앞에 돌아와 서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사람은 그와 같은 존재 곧  자녀입니다.

사람은 마치 탕자처럼 자신을 위해, 하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데도, 하나님의 그와 같은 기쁨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그 기쁨 속에서 기쁨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실상을 보여주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가시는 분 곧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그의 나라가 우리의 나라가 되는 오늘이기를. 그를 떠나고자 하는 우리의 옥구가 다스려지고 하나님 안에서 평화와 새삶을 발견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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