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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명 중 한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왔다감사할 수 있는 삶(눅 17:11-19)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10.13 16:26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오늘은 감사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고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감사’라는건 무언가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내는 표현이자 마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감사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기쁨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감사에 대해서 더 말씀드리기에 앞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먼저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을 통해 감사에 대해서 생각해 본 후에 어떤 감사, 어떤 삶을 살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과 열 사람의 나병환자가 등장합니다. 나병은 저희가 예전에는 문둥병이라고 불렀는데, 정확하게는 한센병입니다. 저희는 레위기에 나병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고대부터 한센병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레위기에 나오는 ‘나병(짜라아트 צָרַעַת)’은 ‘한센병’은 아닙니다.

레위기를 보면 옷에도 나병이 생기고 집 벽에도 나병이 생깁니다. 옷이나 벽에 생기는건 아마 곰팡이의 일종이라고 생각됩니다. 70인역에서 사용한 헬라어 단어 ‘레프라(λέπρα)’도 흔히 ‘나병’으로 번역되지만, 헬라어 사전을 보면, ‘여러 피부 질환을 일반적으로 나병이라 번역하지만 이는 한센병이 아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나병을 ‘leprosy’로 번역하지만 각주에 이는 ‘한센병이 아니다’라고 적습니다. 레위기는 심한 피부질환을 나병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은 히브리어 ‘짜라아트’를 ‘악성 피부병’으로 번역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열 명의 나병환자는 뭔지는 모르지만 심각한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잘 알다시피 악성 피부질환에 걸린 사람들은 마을에서 추방되어 병이 나을 때까지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 예수께 병 나음을 얻은 사마리아 사람이 다시 돌아와 예수께 엎드려 감사하고 있다. ⓒhttps://jesusunboxed.wordpress.com/2016/10/10/ten-lepers-lk-1711-19/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이들을 만나셨다고 전하는데, 그렇다면 이 마을은 일반적인 마을이 아니라 마을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아마 마을 입구에서 예수님을 향해 외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서서 외쳤다고 하는데, 이 마을이 피부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마을이었다면, 예수님께 병이 옮을까봐 멀리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일반적인 마을이었다면 이들은 마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예수님께 외쳤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들은 예수님을 향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쳤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신 후, 별다른 치유 행위 없이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이 다 나았음으로 확인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피부질환으로 인해 외부로 쫓겨났던 사람들은 제사장에게 다 나았음을 확진 받은 후에야 마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상당히 실망한 채 예수님을 떠나갔을지도 모릅니다. 치유는 해주지 않으셨고, 그냥 가라고 말씀하셨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떠날 때에 아마 이들은 여전히 피부병을 가진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가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들은 그냥 피부병을 가진 채 예수님 곁을 떠나갑니다. 그런데 이들이 돌아가는 길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길을 가던 중에 병이 자신들의 병이 나았음을 알았습니다. 병이 나았음을 확인했을 때, 한 사람이 자신의 병이 나았음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이를 보시며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없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어떻게 생각하면 이 말씀은 약간 이상한 말씀입니다. 10명의 피부병 환자는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구원 선포는 오직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전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병 고침 받은 사람들 모두 구원을 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피부병이 발병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만 구원의 선포를 듣습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선포된 구원은 어떤 의미일까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

오늘 말씀은 감사에 대한 한 가지 측면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나병환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 고쳐졌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반드시 제사장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 제사장이 다 나았다고 선언해야 깨끗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홉 명의 피부병 환자들은 자신들의 몸이 깨끗해진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바로 제사장을 향해 달려갔을 것입니다. 전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제사장에게 갔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냥 투덜거리며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병이 나았음을 확인했을 때, 완치의 확인을 받기 위해 제사장에게 갔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몸이 깨끗해졌다는 그것 자체만으로 온전히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고 여겨집니다. 제사장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이들의 생각은 제사장의 승인을 받는데에 쏠려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만은 달랐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몸이 깨끗해졌다는 사실 자체를 기뻐했습니다. 지금의 기쁨은 온전히 누렸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몸을 깨끗하게 해주신 예수님께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는 지금 내가 얻은 것을 온전히 기뻐할 때에 생겨날 수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해서 ‘온전히 기뻐한다’고 표현했지만 그냥 기쁨을 기쁨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삶에서 어떤 기쁨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 기쁨을 기쁨으로 누리기보다 이후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음에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해야 더 큰 기쁨으로 이어질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앞에 놓여있는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더 큰 기쁨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지금의 기쁨을 놓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얻은 것들에 대해서 먼저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기분이 좋았다면 그 좋은 기분을 우선 즐기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분을 즐길 수 있다면,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런 순간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기쁨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감사

저는 때로 우리의 신앙이 너무나 막연한 감사를 강요하고 있진 않은가 생각합니다. 김동률이라는 가수의 노래 중에 ‘감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의 처음 가사가 이렇습니다.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감싸면,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 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햇살이 비추는 일만으로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다는 말로 노래는 시작합니다. 물론 이 노래는 사랑노래입니다. 다들 경험하셨겠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어떤 순간에라도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교회에서는 우리가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오늘도 생명 주셨음에, 푸른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셨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이 노래 가사처럼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에 빠져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매일같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상에서 이런 막연한 감사를 일상화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감사보다 오히려 일상에서 투덜거리는 일이 쉬워보이긴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일상에서 쉽게 감사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은, 우리가 기쁜 마음을 누리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고, 사랑을 하기 때문에 자신은 지금 기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기쁨을 기쁨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나가서 감사까지 하게 됩니다.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다보니 가끔 일본 성우들이 하는 라디오 방송도 찾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팬들에게 감사한 순간에 대해 얘기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한 성우가 팬들의 모든 성원에 감사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뒤에 ‘본심은 뭔가요?’ 하고 본심을 이야기하는데, 팬들이 애니를 좋아한다면, 돈 주고 Blue ray Disk를 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BD라고 부르는데, 보통 TV에서 애니메이션 방영을 하면 나중에 BD를 출시하고 이게 얼마나 팔렸냐에 따라서 후속작을 내기도 하고, 상품화를 더 많이 하기도 합니다.

이 성우가 하는 얘기가 속물 같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이 평소에 하는 생각과 같다고 느껴집니다. 무언가 작은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다음을 생각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더 기뻐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께서 막연하게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시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억지로 감사만 하려고 하면 어렵기만 할 뿐입니다. 그저 여러분의 삶에서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기분 좋으신 일이 있었다면 그 좋은 기분을 느끼시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으시다면, 이런 좋은 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딱히 기분 좋은 일도 없는데 감사해야 하니까 억지로 감사하시진 말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일이 있는 그 순간에 좋아하시고 좋다면, 감사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기쁨을 누리는데 익숙해진다면, 또 기쁨을 누리면서 감사하는데 익숙해진다면, 우리의 삶은 작은 기쁨들이 넘쳐서 큰 기쁨이 될 것이며, 작은 감사가 넘쳐 큰 감사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게 결국 구원 받은 삶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고 계시고, 여러분이 그것을 누리길 바라고 계십니다. 감사 할 수 있는 삶,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에 걸어가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런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삶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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