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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 혁명사적지, 김일성 수령 신성화의 정점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56)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19.10.17 18:14

Q: 주체사상의 성지에는 무엇이 있나요?_항일무장투쟁 전적지와 사적지(2)

A: 지난 연재에 이어 주체사상의 성지인 항일무장투쟁 전적지와 사적지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전적지인 보천보 혁명전적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보천보는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면에 속해 있었으며, 현재 북한의 행정구역에서는 량강도 보천군 보천읍으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보천보 혁명전적지는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전투와 관련한 전적지입니다. 보천보 혁명전적지에는 1955년 6월 4일 김일성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1977년에는 혁명사적비가 건립되었습니다.

보천보 혁명전적지는 김일성이 압록강을 건넌 구시물동, 전투명령을 내린 곳인 곤장덕, 적정을 다시 확인한 곳, 가림천을 건넌 곳, 대진평-무산 방면 전선을 절단한 곳, 대진평-무산 방면 차단대, 혜산방면 차단대, 보천보 전투지휘처, 경찰관주재소, 소방회관, 면사무소, 일본인 상점, 우편국, 산림보호구, 농사 시험장, 철수 도중 휴식한 곳 등의 전적지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보천보 전투 승리기념탑은 1967년 6월 4일에 건립되었습니다. 탑의 맨 앞에는 김일성이 백포자락을 날리며 한 손에는 군모를 벗어들고 다른 손에는 쌍안경을 든 채 서 있습니다. 김일성의 오른쪽에는 ‘불굴의 여대원’이, 왼쪽에는 ‘철벽의 용사’의 형상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 보천보 혁명사적지에 세워진 김일성 수령 동상 ⓒGetty Image

탑의 동쪽면에는 수령이 내놓은 주체적인 혁명노선을 높이 받들고 일어선 인민들과 항일혁명투사들의 투쟁 모습이 형상되어 있습니다. 이 군상에는 반일투쟁에 일어선 부두노동자, 여성농민, 광부, 청년공작원, 부녀회원, 신대원과 구대원인 유격대원들, 근거지 어린이, 원호 농민, 여대원, 기관총수, 유격대 선동원, 재봉대원, 청년대원, 소년대원, 젊은 보총수, 용감한 경기관총수, 그리고 지휘관, 나팔수, 돌격수, 여대원 등의 모습이 형상되어 있습니다.

탑의 서쪽면에는 항일무장투쟁의 시련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손에 든 창으로 일제 경관을 쓰러뜨리고 빼앗은 보총을 안고 유격대에 들어가는 광산노동자, 유격대원, 여공청원, 조국광복회원, 부상당한 대원과 도와주는 지휘관, 어린 나팔수, 부상병의 총을 대신 메고 걸어가는 청년대원, 경기관총수와 부사수, 정치일군과 기관총수, 지휘관, 경기관총수, 여대원, 돌격수와 나팔수 등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습니다.

보천보 전투 승리기념탑은 수령이 조직하고 영도한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탑의 붉은 기폭은 주체의 혁명적 기치를 상징하고 있으며, 탑에 묘사된 군상들은 수령의 참된 전위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탑의 전체 높이는 38.7미터이고, 붉은 화강석으로 된 깃발의 높이는 29.7미터, 길이는 30.3미터입니다.

보천보 전투는 주체사상의 신화에서 절정을 차지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보천보 전투는 당시 동아일보의 호외에 소개되어 국내에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알리게 된 유명한 전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신화적인 측면에서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수령’ 김일성이 코민테른의 1국 1당제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노선에서 벗어나, 중국에 있는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조선 독립을 위해 투쟁할 수 있고, 전장을 조선 본토에로 확대할 수 있다는 새로운 ‘주체의 혁명로선’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첫 전투라는 점에 있습니다. ‘수령’ 김일성이 ‘주체의 혁명로선’을 관철시킴으로서 ‘민족의 태양’으로 탄생하는 첫 총소리를 ‘조국’에서 울린 ‘거룩한 성지’라는 것입니다.

‘보천보 혁명전적지’라는 성지가 성역화 되는 역사도 흥미롭습니다. 김일성의 동상이 선 1955년은 한국전쟁 직후로서, 박헌영과 이승엽을 비롯한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몰락한 다음입니다. ‘보천보 전투 승리기념탑’이 건립된 1967년 6월 4일은 1967년 5월의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제4기 15차 전원회의’가 끝난 직후입니다.

1967년의 ‘4기 15차 전원회의’는 보천보 전투의 한 축이었던 이른바 ‘갑산파’가 몰락한 회의입니다. 혁명사적비가 건립된 1977년은 북한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가 선포되고, 김정일의 후계구도가 완성된 시점입니다. ‘수령’이 북한에서 ‘유일 지도자’의 지위에 등극하는 역사적 과정에서, ‘수령’과 관련된 ‘거룩한 자욱’들은 더욱 더 거룩하게 ‘신성화’되며, 수령이 지나온 자욱들이 거룩하게 신성화 될수록 수령의 ‘신격화’가 더욱 더 높은 단계로 격상되는 상관관계의 순환구조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수령의 신격화가 진행되는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신화가 발굴되고, 기존의 신화가 더욱 구체화되고 거룩하게 신성화되며, 신화가 태동한 거룩한 장소가 주체사상의 성지로 성역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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