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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타라자 명예교수, 안병무와 탈식민지 신학을 말하다안병무, 자신의 성서해석을 위해 죽음과 고통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정훈 | 승인 2019.10.17 18:24

탈식민지 신학의 제창자이자 산파역할을 한 스리랑카 출신의 수기타라자 영국 버밍엄 대학교 명예교수. 그가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서구의 언어로 한번도 번역되지 않았던, 그리고 민중신학에 있어 중요한 책이자 이 책이 번역되도록 압력(?)을 넣었던,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 이야기』의 영문 번역판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서 한국을 다시 찾은 것이다.

안병무, 자신의 성서해석을 위해 죽기를 각오했다

이러한 방문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수기타라자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리고 수기타라자 명예교수가 기억하는 안병무 선생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한 탈식민지적 신학의 제창자 수기타라자 영국 버밍엄 대학교 명예교수를 양권 성공회대학교 교수의 통역으로 인터뷰를 나누었다. ⓒ이정훈

“안병무 선생은 아시아가 낳은 가장 탁월하고 놀라운 성서학자(입니다). … 안병무 선생은 자신의 해석을 위해 죽음과 고통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억 때문이었을까 수기타라자 명예교수는 현 시대의 신학자들을 향해 매서운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그냥 편안한 자리에서 신학을 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인 부분인데, 안병무 선생은 정말 자신의 해석을 위해 죽음과 고통 받을 준비가 되어 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시대 잘 훈련받은 좋은 신학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대게 그저 서구적 개념들을 가져다가 논문을 썼지만 안병무 선생은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민중전통과 언어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제국에게도

이어 수기타라자 명예교수는 자신이 제창한 탈식민지 신학을 더욱 확장하는데 정열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간 숨겨지고 가려진 민중들의 이야기와 언어를 발굴해내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타밀 지역에서 네덜란드 식민지배 시절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를 소개한 부분에서는 귀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 당시 타밀 사람들이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를 재해석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무엇이냐 하면 성서에는 분명히 빌라도가 처벌받지 않았는데 타밀 사람들은 빌라도가 처벌을 받는 것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매년 연극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그 공연에서 그렇게 빌라도가 처벌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그 당시 지배적인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반드시 처벌 받을 것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이야기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수기타라자 명예교수는 민중신학이나 달릿신학 그리고 해방신학 등의 제3 세계 신학이 조금 더 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세계를 해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오랜 피식민지 경험을 했던 해방신학이 전혀 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부분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또한 민중신학이 그간 이어왔던 민중전통과 언어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제국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당부했다.

다음은 수기타라자 명예교수의 제자이기도 한 성공회대학교 양권석 교수님의 통역으로 이루어진 일문일답이다. 한국 정서를 반영해 경어체를 사용했다는 점을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바쁜 일정으로 피곤한 가운데 인터뷰에 응해주신 수기타라자 명예교수님과 유려하게 통역해 주신 양권석 교수님께도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 이번 한국 방문의 목적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번도 번역되지 않았던 안병무 선생의 『민중신학 이야기』가 영어로 번역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 안병무 선생님과의 인연은 어떻게 가지게 되셨나요?

안병무 선생에 대한 여러 가지 인연과 기억이 있지만, 그와의 인연을 만들어낸 중요한 점은 아시아가 낳은 가장 탁월하고 놀라운 성서신학자라는 점입니다. 아마도 안병무 선생의 “오클로스”에 관한 논문은 서구의 모든 대학의 수업과 학생들이 가장 많이 복사하고 이용한 논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병무 선생은 성서를 그냥 읽은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참여를 통해 읽었다는 것이 아주 특별한 점입니다. 『민중신학 이야기』는 1980년대 나타난 중요한 저술 중의 하나입니다. 저도 성서학자이기에 이 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목해서 읽었습니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들도 안병무 선생에게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서양의 새로운 세대나 학생들도 안병무 선생님에 대해 다시 읽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993년 한국을 방문해 온 종일 안병무 선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한국신학대학 김성재 교수가 저를 안병무 선생의 집에 데려다가 주었고 (아마도 그 당시 한국신학연구소 소장을 하고 계셨을 때가 아닌가 합니다. - 양권석 교수 첨언) 하루 종일 안병무 선생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습니다.

▲ 수기타라자 명예교수가 기억하는 안병무 선생은 자신의 해석을 위해 죽음과 고통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아시아가 낳은 가장 탁월한 신학자였다는 것이다. ⓒ이정훈

▲ 안병무 선생의 신학이 교수님의 신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했던 점은 안병무 선생은 자신의 해석을 위해서 죽음과 고통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냥 편안한 자리에서 신학을 하고 있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인 부분인데, 안병무 선생은 정말 자신의 해석을 위해 죽음과 고통 받을 준비가 되어 있던 분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시대 잘 훈련받은 좋은 신학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은 대게 그저 서구적 개념들을 가져다가 논문을 썼지만 안병무 선생은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 교수님께서 탈식민지 신학의 1세대에 해당하시는 분이다. 오해나 어려운 점은 없으셨습니까?

개인적으로 영국에서 학문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표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렇지만 등 뒤에서는 아마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욕도 많이 하지 않았을까요.(웃음)

하지만 도전을 받는 경우는 수업을 하는 경우, 특히 제3 세계 신학을 가르칠 때,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 특히 인도에서 온 학생들을 만났을 때, 그 학생들이 오히려 도발을 합니다. 자신들이 배운 신학, 즉 하나의 신학을 가지고 도발을 해왔습니다. 민중신학이나 달릿신학, 아시아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을 이야기 해서 자신들을 혼란스럽게 하냐고 도전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신학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당신들의 땅에 와서 혼란스럽게 했을 때 그렇게 이야기해본적이 있냐고 대답했습니다.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 때문에 혼란스럽다고 하는 원래 신학은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신약성서를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를 이야기 하기 위해 27권이나 필요했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습니다. 27개의 다른 이야기가 필요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웃음)

▲ 교수님께서 처음 탈식민주의를 이야기하실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많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교수님의 새로운 신학적 관심사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지금까지 무시당해 온 역사, 가려져 온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목소리를 찾아내는데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리랑카가 네덜란드에 의해 식민지 시절을 겪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 타밀 사람들이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를 재해석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무엇이냐 하면 성서에는 분명히 빌라도가 처벌받지 않았는데 타밀 사람들은 빌라도가 처벌을 받는 것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매년 연극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그 공연에서 그렇게 빌라도가 처벌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그 당시 지배적인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반드시 처벌 받을 것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신학도 거의 칼빈 이야기만 하는데 한국 내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면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렇게 숨겨진 목소리를 관심을 가지고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인도의 서발턴 연구가 생각났습니다. 서발턴 연구가 서구학계에서 비판받았던 점은 숨겨진 목소리를 찾는다고 하지만 역사적 자료가 많지 않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냐는 점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스리랑카 민중들의 이야기를 발굴하실 때 어려운 점은 없으셨습니까?

사실 기록된 자료도 많지 않았고, 서구 사람들은 구전 전승을 대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고 버렸습니다. 특히 사도 도마가 인도에 왔다는 기록이 거의 없지만 그가 도착했다는 마을에 들어가면 시(詩)나 구전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수없이 변화되었겠지만 그때와 연결되는 사실은 보존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서구 학자들은 버렸겠지만 저는 먼저 기록된 자료를 읽습니다. 그리고 구전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면밀히 관찰합니다. 그런 후에 이 둘 사이가 어떻게 상응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때 어떻게 상응관계를 이루고 있는지를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보는데, 먼저 하나는 과거의 사실과 어떻게 상응되는지를 찾습니다. 동시에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살핍니다.

▲ 수기타라자 명예교수는 민중신학이 그간 해왔던 민중전통과 언어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제국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가져주기를 당부했다. ⓒ이정훈

▲ 교수님께서 지난 13일(일) 향린교회에서 강연을 하셨을 때 안병무 선생님에 대한 아쉬운 점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양권석 교수) 그 부분에서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수기타라자 교수님의 이야기는 안병무 선생이 활동하셨을 당시에는 탈식민지라는 개념 조차도 등장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수기타라자 교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병무 선생에게서 탈식민지적 개념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안병무 선생님께서 학문을 하실 때는 탈식민지적 학문이 이론화 되기 전이니까 안병무 선생님께 그걸 요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수기타라자 교수님은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안병무 선생님은 민중은 정체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셨기에 만약 안병무 선생님이 지금 살아계시다면 분명히 탈식민지적 관점에서 학문을 하셨을 것이라고 수기타라자 교수님은 생각하시고 이야기 했습니다. 충분히 변화된 개념들을 받아들이셨을 것이라고 수기타라자 교수님은 생각하시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언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사람들이 탈식민지적 개념에 대해 자신들이 아는 것으로 대충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직접 하는 말은 듣지 않고 이해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 민중신학이나 달릿신학은 해방신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신학들이 탈식민지적 관점과 만난다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민중신학이나 달릿신학이나 탈식민지적 신학은 어떤 면에서 모두 해방신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신학들은 모두 해방신학적 면을 가지고 있지만 강조점은 서로 다릅니다. 초기의 해방신학은 경제적이고 가난의 문제에 집중을 했는데 민중신학도 역시 경제적이고 가난의 문제에 집중했지만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 전통 문화나 전통 민중의 언어에 대한 연구도 했습니다. 문화를 굉장히 진지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탈식민지적 신학은 특별히 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은 수백년 동안의 식민지 경험을 했지만 해방신학이 제국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 면에서 각기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국에 대한 관심을 조금 더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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