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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고통스러운 역사에도 불구하고(다니엘 9:1-27)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10.18 16:48

크로노그래피(chronography)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를 실제 연대가 아닌 개념화된 연대에 따라 기록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가 사람의 나이로 보기 어려운 숫자들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실제 역사가 아니라 개념화된 역사로 보는 방식입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70년(렘25:11)이라는 숫자를 크로노그래피 기술 방식에 따라 재해석합니다. 그 숫자는 단순하게 70년이라는 연수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일흔 이레”(24절)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를 통해 깨닫게 되며, 그 계시의 내용 역시 숫자로 된 연대기가 아니라 개념화된 크로노그래피 형태의 역사입니다.

다니엘은 9장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며 하나님께 자비와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신 하나님의 계시가 일흔 이레였고, 그 일흔 이레의 결말은 하나님의 최후심판입니다(27절, 이미 정한 종말).

일곱 이레, 예순두 이레, 그리고 마지막 한 이레와 정확하게 연결되는 실제 역사는 찾을 수 없습니다. 열정적인 연구자들이 실제 역사를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쪼개서 억지스럽게 꿰어맞춘 예는 있지만, 다니엘이 언급한 사건 및 인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없습니다.

▲ 다니엘이 기도하는 중에 뜻을 깨닫게 되었다. ⓒGetty Image

기록된 내용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재건된 이후로 또 다른 침탈이 있으리라는 것과 그 침탈 후에 이스라엘의 신앙을 억압하는 “황폐하게 하는 자”가 등장하리라는 것, 그리고 그 침략자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계획되어있다는 점 등입니다.

이 일흔 이레는 분명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와 메시아의 등장을 약속하고 있지만(24절), 다니엘 이전의 다른 예언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소망의 메시지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심지어 바벨론 포로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꿈꾸는 것 같은’(시126:1) 사건은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다니엘은 종말의 때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모습인지를 꿈꾸기에는 너무나 척박하고 어지러운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이른바 ‘지연된 종말’의 시대를 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짓밟는 것을 처음 목격했을 때 이스라엘이 내심 기대했던 것과 달리 하나님의 온전한 회복의 역사가 계속 미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흔 이레는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때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계시의 언어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구원과 회복의 약속만은 분명합니다. 눈앞의 길고 고통스러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는 자가 얻게 되는 복은 확실합니다(단12:12).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성품)을, 연단(된 성품)은 소망을 이루는(롬5:3) 믿음의 역사가 다니엘에게서도 나타난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그 자체로 좌절을 소망으로 바꾸게 하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다니엘이 험난한 민족의 역사를 위해 간절하게 믿음으로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이 나라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포기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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