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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남, 고마운 동지이자 미안한 친구를 추모하며삶을 본받고 싶은 스승의 영전에 삼가 두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최정의팔 대표(사회적기업 트립티) | 승인 2019.10.23 18:22

고인이 괴산에서 쓰러져 대전에 입원했을 때는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인천 중환자실로 이전 했을 때는 면회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을 때는 곧 회복되니 네팔 사업 일정 등 바쁜 업무를 마친 후 방문하리라고 미루다가 갑자기 부음을 듣고는 황망하고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고인은 저에게 고마운 동지였습니다

고인이 살아온 삶은 이미 잘 소개되어 있어서 더 이상 언급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인권운동이나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헌신한 고인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러한 운동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고인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은 그렇게 잘 드러나 있지 않아서 제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고인이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할 때 고인은 인도 불가촉천민에 대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가졌습니다. 그 일이 국내 영역이 아니고 또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펼쳐야 할 사업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고인은 여러 교회와 목회자와 함께 모금을 하고 인도를 방문하면서 가장 어렵게 생계유지를 해야 하는 달릿을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일본 우또르 동포를 지원하는 활동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도 뜨거운 관심을 갖고 지원했습니다. 제가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을 열심히 할 때, 한국국제이주연구소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 고용허가제가 통과된 후 이주민 문제에 대해 정책적인 연구 작업을 하기 위한 연구소입니다. 고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고인은 기꺼운 마음으로 부이사장직을 맡고 물질적으로는 물론이고 여러 방면으로 함께 협력하며 이 일을 진행했습니다. 동지로서 고인에게 그 고마운 마음에 감사를 표합니다.

▲ 한국 민주화운동에 큰 족적을 남기셨던 김경남 목사님께서 지난 21일 별세하셨다. ⓒ유튜브 갭쳐

고인은 제가 못할 짓을 한 미안한 친구였습니다

고인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교회협) 인권국장을 지내면서 교회협을 가장 왕성하게 빛나도록 뒷받침했었습니다. 교회협 총무 직에 입후보하면서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때 저는 고인의 강직한 성격을 지적하면서 타교단의 협력을 받아야 할 총무직을 하지 말라고 오히려 말렸습니다. 총무직 입후보에 실패하고 난 후 고인은 저에게 이솝우화를 들려주었습니다. 곰을 만나서 친구가 쓰러져 목숨이 위태로운데, 그 친구의 위험을 나 몰라라 하고 나무에 올라간 사람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건으로 인해 저는 고인과 한동안 소원하게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친구를 위한다고 그렇게 말렸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고인만큼 교회협 총무 일을 잘 할 수 있는 분이 없었습니다. 교회협에 근무했던 경력이나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나 추진력으로 미루어볼 때, 고인이 교회협 총무가 되었더라면, 지금 교회협의 위상이 훨씬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친구가 뜻을 세워 입후보하였으면 격려와 지지를 하지는 못할망정, 그 뜻을 꺾도록 하였으니, 이솝 우화를 들어도 마땅하였다고 자책합니다. 고인에게는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의 영정 앞에서나마 고백합니다.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친구여, 미안합니다.”

고인은 노년의 삶을 본보여준 저의 스승입니다

고인은 노년이 되어 여수로 낙향을 하였습니다. 고인이 여수에서 조용히 삶을 마무리한 것이 아니라 보은의 삶을 살았습니다. 여수에 내려가 새벽 동네에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 쓰러졌습니다. 이 때의 위기상황을 돌이켜 보면서 고인은 저에게 주위 사람들로 받은 도움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주위 사람들이 119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여수 병원에서 아는 분이 급히 순천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순천병원에서 전문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8번의 위기 순간순간마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고인은 고백하며 이러한 주위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고인은 여수 본인 빌라에 손님 접대용 별채를 마련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제공하였습니다. 저도 때때로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가족들과 이 집을 몇 번 이용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별채 유지를 위해 약간의 사용료라도 내려고 하면 고인은 한사코 사양하였습니다. 제가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애써왔기 때문에 고인이 기꺼이 보은을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고인의 저서 ‘보은기’ (제목 “당신들이 계셔서 행복했습니다.”)는 제가 앞으로 여생을 살아야 할 지표를 보여준 것이라고 봅니다. 고인은 이런 점에서 저에게 노년의 삶을 사는 방식에 본을 보여준 스승이십니다. “스승님. 저도 보은의 삶을 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마운 동지, 미안한 친구, 삶의 스승인 고인에게 삼가 이 글을 바칩니다.

최정의팔 대표(사회적기업 트립티)  smc@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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