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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 출신인가?명상자전거 (5)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 승인 2019.10.25 14:26

우리는 묻는다. 당신은 어디 출신인가? Where are you from?
어느 나라 출신인가. 어느 대학 출신인가. 고향은 어디인가. 경상도인가 전라도인가.

자전거에게 물어보자. 당신의 자전거는 어디에서 왔는가? Made in Italy인가? Made in China인가? 이 질문은 유효한가? 의미가 크지 않다.

자전거 브랜드의 고급자전거는 대만산이 많다. 중저가는 중국산이 많다. 당신이 이태리제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 ‘Made in Italy’라고 찍혀있다. 당신의 자전거에 ‘Made in Italy’라고 붙어있다. 당신은 이태리 장인의 손길을 느끼며 흐뭇해 할 것이다.

이것은 이태리에서 만들어졌을까? 과연 그럴까? ‘Made in ~’은 세상에서 가장 많아 사용되는 영어일 것이다. 이 ‘Made in’의 의미는 무엇인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문제) 중국에서 생산한 자전거 프레임과 부품을 스페인이 수입하여 이태리에서 도색, 조립을 했다. 중국에서 수입한 자전거 프레임과 부품(정확히 말하면 중국제 프레임과 부품) 가격은 40만원이고 이태리에서 도색, 조립한 가격은 60만원이다. 스페인 업자는 한국에서 이것을 200만원에 팔았다. 이것은 Made in China인가 Made in Spain인가, Made in Italy 인가?

ⓒ전성표

정답) Made in Italy
해설) 제조국 표기의 규칙은 최종 제품의 가치 중 60% 이상이 그 나라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므로, 최종 제품의 가치 중 60%가 나온 이태리가 제조국이다. (무역 당사국마다 기준이 각각 차이가 있기는 하다).

이태리 자전거로 알려진 마지(Masi)라는 브랜드가 있다. 이태리 출신 사이클 선수이자 정비사 팔리에로(Faliero)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가서 자전거 공방을 열고 마지 자전거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이후 상표권을 미국 회사에 팔았다.
지금 이 자전거는 대만에서 생산한다.

ⓒ전성표

마지 자전거는 사람으로 치면 대만에서 태어난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고나 할까.

후지(Fuji)라는 브랜드의 자전거가 있다. 이름처럼 일본 자전거이다. 파산 후 판권을 미국 회사에 넘겼다. 저가 자전거는 중국에서 만든다.

ⓒ전성표

사람으로 치면 후지 자전거는 중국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인 셈이다.

자전거가 어디서 만들어 지는가? 많은 자전거가 한 라인에서 생산된다. 대표적인 것은 대만의 자전거 회사 ‘자이언트’이다. 자이언트 자전거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전거 생산업체이다. 자이언트라는 독자적 브랜드가 있을 뿐 아니라 유럽이나 북미 브랜드 자전거의 상당부분을 자이언트가 생산한다. 말 그대로 자전거업계의 거인이다. 

이것은 마치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현대자동차를 생산할 뿐 아니라, 쉐보레, 기아자동차, BMW, 아우디, 벤츠를 생산하고 엠블럼만 다르게 붙이는 것과 같다.

심지어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브랜드의 자전거가 같은 공장에서 나와 다른 상표를 붙이고 판매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삼성 갤럭시와 아이폰이 한 공장에서 생산된다고나 할까. 혹은 부산의 모든 맛집이 한 업체에서 재료를 공급하고 한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세계는 물품의 원산지 판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당신이 타는 상급 자전거는 대만산일 것이다. 당신이 중급, 하급 자전거를 탄다면 그것은 중국산일 것이다. 당신이 중상급 자전거를 탄다면 중국산이건 대만산이건 그것은 아마 자이언트라는 한 회사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 자전거에 ‘일제’(정확히는 일본 브랜드) 부품이 붙어있다 할지라도 그 부품은 사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중 한나라에서 생산된 것이다.

대외무역법상 일반적인 원산지 판정기준은 그 물품의 본질적 특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실질적인 생산·가공·제조과정이 최종적으로 수행된 나라로 규정하고 있다. 실질적 변형 기준(substantial transformation criterion)을 확인해야 원산지 표시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했다.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많은 경우 자전거(와 공산품)에는 원산지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원산지 판정이 어렵다. 세계가 거미줄처럼 엮여있기 때문이다. 

이 물건의 제조국은 어디인가? 묻지 말라. 별 의미 없다. 지금 그 물건만 바라보라.

그 사람이 어디 출신인가를 묻지 말라. 지금 당신 눈앞의 그 사람만 그냥 바라보라.

마르크스가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고 했을 때, 이 말은 노동계급의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국제적 연대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지만, 글로벌하고 세계화된 지금 상황을 예언한 듯하다. 자전거에게 ‘Where are you from?’을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자전거에게 조국, 생산지는 없다. 있더라도 의미 없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The working men have no country.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s15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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