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Sermonday
사울도 아니고, 다윗도 아니다!(삼상 16:1-13; 행 2:22-36; 마 22:41-45)창조절 아홉째 주일(10월27일)-종교개혁주일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19.10.25 14:25

1. 진정한 왕은?

지난주 세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에 섬김과 봉사의 사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 왕을 요구하여,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 지체 중에 역사하는 ‘죄의 정욕(롬 7:5)’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들러, 친히 진리의 말씀을 증거해 주셨고 이적과 기적을 많이 행하셨던 갈릴리 호수 근처 마을인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에 관해 “화 있을진저!”라고 책망하신 것은, 오늘 예수님을 알고 믿으나,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지난주 수요 성경공부 시간에 우리는 아모스서를 공부하며 깜짝 놀랄 말씀을 발견했었죠?

“내가 보니, 주께서 제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서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죽이리니, 그 중에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리라.”(암 9:1)

이스라엘의 벧엘 성전 제단 곁에서 하나님께서 기둥머리를 쳐, 그 안에서 예배드리는 무리를 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건물이 무너질 때, 도망쳐 살아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칼로 죽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여주는 말씀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심판은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선민, 교회 교인들에게 임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지금 창조절기를 지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 세상을 우리 인간들이 불의의 공간으로, 탐욕의 시간으로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인데, 종교가 제대로 기능을 발하지 못할 때, 심판받고 멸망당한다는 말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종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싸움과 전쟁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교리 때문에 서로 증오합니다. 나와 다른 타자를 혐오합니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싸움과 전쟁 속에는 힘과 권력을 추구하는 죄의 정욕이 있습니다. 섬김과 봉사가 아니라, 지배와 정복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선악과의 빈자리’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힘을 숭배하고 권력을 추구하게 됩니다. 왕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힘과 권력의 숭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세운 왕인 사울이 왕이 되지 못합니다. 구약의 말씀은 사울 대신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복음서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행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다윗도 진정한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왕은 오직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행 2:36a).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행 2:36b).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2. 사울도 아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이새의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삼상 16:1)

왜 그럴까요? 사실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을 때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난 후, 그는 변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들을 진멸하지 않고 남겨 두었으며, 승전을 기념하는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삼상 15:9-12). 따라서 사무엘은 사울을 크게 책망하고 여호와께서 왕을 버렸다는 것을 알려주게 됩니다. 물론 사울은 후회하며 간청합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로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보지 않게 됩니다(삼상 15:35). 이때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유명한 말씀이 나오죠?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삼상15:22-23)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 대신 다른 왕을 찾습니다. 말씀대로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야합니다. 그러나 사울의 위협을 걱정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삼상 16:2-3)

따라서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삼상 16:4)”라고 묻습니다.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삼상 16:5)”하게 됩니다. 이제 사무엘은 제사에 참석한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왕이 될 사람을 선택하게 됩니다.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 등 아들 일곱이 사무엘 앞으로 지나갑니다. 잘 아는 말씀이라 본문을 교독해보겠습니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삼상 16:6-10)

용모와 키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일곱 가운데 왕이 될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삼상 16:11a).”라고 말합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삼상 16:11b).”라고 말합니다.

그 양치는 목동이 바로 다윗입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2-13)

이제 사울과 사무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윗의 시대가 개막됩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삼상 17장), 사울의 사위가 되며(삼상 18장), 마침내 민심을 얻게 되나, 그를 시기하는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니게 됩니다. 그러나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고(삼하 2장), 이후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삼하 5장). 다윗의 시대가 개막된 것입니다.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 왕>

3. 다윗도 아니다!

이스라엘 국기를 ‘다윗의 별’이라고 할 만큼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고의 왕으로 생각하는 왕입니다. 얼마나 위대하게 생각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날도 기다리는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 본문 말씀에 의하면, 진정한 왕은 사울도 아니지만, 다윗도 아닙니다. 복음서의 말씀이 그것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국기인 다윗의 별>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마 22:41-42).” 그러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마 22:43-4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메시야 예언시인 시편 110편 1절,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를 인용하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다윗보다 먼저 계신 분, 다윗도 ‘주’라고 부르셨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로부터 1,000년 전의 다윗 왕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분을 보았는데, 다윗이 그 분에게 “내 주(my LORD)”라고 칭했으며, 바로 그 칭함 받은 이가 예수님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4.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사도행전 말씀이 이를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장 말씀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입니다. 오순절날 예루살렘으로 온 순례객들에게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증거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설교 말씀이기에, 제가 봉독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2-24)

예수님의 삶에 대한 말씀이죠? 그런데 베드로는 갑자기 다윗을 언급합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 2:25-27)

다윗이 예수님을 ‘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더 볼까요?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28-32)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아가 베드로는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되, 하나님은 오히려 예수님을 다윗 위에 앉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높이시는 것이죠?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3-36) 

설교를 시작하며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를 물었습니다. 사울도 아니고, 다윗도 아닙니다. 그럼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땅에 육체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세상의 주와 우리의 그리스도, 곧 진정한 왕이 되신 것입니다.

5. 진정한 왕은!

타이완계 미국인으로 내년인 2020년 11월 3일 미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앤드류 양(Andrew Yang)이 미국 대선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75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45세입니다. 그의 선거 공약은 간단합니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18세 이상 모든 미국 시민에게 ‘보편적기본소득(UBI, Universal Basic Income)’으로 매월 1000달러(약 12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재원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IT공룡 기업들로부터 거두겠다고 합니다. 평소 기본소득을 지지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공개 지지했었죠. 놀랍습니다. 만약 내년 미국 대선에 트럼프가 물러나고, 앤드류 양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면,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뜰 것 같습니다.

 

<앤드류 양>

이뿐만 아닙니다. 앤드류 양은 전 국민 의료보험 정책인 무상의료 ‘메디케어 포 올(Medicare For All)’ 정책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미 정부의 투자, 낙태권 보장, 성소수자 보호, 총기 규제 및 안전기술 확보 등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이민 정책에 있어서도 미국에 오래 거주한 불법 이주자들이 미 시민권을 딸 수 있는 ‘18년의 길’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앤드루 양은 자신의 저서 『보통 사람들의 전쟁: 기계와의 일자리 전쟁에 직면한 우리의 선택』 (흐름출판, 2019)에서 4차 산업혁명, 곧 로봇과 인공지능 혁명을 통해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노동자 40%에 관심을 가지며 이렇게 말합니다.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노동자 중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 40퍼센트는 어떻게 살까? 간단히 답하자면 극빈층으로 전락해 장애 급여를 신청하는 사람이 많다. 장애 급여 신청자는 2000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모두 350만 명이 늘었다. 특히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한 제조업이 몰려 있는 주에서 그 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미시간주의 경우 2003~2013년 사이에 실직한 31만 명 중 거의 절반이 장애 급여를 신청했다. 일자리에서 쫓겨난 사람 중 많은 사람이 정부에 의존하는 최하층 계급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화물차 기사가 일자리를 잃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잘 보여주는 지표다.”

이 책은 현재 우리의 삶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의 일자리가 기술로 대체되는 현실을 추적한 심층 보고서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 미래일자리보고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2020년, 51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체계적으로 일자리를 제거하기 시작한 기술 혁명의 민낯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죠?

2018년 말 택시기사들의 전면 총파업이 있었습니다. 카카오라는 거대 기업의 카풀 서비스가 택시기사의 일자리를 위협했기 때문입니다. 총파업에 참가했던 한 택시기사는 자신의 택시 안에서 분신을 기도해 결국 사망했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휴대폰 앱만 있으면 택시 대신 카풀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는 택시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대기업과 택시업계 사이의 밥그릇 전쟁일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기술의 진보’가 ‘보통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시대가 지금 다가왔다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앤드류 양은 운전기사, 사무원, 행정원, 상담원, 판매원부터 약사, 외과의사, 법조인, 기자 등 고소득 일자리까지, 기술이 어떻게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제거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문체로 전달합니다. 앤드류 양은 일자리가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 제대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증명하고, 이를 통해 지금보다 더 기계화된 세상을 살아가게 될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다른 세상을 고민하는 것입니다.

앤드류 양의 한자 이름은 양안택(楊安澤, 중국 발음은 ‘양안제’)입니다. 이름의 뜻은 편안한 연못입니다. 대선후보로 출마하고 2019년 5월에는 1% 지지율이었지만, 2차 TV토론을 거친 후에는 3%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지난 9월에 열린 3차 TV토론회에서는 토론회 후, 온라인 투표에서 유권자 3만8691명 중 1만4975표(38%)로 10명의 후보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관련 트위터에서도 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Joe Biden) 후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제 로봇과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미래에 우리는 앤드류 양의 대안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 1대 99%의 사회(혹은 20대 80%)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사람대접 받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울도 아니고, 다윗도 아니고, 지금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핵심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순종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