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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할 때 준비해야 할 것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10.27 17:05
너희 '관용'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하라. 주께서 가까이 (계신다).(빌립보서 4,5)

관용으로 옮겨진 에피에이케는 온화함, 사려깊음, 배려, 합리적임, 공정함; 절제, 자제, 인내 등을 뜻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법의 문자적 요구를 따른 것이 아닌'이라는 뉘앙스를 갖습니다. 이렇게 의미 폭이 넓은 말을 온전히 옮기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4,4에서는 '넓은 아량'이라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징검다리 삼아 앞의 여러가지 의미들을 어느 정도 담아낼 수 있는 말로 관용도 좋을 듯합니다. 용서보다는 다른 것을 허용한다는 의미로 그 말을 이해한다면 이것이 사전적 의미는 아니어도 그 말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려면 때로는 인내해야 하고 때로는 배려해야 합니다. 어느 경우든 사려 깊지 않고서는 어렵습니다. 그러한 요소들이 어우려져 겉으로는 온화하고 공정하며 합리적인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 법을 넘어서 있는 관용 ⓒGetty Image

그러한 '관용은 '위'로부터 나온 지혜의 덕목들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집니다(약 3,17). 그것은 '법'적인 요구에 따르고 그 안에 갇힐 수 있는 실천이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충분히 수양된 인격의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일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서 보기 힘들기에 위로부터 나온 지혜에 속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본문은 그러한 모습이 알려지도록 하라고 권고합니다. 알리라는 게 아니라 알려지게 하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의 태도와 실천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인정은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신 말씀에 비춰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마 5,16).

사람들이 '관용적인' 우리들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란 저렇구나 하고 말하며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가까이 계신 하나님은 이로써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가 그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도달하는 목표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지혜에 의해 조성되어가는 새사람의 형상입니다.

위와 같은 의미의 관용적인 새사람은 막연한 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악을 꾀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함과 두려움이 되는 사람입니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담은 그의 관용은 사람들 사이에 평화의 길을 낼 것입니다. 주께서 그 길을 따라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가 우리의 가슴을 넓히며 관용의 사람이 되게 하는 오늘이기를. 우리의 삶과 실천이 사람들에 의해 '관용'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고 우리에게 평화가 임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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