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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회복 사건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10.30 01:59
그(~아브람)가 야훼를 믿으니 그(~야훼)는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세기 15,6)

이 사건은 훗날 바울이 로마서 4장과 갈라디아서 3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논증하는 근거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바울의 70인역 인용은 히브리 성서와 작은 차이를 보입니다. 문장이 수동태로 바뀌면서 주어도 야훼에게서 그(~아브라함?!)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히브리 성서는 하나님이 '그가 그를 믿은 것'을 의롭게 여기셨다고 한다면, 70인역과 이를 따른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여겨진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야훼를 믿었다는 것은 그 문맥에서 야훼 신앙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야훼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었다는 것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아브라함이 이렇게 한 것이 그에게는 '의'라고 여기셨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결론이 여기서 곧바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를 불러내실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믿음의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하나님은 새삼스레 그가 그(의 말)을 믿은 것이 그에게 의라고 여기셨을까요?

▲ 아브라함 계약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Getty Image

이 일 바로 직전에 아브라함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수 없다고 체념 섞인 말로 항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달래며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하시며 그의 자손이 그렇게 많아질 것이라고 다시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이 상황에 있다면, 그 약속의 말씀에 어떻게 응답할까요? 모든 의심과 실망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별들을 보라 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정성때문일까요? 마치 아버지 손을 잡고 별들을 바라보는 아이처럼 든든함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이 하늘의 별들과 어우려져,  물론 또다시 그 실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의 답답한 가슴을 풀어주었기 때문일까요?

그 무엇 때문이든 아브라함은 실망과 불평의 늪에서 벗어났고 야훼(의 약속)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야훼에 대한 믿음이 있었음에도 불평과 불신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로부터 그를 건져내신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믿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믿음의 회복 사건을 하나님은 그의 의 곧 그에게 의가 되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는 마땅한 것 또는 옳은 것 또는 잘한 것 등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 사건이 하나님의 기대와 노력에 부응함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입니다.

실망하고 포기했을 때도 찾아와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오늘이기를. 우리의 믿음 사건에 잘했다 칭찬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평화로와지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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