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성서
파도의 한계가 지형을 바꾸다살며묵상하면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11.04 17:20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가지 사랑하셨다. 2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13:1~15/새번역)

십수 년, 아니면 수십 년 한 교회에서 큰 문제없이 목회를 한 어느 날, 맥이 빠질 수 있습니다. 선배 목회자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존경스러운 목사가 수십 년 섬기고 가르치고 설교했던 성도들을 보면서입니다. 그리 성숙해 보이거나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십수 년 열심히 섬긴 목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도 접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도 낙심이 깊어 보였습니다. 물론 몇몇 경우로 전체를 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웬만해서 변하지 않는구나. 그저 성격대로 믿을 뿐이구나. 함께 한 시간들, 감동적이고 깊이 있는 설교들은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습니다. 사실 목사들 자신부터 그 수많은 설교를 통해 얼마나 새로워지고 성숙해질까 싶기도 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비록 삼 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경험의 깊이는 남달랐습니다. 주님께 직접 배웠고 함께 살았습니다. 곁에서 특강까지 들었고 특별 훈련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앞두고 주님께서는 이미 아시는 눈치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갈 것을, 그 중 한 제자는 자신을 팔아넘길 것을. 그들의 한계를 꿰뚫어 보십니다.

▲ Paul DeSomma & Marsha Blaker,「Art Glass wave sculpture」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상황 그대로를 맡기십니다. 주님께서는 다만 사랑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제자들의 연약함, 그 한계를 끌어 안아주십니다. 죄를 짓기도 전에 죄를 씻어주십니다. 서로를 그렇게 씻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십니다. 모두들 주님을 버리고 도망한 이후, 서로를 만날 때를 준비시키십니다. 서로를 탓하고 책임을 넘기지 않도록 하십니다. 서로를 씻어줌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일깨우고, 자신을 배신할 누구라도 배신하기도 전에 씻어줄 수 있도록.

파도는 거세고 무서워 보이지만, 사실 허망하고 무력한 거품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큰 파도가 끊임없이 치고 또 쳐도 육지 위로 올라오지 못합니다. 자신이 무너진 바로 그곳까지 밖에 가지 못합니다. 저 먼 바다에서 굽이굽이 달려왔는데 해변에서 장난치는 한 사람의 옷자락조차 적시기 힘듭니다. 파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설교를 하고 또 합니다. 수많은 예배와 기도회를 함께 하지만 어느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파도처럼 아무리 큰 감동으로 일렁여도 늘 무너졌던 그 언저리에서 무너집니다. 듣는 이는 고사하고 말하는 이도 쉬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보여주셨듯이 그 수많은 실패는 단순한 실패가 아닐 수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켜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데는 실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 그대로를 품어주고 사랑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약해서 결국 저지르게 될 죄까지 미리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먼저 가시며, 그 길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먼저 주신 그 사랑 안에 거할 때,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장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변화를 하나님 이루십니다. 파도가 무너진 그 자리를 넘어서지 못하지만,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을 때 결국 지형을 바꿉니다. 바위를 부드럽게, 절벽을 아름답게 다듬습니다. 조정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그대로를 품어주는 사랑은 결국 거대한 삶의 지형을 바꿉니다. 제자들을 통해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듯이.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