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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삶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11.11 00:39

1 사데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3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곧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4 그러나 사데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이 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인데,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5 이기는 사람은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인데, 나는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않을 것이며, 내 아버지 앞과 아버지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시인할 것이다. 6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요한계시록 3:1-6/새번역)

“나는 네 일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너는 원기 왕성한 것으로 유명하다만, 그러나 실은 죽은 자다. 돌처럼 죽어 있다. 일어서라! 숨을 깊게 내쉬어라! 어쩌면 네 안에 아직 생명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네가 벌이는 그 분주한 일들로 봐서는 과연 그런지 나는 모르겠다. 네 일에서, 하나님의 일은 이뤄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지금 네 상태는 절망적이다.”(메시지성경)

하나님께 마음을 향하고 말씀을 읽어나가다가 멈칫합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하나님 다 알고 계심을 모르지 않았지만, 새삼 무엇인가를 들킨 것만 같습니다. 결국 이어지는 말씀이 가슴에 박힙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분주한 일상에서 많은 일들이 외피만 경건할 수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설교를 한 후에 문득 허를 찔릴 때가 있습니다. ‘논리에, 말에, 감정에, 청중에게 빠져서 하나님의 임재를 까맣게 잊어버렸구나. 자아도취를 성령 역사라 오해하기가 쉽구나.’ 기도, 찬양, 예배, 설교… 악의는 없었습니다. 잘해내려고 성실하게 애씁니다. 때로 좋은 평판에 으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살아있는 행위였던가? 잘 해내려는 열심 속에 빠져 영혼은 잠들어 있던 것이 아닌가?

깨어있는 행위는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삶은 무엇입니까? 어느 독서모임은 일정시간, 예를 들어 15분마다 한 번씩 종을 울리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책 내용, 토론의 논리, 주장과 논쟁에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에 깨어있으려는 방법입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도를 담아서 하느냐 역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 함께 이뤄가려는 중심을 놓치지 않고, 그 사랑을 담아서 하는 행위가 살아있는 행위 아니겠습니까?

본문 말씀에서 살아있는 행위는 보다 특별합니다. 우선 타자의 시선과 무관합니다. 평판이 어떤지와 상관없습니다. 생생하게 깨어있는 행위는 받은 가르침을 살아내는 삶입니다.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곧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이전의 삶에서 돌이키는 회개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언제든 오실 수 있는 주님을 향해 깨어있는 마음, 그것은 성공, 성취, 명예에 붙들리지 않습니다. 실패와 패배에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 Ivan Nikolaevich Kramskoy(1837~1887),「Christ in the Wilderness」(1872)

한 가지 기억해야할 오해가 있습니다. 환희와 기쁨만을 살아있는 삶의 증거로 보는 오해입니다. 사실 아픔과 공감이 영혼을 더 민감하게 일깨웁니다. 이반 그람스코이의 「광야의 그리스도」는 고뇌와 메마름 속에서 깨어있는 영혼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주님을 그린 다른 작품들과 결이 다릅니다. 아름다운 청년의 고운 피부나 후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광야의 고통으로 메마르고 터진 피부, 고뇌하는 검은 눈동자, 하나님을 향한 기도로 움켜쥔 두 손의 마른 뼈…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살아있는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고뇌와 아픔을 통해 생생하게 하나님을 향하는 영혼을.

참고: 이종한 요한의 성화이야기 http://www.ofmkorea.org/ofmsacredpicture/199976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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