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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어떻게 자본주의에 포획되었는가교회를 위한 기독교경제윤리 (27)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11.11 00:50

한국 개신교의 많은 교회들은 부와 소유를 얻고자 하는 신도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마치 ‘도깨비 방망이’(Deus machina)처럼 부릴 수 있기나 한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강하고, 개교회 중심의 자본주의적 회계와 경영에 익숙하다.

물론 한국 개신교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세상에 파견된 교회가 그래서는 안 되고, 자본이 사람을 지배하지 않고 사람이 자본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그들은 정의, 참여, 인간 존엄성 보장, 생태계 보전을 기본원칙으로 천명하는 기독교 경제윤리의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한국 개신교에서 여전히 소수파에 불과하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 교회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자본주의적 행동 방식의 화신이 된 것 같다. 어떻게 하다가 한국 개신교 교회는 자본주의의 포로가 되었는가?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 개신교 교회가 자본주의에 포로가 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네 단계로 나누어 분석한다. 첫째는 선교사들을 통해 자본주의에 친화적인 가치관과 신학이 한국 개신교에 이식되는 단계이고, 둘째는 미국 유학파 개신교인들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헤게모니 세력으로 자리를 잡는 단계이고, 셋째는 한국 경제성장기에 축복과 물질적 성공을 축성하는 일종의 번영신학이 한국 개신교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 단계이고, 넷째는 IMF 경제위기 이후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사이에 번영신학의 또 다른 버전인 청부론(淸富論)과 성부론(聖富論)이 한국 개신교인들을 사로잡는 단계이다.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에 들여온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생활방식

한국의 선교적 개신교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은 일찍부터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수용되도록 넓은 길을 닦았다고 혹평하곤 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자본주의 편향성은 1920년대 중반에 한위건과 박헌영을 위시한 사회주의자들이 한국 개신교 교회를 정면으로 비판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지적되곤 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의 개신교 비판은 너무 도식적이고 과도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조선 민중에게 그들이 전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여 개종하고, 전통적인 세계관과 관습을 버리고 서양 문물과 생활방식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그 당시 널리 시행되었던 전형적인 개종주의 선교 방식이었다. 이러한 개종주의 선교에서 서양 선교사들이 전한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성격의 문물과 생활방식은 피선교지 민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들을 끌어당겼다.

선교사들이 서양식 집에 살면서 보여주는 문물과 생활방식은 구한말 조선 반도에 현존하는 미국의 압도적인 국력과 자본주의 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단 찬탄과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구한말 고위 관료들의 미국 견문록이 이미 출판되어 읽히고, 미국 특유의 자본주의와 공화주의적 민주정 등이 조선의 미래 기획으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일부 지식층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교사들이 전개하는 의료선교와 학원선교는 미국의 선진 문명을 접하는 기회로 인식되었다.

한국에 파견된 미국 선교사들은 미국이 청교도 정신에 바탕을 두고 건국되었다는 신화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었다. 청교도 국가 미국에 대한 선교사들의 자부심은 낙후된 조선 사회에서 더욱 더 강해졌다. 그들은 신실과 근면과 절제라는 개신교 덕목들에 충실했고, 정부가 인민 개개인의 생명과 재산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신념을 공유하였다.

미국 혁명과 건국에 존 로크의 정치사상이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지만,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고 생명과 재산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것은 본래 청교도들의 신념이기도 했다. 생명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므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면, 신실과 근면과 절제를 통해 형성한 재산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되지 않아야 마땅하다. 생명이 신성한 것처럼 재산도 신성하다. 이처럼 재산의 신성불가침성을 강조하는 청교도 사상은 근대 자본주의의 핵심인 소유권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왜냐하면 소유권 이데올로기는 재산의 신성불가침성을 내세워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교도주의를 앞세운 선교사들은 조선 민중이 신실과 근면과 절제의 덕목을 결여하고 있다고 질타하였고, 이러한 덕목을 갖지 않고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곤 하였다.(미주 1) 그들은 신실하게 일하고 적절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것을 불변의 질서라고 믿었고, 일하지 않고 밥을 먹을 생각을 하는 사람을 능멸했다.(2) 이러한 선교사들의 담론이 피선교민들에게 어떤 효과를 발휘하였는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미국 선교사들은 자본주의나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단 한 편도 남기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선교사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근본주의 신학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전(前)천년설이나 세대주의에 기울어져 있었던 미국 선교사들은 예수 내림 전에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기에 사회문제나 제도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선교사들은 그들의 미국식 생활방식 속에 체현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에토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그것을 성찰하거나 문제시하는 글을 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의 미국 반공주의의 영향

1920년대의 미국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미국의 자본가들은 미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저항과 급진적인 변혁 운동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였고,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적이거나 공산주의적인 사상을 전파하거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을 봉쇄하고자 했다. 그 당시 미국의 반공주의는 사회주의적 러시아를 사탄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조야한 반공주의로부터 사회주의 운동과 마르크스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다수의 에세이들과 책들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였다. 이러한 미국 반공주의는 선교사들을 통하여 식민지 조선의 개신교 교회와 사회에도 전파되었다.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 어도만(魚涂萬, Walter C. Erdman, 1877-1948)은 1923년에 러시아 혁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미국 자본주의 경제의 우위성을 옹호하는 에세이를 썼다. 그는 “근래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과격주의니 하는 것을 능히 분별하지 못하는 인사라도 사회주의를 찬성하는 사람이 다수를 점하니 현안 문제가 된 것이라.”(3)고 전제하고 마가복음 10장의 부자 청년 이야기를 끌어들여 예수는 사회주의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단정한다. 예수는 재산이 많은 것을 책망하지 않고 그 재산을 선용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였을 뿐이며,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라고 권면하였기에 그것을 사회주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도만은 사회주의가 개인적 소유권의 폐지를 본령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는 예수가 개인적 소유를 폐지하는 데 찬성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워 개인적 소유권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경제를 옹호하고 사회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자 하였다. 그는 러시아 혁명 이후에 노농정부가 범한 과격한 조치들의 폐해를 일일이 나열하여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어도만과 마찬가지로 미국 북장로교에서 파송된 사우업(史佑業, C. E. Sharp, 내한 1910년 10월 18일)도 개인적 소유의 절대성을 옹호하는 입장을 확실하게 천명하였다.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개인적 소유를 폐지하고 공동사회적 소유를 창설하고자 하는 일이 벌어져 큰 문제가 되었다고 지적한 뒤에 “그러나 절대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은 하나님의 본뜻이 그렇지 아니하도다.”(4)고 역설했다.

▲ 사진 왼쪽부터 Koons 목사, Whiting 의사 부인, Koons 목사 부인, Sharp 부인, Sharp 목사 ⓒKorea Mission Field

사우업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논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자본을 모으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구별되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본가의 지배 아래서 노동을 하고 노동의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자본가가 경영을 맡고 노동자가 자본가의 지배 아래서 실행노동을 맡는 자본주의적 노동분업은 엄정하게 지켜져야 하고, 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협력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사우업의 논지에서 주목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분업 조건 아래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타협과 협력이 하나님의 뜻에 부응한다고 역설하는 대목이다. “그런즉 불가불 이 두 등분(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없으면 절대적으로 아니 될지니 이 두 등분은 연합하여 서로 도와주며 각각 자기의 받을 유익을 생각하지 말고 먼저 생각할 것은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책임을 생각하여야 할지니라.”(5)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의 분업과 협력만을 부각시키는 사우업은 자본주의 경제가 자본의 노동 포섭에 근거하여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완전히 도외시하고 하고 있다. 노동자가 자본가의 지배 아래서 체계적으로 수탈당하고 있는 현실이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그는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이 하나님의 뜻을 좆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먼저 추구하는 일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 사이에 가로 놓인 지배관계와 이해대립에 눈을 감고 둘의 협력과 심지어 서로 사랑할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구하는 대목에서 사우업의 자본주의 옹호는 정점에 달한다.

한국의 선교적 개신교에서 선교사들은 교회가 신학정책을 위시해서 선교정책과 사회정책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선교사들의 영향력은 그들의 편에 서야 교회 지도부에 진입할 수 있었던 개신교 지도자들을 통해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미국이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선택된 나라라고 선교사들로부터 배운 친미적인 한국 개신교인들은 재산의 신성불가침성과 자본주의 경제를 옹호하는 선교사들의 입장을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였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효과

미국 선교사들이 자본주의적 미국 문명을 한국 개신교인들의 이상으로 제시하였다면,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자본주의적 에토스가 한국 교회에 자리를 잡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자치, 자전, 자립을 기본축으로 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선교지에 세워진 교회의 구성원이 영수를 중심으로 조직을 꾸리고 스스로 전도하고 교인들의 헌신에 기대어 교회의 물적인 자원을 확보하도록 하였다. 이 선교정책은 한국 개신교 교회의 부흥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되지만, 개교회 중심주의를 정착시키고, 개교회 중심의 교회경영을 향해 넓고 평탄한 길을 깔아준 것도 사실이다.

교회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이 아니지만, 개교회 중심의 자립은 교회의 수입과 지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교회장부는 합리적으로 기재되어야 했고, 그러한 장부 기재 방법의 도입은 치리회가 교회 회계를 감독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절차였다. 선교사들이 선교비 수입과 지출을 엄격하게 통제하였던 것처럼, 선교사들의 감독 아래 놓여 있는 선교지 교회도 개교회의 수입과 지출을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하나님에게 성별된 재물을 다루는 데 감히 실수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로 여겨졌다.

개교회 중심의 자립과 이를 위한 회계는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서 교회 저축을 늘리는 경향을 촉진하였다. 그렇게 해야만 교인수 증가에 대비해서 교회 부지를 확보하고 교회건물을 건축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교지에서는 수많은 교회 건물들이 선교사들의 지원 없이 개교회 구성원들에 의해 세워졌는데, 건축을 위한 특별 헌금도 교회 건물을 세우는 데 기여했겠지만, 자본주의적 회계 방식이 정착되지 않고서는 이러한 교회 건물 건축은 불가능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회계 방식이 교회 회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할지라도 오래 동안 한국 개신교 교회는 교회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 일은 한국 경제가 급속한 경제성장 단계에 진입하고 개신교 교회들이 양적 성장을 지상과제로 천명하였던 1960년대 후반 이후에서야 실제로 벌어졌다. 말을 한 김에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1990년대 중반 이후에 교회 성장이 정체되거나 도리어 교인수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되어 교회 재정이 줄어들게 되자 개교회 중심의 자본주의적 회계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교회 경영을 강제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한 회계 방식은 교회 지도부, 특히 교회 재정에 깊이 관여하는 교회 헤게모니 세력으로 하여금 가장 자본가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인건비 지출을 억제하고 교회 직원들을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취급하는 행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미국 유학생 출신 개신교인들의 헤게모니 장악

해방 이후에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은 이승만과 그 주변의 미국 유학파 개신교인들이었다. 일제 시대에 미국 유학생들의 수효는 많지 않았고, 그들 가운데 90% 이상은 청교도주의적인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선교사들의 근본주의와는 달리 사회복음이나 에큐메니칼 선교운동처럼 세계의 형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자 하는 기독교 사상에 접하였고, 개신교 신앙이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들이 접한 미국 문명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선민의식을 강화하는 청교도주의에 바탕을 둔 기독교 문명이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실용주의와 과학기술의 힘으로 무장한 강력한 자본주의 문명이었다.

미국 유학생 출신 개신교인들 가운데 경제학이나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신고전주의로부터 제도주의를 거쳐 경제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은 견해를 보이기는 하였지만, 해방 직후 낙후된 한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유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하고 자본주의적 자립경제를 강력하게 추구하여야 한다는 데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그들은 한국 경제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생산력 발전이고, 이를 위해서는 자본의 집중과 과학적 경영을 도입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을 같이 했다. 나눌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분배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파이를 키우기 위해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노선이 중시되었다. 대체로 이것이 기독교 문명에 기반을 둔 미국 자본주의를 모델로 삼은 미국 유학파 개신교인들의 경세사상이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기독교인들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서 경제부처의 요직을 차지하고 재정정책, 경제정책, 산업정책, 농업정책 등을 주관하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미국 유학파 개신교인들은 개신교 교회 안에서도 엘리트였고 헤게모니를 장악한 교회 지도부에 속해 있었다. 그들이 매개고리의 역할을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이승만 정권에서 개신교와 정부는 밀월관계에 있었다. 분단과정과 한국전쟁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분단 고착화 과정에서 개신교는 반공노선을 표방하는 정권을 확실하게 지지했고,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국시의 지위에 올려놓는 것까지도 당연시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아래서 한국 자본주의가 천민적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관료자본주의적 부패의 추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특권적 지위를 갖고 있었던 개신교인들이 관료적 부패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교회는 이에 대해 침묵하기 일쑤였다. 한국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밥그릇을 차지하겠다고 서로 늑대처럼 투쟁하는 가장 동물적인 자본주의적 상황에서 개신교 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적 옹호자로 고고하게 서 있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교회성장

1960년대 중후반부터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국가주도 자본화와 공업화는 한국 사회를 급속한 성장사회로 변화시켰고, 이에 덩달아 한국 개신교의 일각도 역사적 개신교의 엄숙하고 금욕주의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폭발적인 교회성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 도화선 노릇을 한 것은 오순절주의 운동과 번영신학에 바탕을 둔 성공 지상주의 운동(6)이었다. 모두 미국에서 이식된 두 운동은 그 뿌리가 다르기는 하지만 성령의 힘을 받은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이 없고 영적, 신체적, 물질적 축복이 임한다는 밑도 끝도 없는 확신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는 데 공통점이 있었다. 이러한 메시지는 복을 얻기 위해 신령을 부린다는 기복신앙이 매우 강한 한국인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한국 개신교의 지형에서 번영신학의 구호를 강력하게 외친 사람은 오순절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조용기였다. 그는 삼박자 구원이라는 극히 대중적인 구호를 앞세워 물질적인 성공과 신체적인 건강, 그리고 내세구원의 보장이라는 기독교인들의 극히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욕망의 추구를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신성화했다. 신유와 방언은 성령이 임재하는 표지이고, 성령이 임재하는 곳에 성장과 번영과 물질적 축복이 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조용기가 담임하는 교회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수백 배의 교세 성장을 이루었고, 서대문의 한 빌딩을 거쳐 여의도의 거대한 성전으로 이전하는 데 걸린 시간도 몇 년 걸리지 않았다. 조용기의 성장 신화에 많은 교인들과 목사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역사적 개신교에 속한 교회들은 순복음 교회를 잠시 낯설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순복음 교회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교회성장을 향한 발 빠른 움직임은 여의도의 대규모 부흥집회들로 이어졌고, 대폭발을 실제 구호로 내건 엑스플로 74 대회는 그 당시 군사정권의 비호 아래 여의도의 5·16광장에서 엄청난 규모로 치러졌다. 그 이후 한국 개신교 교회의 성장은 세계 교회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1960년 현재 1백만 명 정도였던 개신교인들의 수효는 폭발적인 성장 시기를 거치며 1990년대 중반에 1천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교회의 양적 성장은 자본주의적 에토스가 한국 교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정상화되는 과정이었다. 한국에서 급속한 경제성장이 독재자를 매개로 한 자본의 집중과 전략적 배치에서 추동력을 얻었듯이, 교회의 양적 성장은 성령의 임재를 온 몸으로 현시하는 듯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특별한 은사와 그 행사를 필요로 했다. 교회의 양적 성장은 교인수의 증가와 헌금액수의 증가라는 두 가지 지표를 기본으로 하고, 이 두 가지 지표의 집중적인 표현은 교회당의 크기와 호화로움이었다. 그리고 많은 교인과 헌금, 거대한 교회당을 장악한 목사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인정받고, 그를 중심으로 해서 견고한 인적 카르텔이 형성되고, 교회의 직책과 자원이 특권적으로 배분되는 구조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유감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양적 성장이 성령의 임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되면서 서로 이웃하는 지역 교회들 사이에서조차 교인들을 서로 뺏어오고 지키기 위한 투쟁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그렇게 해서 개신교 교회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하고, 교회의 성공은 가히 물질적인 지표와 규모를 달성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되기에 되었다. 이것을 가리켜 교회의 자본주의적 형태변화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말을 가져다 써야 하는가?

청부론(淸富論)과 성부론(聖富論)에 매료된 개신교

한국 교회가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최근의 담론들은 깨끗한 부를 모아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자는 청부론(淸富論)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부를 모을 수 있다는 성부론(聖富論)이다. 김동호의 청부론의 뿌리는 칼빈이나 웨슬리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신실, 근면, 절제 등의 덕목을 강조한 청교도 윤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청부론은 역사적으로 깊은 내력이 있는 가르침이고, 번영신학의 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조용기의 삼박자 축복의 천박함과는 다소 결을 달리하며, 오히려 중산층을 위한 경제적 권면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청부론이 제창되어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기 시작한 시점이다. 청부론은 한국에서 고도성장이 한계에 부딪쳐 거대재벌이 줄줄이 도산하고 IMF 경제관리를 받기 시작했던 시점에 크게 부각되었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각자 도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나락에 굴러 떨어지는 데 대한 불안을 해소하고,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을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김동호는 이와 같은 사람들을 향하여 부자가 되는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부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과 지혜를 제시하였고, 부를 얻은 뒤에 부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덕목과 기술을 가르쳤다.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몫을 제외한 뒤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부를 사용하라는 가르침은 개신교 윤리의 고전적 명제를 연상시킬 만큼 고색창연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설교는 이미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게는 그 부의 축적 과정을 윤리적으로 되돌아보고 부를 의미 있게 사용하는 안목을 키우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겠지만, 많은 경우 약간의 자선으로 부의 추악한 축적 과정을 미화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부론의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신자유주의로 치닫는 자본주의에 맞서지 않고 그 흐름을 타면서 부를 획득하고 사용하는 방법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교회의 설교라고 할 수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이 일상이 되다시피 하여, 신실과 근면과 절제의 덕목을 제아무리 발휘해도 깨끗한 부를 쌓을 수 없게 된 사회에서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담론은 도대체 어떤 효과를 갖는 것일까? 그리고 부와 가난의 구조적 연계를 끊고서 단지 부의 획득에 윤리적 등급을 매기는 것이 과연 누구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인가?

성부론은 2008년의 금융위기를 거치며 난파된 중산층의 현실을 거꾸로 뒤집으며 자본주의적 요행을 하나님의 은혜와 결합시켰다. 카지노 자본주의가 화폐자본을 이용하여 부를 획득하는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세상에서 고전적인 개신교 직업윤리나 노동윤리가 자리를 잡을 수는 없다. 김동호의 청부론이 난파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언어는 요행이다.

만일 불의한 재물을 이용해서라도 친구를 사귀고 하나님이 맡긴 작은 재물을 활용하는 데 충실하여야 한다는 성서의 가르침이 옳다면, 이 세상에서 그러한 부를 얻기 위해 기댈 언덕은 하나님의 은혜일 것이라고 성부론은 가르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금융자본의 운용 규칙으로 가득 차 있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부를 획득하고 그 부를 활용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바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성부론은 교회가 카지노 자본주의의 언어에 포획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다. 돈이 돈을 버는 투기장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가장 퇴행적인 형태이다. 이러한 자본주의를 내면화하는 교회의 담론은 민망하고 황당하다.

맺음말

한국 교회가 어떻게 해서 자본주의의 포로가 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는 작업이다. 오히려 한국 교회가 어떻게 해야 자본주의의 포로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다. 한국 교회가 자본주의에 포로가 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고 해서 그것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암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사태의 역사적 연원을 파악하는 일과 그 사태를 극복하는 방략을 규명하는 일은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교회가 자본주의의 포로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방법과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것은 엄청난 학문적 노력과 실천적 작업을 필요로 하는 과제이다. 그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이론가는 이론가대로, 실천가는 실천가대로 애를 써야 하고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미주

(미주 1) 잘 알려진대로, 선교사들은 게으름을 경멸하고, 무절제와 낭비의 표지로 여겨진 음주, 끽연, 도박 등을 엄금하여 청교도적인 에토스를 확산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러한 가르침은 조선 민중을 자본주의적 노동체계에 적응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미주 2) 사우업, “사람과셰샹의관계,”  『신학지남』 6/1(1924), 141: “사람이 몸으로 일을 하던지 정신으로 하던지, 자격이 많거나 적거나 항상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을 중대히 여기며 영화롭게 여기고 공연히 노는 사람과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비록 부요하고 존귀한 자라도 업신여기고 낮게 여길지니라.”(표기는 저자가 맞춤법에 따라 고쳤음. 이하 『신학지남』 인용시 같음)
(미주 3) 어도만, “신쟈의생활과샹관된대문뎨,” 『신학지남』 5/4(1923), 99. 원문에서 “현안 문제”는 “활동하는 문제”로 표기되어 있으나 의미를 고려하여 표현을 바꾸었음.
(미주 4) 사우업, “사람이샤회와관계되난일,” 『신학지남』 5/2(1923), 161, 163.
(미주 5) 사우업, 앞의 글, 168.
(미주 6) 번영신학에 대해서는 본 연재 제26회 “교회를 자본주의에 종속시키는 번영신학은 타파되어야 한다”를 보라.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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