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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살리는 돌이킴”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11.14 20:30
1 바로 그 때에 몇몇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 제물에 섞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일러드렸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런 변을 당했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는 탑이 무너져서 치여 죽은 열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5 그렇지 않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가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그는 포도원지기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내가 세 해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고 왔으나, 열매를 본 적이 없다. 찍어 버려라. 무엇 때문에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8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내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그 때에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십시오.’”(누가복음13:1~9/새번역)

일어난 일, 일어날 일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찾고 싶어 합니다. 왜, 어떻게를 모를 때 직면하는 불안을 회피하려는 통제욕입니다. 이 자연스러운 반응이 권선징악의 신관과 만날 때 폭력을 낳기도 합니다. 제물을 바치려다 억울하게 죽어간 갈릴리 사람들, 실로암 탑에 깔려 죽은 열여덟 사람 그들의 죽음을 설명하려 합니다. 죄 때문에 받은 징벌이라고,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폭력을 가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욥의 고통을 죄의 결과로 설명하던 친구들, 그들은 내심 자신들의 안전에 안심하며 자기의의 결과라 여긴 것이 아닐까요. 진리라고 혹은 계시라고 고집하는 그 설명이 실은 자기변명이나 자기정당화가 되기도 합니다. 타자의 고통과 자신을 분리합니다. 암이 재발해도 쉬 말하지 못하고, 목회자 가족은 병이나 어려움을 밝히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 James Kerwin, 「Abandoned Church」

자신이 믿는 신앙의 틀이 이전보다 더 사랑하게 합니까? 아니면 더 많은 죄인을 발견하게 합니까? 확 트인 마음으로 수많은 차이를 끌어안게 합니까? 아니면 선과 악, 흑과 백으로 세상을 더 선명하게 나누고 밀치게 합니까? 자신과 타자를 한몸으로 보게 합니까, 아니면 철저히 분리시킵니까?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건만, 어떤 열매를 맺는 신앙의 나무입니까?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설명이 아니라 열매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결국 회개하지 않으면 죄에 대한 징벌로 멸망당한다는 경고입니까? 죄가 더 많던 적던 상관없이 누구라도 자기 죄 때문에 징벌을 받는다는? 이어지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다른 관점을 열어줍니다. 무화과나무는 성서에서 이스라엘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3년을 기다려도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에서 3년의 공생애 사역에도 돌이키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떠오릅니다. 더 시간을 달라는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이 아닐지.

예루살렘 성전이 결국 무너지고만 역사를 누가복음의 저자와 독자는 알고 있습니다. 결국 제물에 피가 섞였고, 성전을 지키는 망대는 무너졌습니다. 수많은 백성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몇 사람만 자신의 죄 때문에 죽었을 뿐 나머지 거룩한 우리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결국 다함께 멸망을 당했습니다.

돌이켜 다르게 살아가는 회개의 열매가 없던 이스라엘, 무화과나무는 뽑혀버렸습니다. 그 역사적 진실 앞에서 이 본문을 대합니다. 그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내가 돌이켜 하나님 나라를 살지 않아서 네가 멸망하고, 네가 회개하지 않아서 내가 멸망하는구나. 너와 나는 둘이 아니었구나.’ 우리를 살리는 나의 돌이킴이 얼마나 절실한지 선명해집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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