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서한

올 2005년은 한국의 경우 을사늑약 100년, 광복 60년, 한일국교정상화 40년이 되는 해이지만 일본에게도 전후 60년이라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일본 역시 전후 60년 동안 일본이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지향해야할 길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어디에 와 있고, 또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우리는 이웃 국가로서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한국은 파란만장한 질곡과 상처의 역사를 거치면서 많은 슬픔과 한을 품어 왔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 끝에 이제 조금씩 우리가 걸어왔던 영광과 수난이 뒤섞인 발자취를 직시하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추고 왜곡했던 사실들의 진실을 알리고, 아픔이 있었다면 그 아픔을 밝혀내고 치유하려는 노력은 두 번 다시 국가의 횡포나 무능력에 의해 죄 없는 민중들이 고통 받아서는 안 된다는 다짐에 다름 아닙니다.

강제철거에 맞서 싸우고 있는 200여명의 조선인 마을 ‘우토로’에 한국 국민이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우토로 주민들은 나라를 잃어 고향과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에 동원되었지만, 해방 후에는 일본으로부터도 조국으로부터도 어떠한 권리도 없이 철저히 버려진 채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을 일구어왔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억울하게도 땀과 눈물로 일궈낸 우토로 땅에서 강제추방당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같은 한핏줄 한동포로서 또한 같은 인간으로서 우토로 사람들의 역사와 인권이 이렇게 무시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60여 년간 우토로에 살면서 일본 근대화의 혜택을 전혀 누려보지 못하고, 아직도 우물에 의존하고 하수시설마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일본 정부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에게 우토로는 무엇입니까? 당신 나라의 아름다운 도시, 교토의 미관을 해치는 방해물입니까? 동화되어야 마땅할 재일조선인들의 없어져야 마땅할 마을입니까? 아니면, 자위대에 인접하고 있어 안보의 위협을 느낍니까? 우토로는 일본의 야만적 식민 통치, 침략전쟁 수행, 민족 차별의 상징으로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우토로 공동체에 대한 강제철거는 유엔이 국제법 위반 사항으로 그 시정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유엔 인권위원회 인종차별 특별보고관은 전형적인 인종차별의 사례로 단정지었습니다. 그럼에도 우토로 강제철거에 일본이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면 일본이 현재 추진 중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자격이 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습니까? 전후 60년을 맞이한 오늘 일본이 말하는 평화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우토로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추방되어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고, 또한 물끄러미 그저 바라만 볼 수 없습니다. 우토로 강제철거는 진정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가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요구합니다. 또한 전후 60년 일본의 양심과 지성들에게도  호소합니다. 우토로의 역사와 인권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한일간의 우호관계는 상호간의 신뢰관계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으며, 우토로는 지금 한일우호 문제의 중요한 시금석이 되고 입습니다. ꡒ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일본의 전후를 없애는 것,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일본인의 양심을 없애는 것ꡓ이라는 우토로 재일조선인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일본 정부는 우토로 문제에 관해 역사적, 도의적 책임을 다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우리는 우토로가 강제철거 당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국내외 양심적인 시민들과 함께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갈 것임을 천명합니다.

2005. 9. 24 「우토로 문학축전」을 맞아
우토로국제대책회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한국문학평화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