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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희년법은 부동산 투기를 심판한다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28)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11.18 17:34

성서의 희년법은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하고 믿는 사람들의 비전이다. 희년법은 땅이나 주택을 잃은 사람에게 그 땅과 주택을 되돌려주고, 부채를 탕감하고, 노예가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라고 가르치고 있다. 희년에는 토지를 경작하는 것도, 추수하는 것도 금하여, 생태계를 인간의 경제로부터 해방시키라고 분부한다. 한 마디로, 희년법은 모든 것을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2천 5백 년도 더 되는 까마득한 옛날 팔레스타인에서 선포된 희년법은 정의, 참여, 인간 존엄성 보장, 생태계 보전 등 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의 네 가지 원칙들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구현하고 있다.

성서의 희년법은 한국 교회에 가장 큰 도전이다. 그 까닭은 한국 교회가 세상을 향해 희년법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스스로 그 선포에 합당한 실천의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희년법의 정신에 따라 교회가 사회 개혁을 위해 제안할 사항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자정책, 부채탕감, 노동하는 사람들의 자주성, 생태계 보전, 부동산 정책 등 당장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것만 해도 많이 있다. 필자는 그 가운데 희년법의 정신에 따라 부동산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부의 양극화를 가져오고 있고, 한국 사회를 재앙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결정적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희년법의 정신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는 부동산 투기를 심판하여야 하고, 교회를 이루고 있는 신도들이 부동산 투기에 나서지 말라고 엄중하게 가르쳐야 하며,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도록 촉구하여야 한다.

오늘의 연재 제28회에서 필자는 희년법의 정신을 명확하게 밝히고, 그 다음 연재 제29회와 제30회에서는 교회가 부동산 투기를 심판하는 논리를 밝히고, 그 논리에 바탕을 둔 부동산 정책을 제안한다.
 
희년법의 역사성

성서의 희년법은 레위기 25장 8-17절, 23-55절에 수록되어 있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방대한 주석 작업을 하여야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기왕의 희년법 주석과 연구를 전제하면서 희년법의 정신을 가다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성서 본문을 분석할 것이다.

▲ 성서에 나타난 희년법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Getty Image

희년법은 출애굽 전승의 핵심을 담고 있다. 하나님이 작은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억압과 수탈과 차별과 배제로부터 건져내심으로써 그분이 정의로우신 분임이 드러났다는 확신이 그것이다. 성서의 민중은 이러한 확신을 갖고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자주적이고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원시 이스라엘을 수립했고, 왕권이 형성된 뒤에는 토지겸병과 채무노예, 부정부패 등으로 얼룩진 기득권 구조를 예언자적으로 비판했고, 왕국이 멸망하고 바빌론 포로기를 겪은 뒤에는 정의로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로운 이스라엘을 구축하고자 했다. 희년법은 바로 이러한 비전을 담고 있다.

혹자는 희년법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시행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희년법의 실정성에 매몰되어 희년법의 역사적 맥락과 비전을 놓치기 십상이다. 희년법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들은 이미 출애굽 전통에 충실한 노예해방 법, 채무면제 법(출애 21장; 신명기 15장 등), 안식년 법(출애 23:11) 등에 담겨 있었다. 땅을 아예 팔지 못한다는 희년법 규정은 땅을 다른 지파에 넘기지 못하게 금지하는 규칙에 반영되어 있었고,(민수기 36:1-9) 나봇의 포도원 사건처럼 남의 땅을 빼앗아 자신의 소유로 삼거나(왕상 21: 1-10) 다른 가족이 경작하는 땅을 침범하는 일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고대 히브리 관습법(잠언 23:10)에 근거하고 있다. 희년법의 정신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채무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이 입을 옷을 저당으로 잡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당대 사회 현실에 대한 예언자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표출되었다.(아모스 2:6-8; 8:4-6; 미가 2:1-2 등) 여기서 더 나아가 이사야 61장은 희년 정신을 종말론적 비전과 연결시키고 있고, 이 비전은 예수의 메시아 취임 설교(누가 4:16-21)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런 점들을 놓고 볼 때, 희년 사상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고 그 사건에서 드러난 야훼의 정의를 그때그때의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한 히브리 민중의 실천과 행위를 통해 면면이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희년법의 정신

희년법의 정신은 그 전문을 이루는 레위기 8-17절에 잘 나타나 있다. 전문에는 희년을 계수하는 방법, 희년의 성격, 희년에 실행하여야 할 일들과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들이 명시되어 있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뒤 제50년째 되는 해이고, 대사면의 해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성격을 부각하기 위해 희년에는 특별히 숫양의 뿔(요벨)을 불게 하였다.

➀ 희년에는 반드시 원상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희년에는 반드시 두 가지를 실행하여야 한다. 하나는 그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본래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고,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레위 25:10)

먼저,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라는 말씀은 가난 때문에 종이 된 사람들을 해방시켜 자유민으로 살아가게 하라는 뜻이다. 사람의 몸은 사람이 자유롭게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아훗짜)인데, 이 유산이 빚 때문에 타인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상태를 종식시켜서 원상을 회복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예해방은 채무면제를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해방은 채무탕감의 성격을 띤다.

그 다음에, 희년에는 빚으로 인하여 빼앗겼던 땅을 되찾게 해서 사람들이 대가족 단위로 살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본래의 유산(아훗짜)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땅은 생존과 생활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생산수단이었다. 그 생산수단이 없으면 자주적인 삶의 기회를 상실한다. 또한 희년에는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 살아갈 수 있도록 빼앗겼던 주택을 되찾게 해야 한다. 주택도 사람이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아훗짜)으로 간주되었다.

한 마디로, 희년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유산, 곧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몸과 땅과 주택을 되찾아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는 해방의 원년이다.

➁ 왜 원상회복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러한 원상회복이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은 두 가지이다.(레위 25:17) 하나는 형제를 억누르지 말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야훼를 두려워하라는 것이다.

형제를 억누른다는 것은 형제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니, 사람들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를 깨뜨려 사회를 적대적인 관계로 전락시키는 중대한 죄악이다. 그러한 죄악은 관행과 제도를 통하여 공고한 구조를 갖춘다. 이러한 구조악에 사로잡혀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야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야훼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야훼는 눌리고 빼앗기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복수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훼를 두려워하고 형제를 억누르지 말라는 분부는 출애굽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작은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압제와 착취와 강제노역에서 해방시키시는 야훼의 정의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와 평화를 수립하라는 권고이다.

➂ 원상회복에 관련하여 더 고려할 점은 무엇인가?

희년법의 전문에는 원상을 회복하기 위해 두 가지가 더 고려되고 있다. 하나는 희년에 경작과 추수를 금하는 것인데, 이러한 조치는 땅이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도록 하려는 배려이다. 이러한 배려는 출애굽기 23장 11절과 레위기 25장 1-7절의 안식년 법에도 나타난다. 사람이 경작하지 않아도 땅에서 맺힌 곡식과 열매는 가난한 사람들과 동물들이 취하게 하였다. 안식년 법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생과 상생의 질서를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과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정신을 담고 있다. 이러한 안식년 정신과 원칙은 희년법에도 오롯이 담겨 있다.

또 다른 고려 사항은 땅을 되무를 때 땅의 값을 정하는 일과 관련된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는 동족이 빚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유산인 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을 경우에 땅을 잃은 사람이 직접 나서거나 그 사람의 친족이 나서서 땅을 되찾도록 하는 관습이 있었다. 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도 땅을 아예 팔 수 없게 한 관습법이 있었기에 땅을 무르는 일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땅을 무르게 하려면 땅 값을 정해야 할 것인데, 그 땅값은 희년까지 남은 기간 동안에 그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소출의 양을 기준으로 해서 정했다. 소출에는 사람의 노동이 기여한 부분, 땅이 기여한 부분, 접근로나 기후 환경이 기여한 부분 등이 있을 것이니, 땅이 기여한 부분을 계산한 다음에 희년까지 남은 햇수를 곱하여 땅값을 산정하는 방식은 후대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가 주장한 지대과세론의 선구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희년법은 정의, 참여, 인간 존엄성 보장, 생태계 보전 등의 원칙을을 구현하고 있고, 그 핵심은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자유와 땅과 주택을 모든 공동체 성원들에게 보장하라는 것이다. 사람의 자유와 땅과 주택은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고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고, 희년법은 그러한 사상을 하나님의 ‘아훗짜’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해서 따로 구별하여 지켜야 할 사람의 자유와 땅과 주택은 하나님의 것으로 선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사람들이 억눌려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자유와 땅과 주택을 빼앗겼다면,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기득권 구조를 폐기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살아가도록 허락한 것을 되돌려주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희년법은 한 사회의 기득권 구조를 송두리째 뒤집어엎고 그 구조에 얽매어 있던 사람들을 전면적으로 해방하라는 혁명적 요구와 비전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희년법은 전문에 이어지는 본문에서 땅의 원상회복, 주택의 원상회복, 이자금지, 채무 면제와 노예 해방 등을 조목조목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성서의 희년법은 부동산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땅의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희년법 본문은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레위 25:23)는 하나님의 장엄한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다. 땅에 대한 주권이 야훼께 있으니 그 어떤 사람에게도 땅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땅에 대한 절대적 처분권을 부정한다는 뜻이다. 이 땅은 나의 것이니 아무도 그것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주장하거나, 내 마음대로 처분하겠다고 나설 수 없다는 의미이다. 야훼의 주권 아래서 사람에게 허락되는 권리는 오직 땅을 경작하고 활용하는 권리뿐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그 권리는 세습되었다. 왜냐하면 그 권리는 사람들이 생활의 기회를 확보하는 기반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희년법이 전제하는 토지의 점유사용권 사상은 모든 사람에게 삶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하여 땅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건드릴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것은 그 누구도 소유하거나 독점할 수 없다. 그것은 공적인 것이다. 이것이 희년법의 핵심 사상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이 핵심 사상은 희년법의 전문에서 ‘아훗짜’라는 개념으로 표현되었다. 레위기 25장 23절이 더 할 나위 없이 장엄하게 선포하는 희년법의 원리는 토지 공(公) 개념이다.

이러한 희년법의 원칙에서 보면,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땅이 빚이나 기타 구차한 사정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그 땅을 일시적으로 차지하게 된 사람은 그 땅의 소유자임을 자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땅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이 그 땅을 본래 차지하고 있었던 사람에게 삶의 기회로 부여하였기 때문에, 그 땅은 언제든 그 사람에게 되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희년법의 원칙은 빚으로 잃은 땅을 되 무르기 방식으로 되찾게 하는 논거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유업인 땅을 희년에 무조건 원상회복시키라는 강력한 요구의 논거로 제시된다.

이러한 원칙은 주택의 원상회복에도 적용된다. 땅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듯이, 주택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재화이다. 땅이 하나님의 유산이라면, 주택도 하나님의 유산이다. 따라서 주택을 잃은 사람에게는 이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희년법은 농촌지역의 주택의 경우, 성곽구역에 속한 주택의 경우, 레위인의 주택과 부속 토지의 경우를 구별해서 무르는 기한과 조건을 구별하고 있다. 레위인의 주택과 부속 토지는 하나님이 레위인의 것으로 영원히 성별한 것이기에 아예 건드릴 수 없는 것이지만, 만의 하나 타인에게 넘어간 경우에도 언제든 무를 수 있고, 희년이 되면 원주인에게 되돌아간다. 농촌지역의 주택은 그 주변의 땅에서 경작과 목축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기에 기한의 정함이 없이 형편에 따라 무를 수 있게 하였고,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희년에 그 주택을 무조건 되찾을 수 있게 규정하였다. 성곽 안에서 상업용으로 사용되는 집은 1년 기한을 정하여 그 안에 무를 수 있게 하였고, 그 이후에는 그 집을 차지한 사람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간주하였고, 희년의 원상회복 대상에서도 제외하였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상업용 집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방인들이었는데, 이방인들의 상업용 부동산 소유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희년법의 토지 및 주택 공(公) 개념의 현실성

희년법이 전제하는 토지 및 주택의 공(公) 개념은 고대 사회에서도 독보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히브리인들이 정착한 고대 가나안 지역에서 인정되었던 소유권 개념이나 고대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물권법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 부동산 점유 및 사용에 관한 사상이다.

고대 가나안의 소유법도 그렇지만, 고대 로마의 물권법은 소유자의 소유대상에 대한 이용(uti), 수익(fruti), 처분(abuti)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 핵심은 내 것은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물권법은 소유의 대상을 물건으로 한정하였고, 인간의 물건에 대한 일방적인 통제권만을 부각시키고 있을 뿐 소유물의 귀속관계를 둘러싸고 인간이 인간과 맺는 관계를 도외시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소유권 관념은 프랑스 혁명 이래로 현대 자유주의 국가들의 헌법에도 그대로 계수되었다. 이미 본 연재 제7회(소유권의 사회적 규율)에서 규명한 바와 같이, 소유자의 물건에 대한 권리만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고대 로마 물권 개념이 자유주의 국가의 헌법 규범에서 자유권의 하나로 자리를 잡으면서 재산권과 그 행사를 사회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재산권 행사가 사회적 문제와 생태학적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장본인으로 지적되면서 재산권 행사의 사회적 규율을 시도해 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현대 자유주의 국가의 재산권 규정은 여전히 소유자의 소유대상에 대한 권리 주장이 그로 인하여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동의를 전제한다는 관념을 매우 희박하게 구현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은 재산권을 사회적으로 규율하여야 한다는 관념을 헌법의 재산권 규정에 한 선언적 조항으로 기입하여 “재산은 책임을 진다.”는 문구 정도로 표현해 놓고 있다. 그러나 만일 이 문언이 재산권의 본질과 실체에 관한 헌법 규범의 재해석을 통하여 재산권 행사를 실질적으로 규율할 수 있게 된다면, 자유주의 사회는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재산권의 본질은 소유대상이 소유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을 뜻하지만, 재산권의 실체는 소유자의 소유대상에 대한 이용, 수익, 처분의 권한과 그 행사가 그로 인하여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인정과 동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23조에서 재산권 행사가 ‘공공복리에 적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재산권의 사회적 규율을 향한 길을 터놓았고, 제122조에서 토지 공(公) 개념을 도입하여 토지의 ‘이용·개발과 보전’을 법률에 의해 제한하고 그것에 따르는 의무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부동산 투기가 여전히 심각한 사회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 대한민국 헌법과 그 헌법에 바탕을 둔 부동산 법제와 그 운영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만일 성서의 희년법 정신에 따라 땅과 주택이 인간의 삶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교회는 국가가 사람들이 땅과 주택을 확보하여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교회는 사람들이 땅과 주택을 확보하는 것을 어렵게 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부동산 투기와 농간을 뿌리째 뽑고 땅과 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것을 선언하여야 한다. 교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희년법의 정신에 따라 실천의 모범을 보이도록 요구하고 그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희년법의 현실성은 오직 이러한 교회의 선포와 행위에 의해서만 확보될 것이다.

맺음말

성서의 희년법은 현대 사회와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고, 그것은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희년법은 사람이 자주적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반드시 확보하여야 할 것을 하나님의 것(‘아훗짜’)으로 따로 구별하여 소유와 독점의 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못 박고 있다. 따라서 희년법의 핵심 사상은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할 것을 공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희년법은 땅과 주택이 바로 그러한 ‘아훗짜’임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희년법의 정신에 충실한 교회는 땅과 주택을 소유와 독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하는 제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부동산 투기를 일삼아 무수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기회를 빼앗거나 그 기회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다는 것을 선포하고, 국가가 나서서 땅과 주택의 공 개념을 구현하는 부동산 법제를 마련하도록 촉구하여야 한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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