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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11.21 17:06
6 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7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 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9.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10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하였다. 11 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요한복음 2:6~11 /새번역)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표징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입니다. 루터가 맥주를 얼마나 즐겼는 지와는 상관없이 한국 개신교회 다수는 술을 금합니다. 그럼에도 첫 번째 기적은 아무튼, 술입니다. “아무튼, 술”은 또한 김혼비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하죠. 마을독서모임 때문에 읽은 책입니다. 별 관심도, 호기심도 없이 읽어야 해서 읽었는데, 취한 듯 달뜬 여운이 깁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것을 전해주는 시리즈 “아무튼, …”, 김혼비 작가에게는 술이 생각만 해도 즐거운 그 무엇입니다. 재미지게 펼쳐지는 술에 대한 추억들이 시트콤처럼 흥겹습니다. 고3 백일주에서 시작된 작가의 술 이야기는 술과 함께 익어간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술을 통해 삶의 깊이와 너비를 맛보고, 소중한 사랑과 친구를 알아가고, 자신의 속내와 삶의 지혜를 발견한 이야기입니다. 랩처럼 라임이 있어 경쾌함을 더하는 작가 특유의 글을 읽다가 혼자 웃기도 하고 잠시 긴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 Sean Parnell, 「A Bottle of Red」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생각만 해도 좋은 게 있다면, 무엇이냐?’ 자신에게 물었고 편한 지인들에게도 물었습니다. 작가에게는 그것이 술이었습니다. 막막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쩔 줄 모를 때도, “아무튼, 술”이라는 명료한 답을 다행스러워 하며 살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즐비한 삶 속에서 그나마 말도 안 되게 좋아하는 술이 위로와 힘과 길이 되었습니다.

어느 성직자에게 물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좋은 것이 무엇이냐고. 잠시 후 “하나님”이라는 답이 돌아왔고, 함께 들은 이들이 우와~ 탄성으로 화답했습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해야할 정답에 탄성이 터진 그 묘함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어진 대화에서 그 분도 뭔가 허전하다고 털어놓습니다. 그것 생각만 하고 그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무엇인가가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찾기 힘들다고.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에게 그 대답이 하나님일까요? 생각만 해도 즐거운 대상은 정말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주신 그 무엇입니까?

예수님과의 만남이 물조차 어떤 포도주보다 향기롭게 했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기적으로 만든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문제입니다. 깊은 침묵 가운데 주님과 머물다가 뜻밖에 새로운 시선이 열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는데, 사랑으로 주님을 바라봤을 뿐인데, 마음이 달라집니다. 불편한 사람도, 불안한 사건도 주님께 취하니 다르게 보입니다. 뜻밖에도 사랑으로 평온히 만나게 됩니다. 그러자 더 취하고 싶은 은밀한 욕망이 꿈틀대고 주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변합니다. 그 집착으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 순간부터 뜻밖에 주어진 평온과 사랑의 선물은 자취를 감춥니다. 주님보다는 그 놀라운 무엇을 더 바란 탓이 아닌지.

술에 취하면 술이 보여주는 대로 보고 들려준 대로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많이 취하면 술 취하지 않았다고 고집합니다. 주님께 취해도 그렇지 않을지. 주님 보여주시는 대로 보고 들려주신 대로 말하겠죠. 그러면서도 취한지도 모르겠죠. 그저 주님이 좋아서, 주님께 취하고 싶습니다. 주님이 말도 못하게 좋아서, 곁에 있는 누구든 말도 못하게 좋아하고 싶습니다. 시나브로 취하고 싶습니다. 취한 줄도 모를 만큼 취하고 싶습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말도 안 되게 좋아하는 하나님께 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뭘 바라서가 아니라 뜻하지 않게 자신도 모르게, 그저 생각만 해도 주님이 좋아서.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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