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칼럼
앗, 경계다!명상자전거 (7)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 승인 2019.11.22 17:36

한양은 네 개의 산으로 둘러 쌓여있다. 이 네 개의 산을 연결한 것이 한양도성이다. 약 19km 정도 된다. 이 길을 여러 번 돌았다. 수차례 순례했다. 교인들과도 했고 가족과도 했고 이 길이 좋아 홀로 하기도 했다.

이 길을 돌다 보면 한양이 네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도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양의 동서남북에는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이 있다. 네 산이 경계이다.

게다가 도성 남쪽에는 강이 흐른다. 

경계는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도인이 경계를 피하여
조용한 곳에만 마음을 길들이려 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물을 피함과 같나니
무슨 효과를 얻으리오.
그러므로 참다운 도를 닦으려면 
오직 천만 경계 가운데에 마음을 길들여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큰 힘을 얻으리라.
- 소태산 대종사(1)

원불교는 심지(心地)(2)는 “원래 요란함이 없지만 경계(boundary)를 따라 생긴다.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지만 경계를 따라 생긴다. 심지는 원래 그름(wrong)이 없지만 경계를 따라 생긴다.”고 가르친다.

심지란 문자 그대로 마음 땅이다. 경계란 내 마음이 만나는 모든 일, 사실, 사건이다. 마음이 일으키는 분노, 탐욕, 미움은 본래 없는 것이지만 경계 따라 일어났다 사라진다.

원불교에는 대종사의 가르침대로 짜증,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이 생기는 것은 마음의 경계 때문이라고 본다. 경계란 생활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그때 짜증 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경계를 발견하고 자기의 마음을 바라본다.

“앗, 경계다!”

상대방이 게으르고, 위선적이고, 냉정하고, 욕심이 많고, 인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경계 때문이다. 대종사 가르침에 의하면 마음에는 원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다.

“앗, 경계다!”는 자기 마음을 바라보았을 때 내가 내는 죽비소리 같은 것이다.

목포에 살 때 목포대학교를 자주 갔다. 목포대학교 동아리 간사를 했다. 그때는 매주 목포와 목포대학교 사이의 고개를 넘었다. 목포에 살 때 서울이나 광주를 가면서도 목포대학교 앞을 많이 지나다녔다.

목포대학교는 목포에 있지 않고 (목포 북쪽, 행정구역상) 무안에 있다. 목포와 목포대학교 사이에 고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그때는 자가용이 있었기 때문에 차로 다녔다. 그 고개가 각인된 것은 서울-목포 자전거 여행 때였다.

고개가 가팔랐다. 청계고개.

남도 자전거 여행을 한 번 더 했으므로 이 고개를 두 번 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계선이 있는 부분은 대부분 강을 건너거나 산을 넘게 되어있다. 차를 타고 다닌다면 알 수 없다. 눈치채기 힘들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서 산을 ‘넘는’ 일은 드물다. 흔치 않다.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지리 경계에는 산과 강이 있다.

경기도와 강원도 사이에는 화악산이 있다.
강원도와 경상도 사이에는 태백산이 있다.
충청도와 경상도 사이에는 속리산 월악산 소백산 이화령이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 사이에는 금강이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는 섬진강이 있다. 화개장터가 여기 있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면 전에 안 보던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언덕이다. 물이다. 강산이다.

서울에서 강릉을 자전거로 가면서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횡성의 경계 도덕고개를 넘었고 우천면 둔내면 사이 황재를 넘고 해발 980m 태기산을 넘었다. 횡성과 강릉 사이 830m의 대관령을 넘었다.

자전거 여행을 하며 넘고 건넜다.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노래가 있다. 아름다운 강산이라고? 보기에는 그럴지 몰라도 자전거를 타고 넘는 내게는 다 힘든 곳이었다.

그러나 내 몸은 이제 경계를 기억한다. 경계를 안다. 강 위의 다리에 ‘여기서부터는 ◯◯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있다면 그곳은 재(hill)나 영(嶺)이다.

자전거를 타며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았다. 경계를 보았다.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체득했다. 평생 자동차만 타고 살았으면 몸으로 겪지 못했겠지.

생각은 멈추라.
속도는 줄이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경계를 보리니,

생각을 멈추면 마음 경계를 볼 것이요,
속도를 줄이면 산천 경계를 볼 것이다.

속도를 줄여 인생을 즐겨라. 빠르게 감으로써 당신이 놓치는 것은 풍경만이 아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에 대한 통찰도 놓친다.
Slow down and enjoy life.
It's not only the scenery you miss by going to fast
- you also miss the sense of where you are going and why.
- 미국의 배우 겸 가수, 코미디언 에디 캔터

미주

(미주 1) 박중빈. 원불교 창시자.
(미주 2) 마음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바탕.

전성표 목사(이웃사랑교회)  s1564@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