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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은 죄악이다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29)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11.25 16:14

희년법의 정신에 투철한 교회는 사람의 몸이 지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땅과 주택이 소유와 독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몸과 땅과 주택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작은 사람들을 편드는 하나님의 정의에 입각하여 작은 사람들이 자주적인 삶을 펼치는 데 꼭 필요한 땅과 주택이 그들에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것이 정의의 원칙을 강조하는 기독교 경제윤리에 근거하여 교회가 세상을 향해 선포하는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살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은 자본에 포섭되어 자유를 잃었고, 땅과 주택은 소유와 독점의 대상이 되어 작은 사람들에게 배분되지 않는다. 땅과 주택을 갖지 못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으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임대료로 지출한다. 땅과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 재화들의 가격이 올라 엄청난 차익을 차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은 사람들로부터 임대료를 수취하여 더 많은 부를 축적한다. 땅과 주택의 소유와 독점에 근거하여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부의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연재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소유의 양극화를 살피고, 부동산 매매차익과 ‘순임대소득’을 합한 부동산 불로소득의 규모를 분석하고, 부동산 불로소득의 정당성을 옹호할 수 있는 논거들이 없다는 것을 밝힌다. 이러한 분석과 평가에 바탕을 두고서 다음 연재에서는 희년법의 정신에 따라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가를 다룬다.

끝없이 부는 부동산 투기 바람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투기의 대상이 된지 오래이다. 부동산 투기는 부동산을 통하여 벌어들이는 수익이 노동소득이나 기업의 투자수익이나 이자소득이나 금융 투자 수익 등등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투기 수익을 얻기 위해 돈이 몰리게 되고, 기업들조차 부동산 투기에 나서서 기업의 저축을 탕진하여 투자 기회를 상실하기까지 한다. 강남의 이른바 노른자위 땅을 투기적으로 매입한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기술개발과 시장기회 확대에 차질을 보이고 있는 것아 그 좋은 예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기는 박정희 정권의 국토 개발과 택지 개발로 인해 촉진되었다. 관료들을 매수하여 개발 정보를 미리 빼낸 사람들은 개발 지역의 땅을 사재기 방식으로 대규모로 매입하여 천문학적인 차익을 남겼다. 이에 관련된 무수한 사례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오늘의 강남 지역에서 70년대 초부터 불었던 ‘투기 열풍’이라는 고전적인 어구를 떠올리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 부동산 소유를 통해 불로소득을 당연시 하는 사회현상에 대해 교회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죄라고 외쳐야 한다. ⓒYTN

부동산 투기는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소유를 양극화시켰고, 땅과 주택의 소유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를 지극히 불평등한 사회로 퇴행시켰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 토지개혁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여 식민지 지주제를 해체하고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땅과 토지를 분배하여 가장 모범적인 평등한 토지소유권 사회를 실현했던 우리나라는 불과 한 세대가 지나가는 사이에 부동산 투기로 인하여 극도로 불평등한 부동산 양극화 사회로 바뀌었다. 부동산 투기는 길이 뚫린다든지, 공단이 들어선다든지, 지하철이 개설된다든지, 그밖에 다양한 양상의 ‘개발 호재’가 나타나는 지역에 어김없이 불어 닥쳤다. 강남 지역처럼 투기 수익이 오랜 기간에 걸쳐 어김없이 실현되어 ‘부동산 불패신화’를 구축한 지역에서는 천문학적 수익을 얻기 위한 부동산 자금이 끝없이 몰려들었다. 지난 20년 동안 강남지역 부동산 가격이 8배가량 폭등하였으니 자금을 끌어들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황금알을 낳는 투기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었겠는가?

부동산 소유의 양극화

최근의 부동산 소유 현황에 대한 신빙성 있는 자료들 가운데 하나는 2016년 8월 31일 김영주 의원실 자료이다. 이에 따르면, 개인의 토지소유는 극심한 불평등을 보이고 있다. 2015년 현재 면적기준으로 인구의 1%가 개인토지의 55.2%를 차지하고 있고, 인구의 10%가 97.6%를 소유하고 있다. 평가금액 기준으로 따지면, 2014년 현재 부동산소유자 상위 10%의 부동산 소유 금액은 하위 10%의 그것에 비해 127배나 많다. 반면에 토지를 전혀 소유하지 못한 세대는 2012년 현재 40.1%에 이른다.

법인의 토지소유는 개인의 경우보다 더 극심하다. 2014년 현재 상위 10대 기업이 면적 기준으로 전체 법인 소유 토지의 35.3%를 차지하고 있고, 평가금액 기준으로 살피면 상위 1%의 법인이 전체 법인 소유 부동산의 76.2%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토지 소유 편중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주택 소유 상황도 매우 심각하다. 김영주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현재 무주택가구의 비율이 44%에 이른다. 2014년 현재 주택보급률이 전국적으로 103%, 서울의 경우 97%였음을 감안하면, 다주택자들의 주택소유가 엄청난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이 2019년 9월 24일에 발표한 “다주택자 상위 1% 주택소유 현황 발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주택 수효는 490만 채 증가했는데, 그 가운데 다주택자들이 사재기 방식으로 매입한 주택은 250만 채였으며, 그 비율은 무려 51%에 달했다. 다주택자의 소유 주택은 2008년 현재 452만 채에서 2018년 현재 700만 채로 248만 채 증가했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위 1%의 다주택자의 주택 소유는 2008년 현재 3.5채에서 2018년 현재 7채로 두 배가 늘었고, 상위 10%의 주택 보유는 2.3채에서 3.5채로 1.5배가량 증가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집값은 평가금액 기준으로 2008년 현재 2,929조 원에서 2018년 현재 6,022조 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주택을 한 채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1인당 주택가격은 2008년 현재 평균 2억8천만 원에서 2018년 현재 평균 4억6천만 원으로 1억8천만 원 증가했다. 반면에 주택 소유 상위 1%의 집값은 같은 기간에 1인당 24억5천만 원에서 1인당 35억7천만 원으로 11억2천만 원 올랐고, 상위 10%의 경우에는 1인당 10억2천만 원에서 1인당 15억 원으로 4억8천만 원 올랐다. 주택소유자들 사이에서도 집값 편중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규모

우리나라 경제학계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의 규모를 추산하려는 노력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1980년대에 겪은 극심한 부동산 투기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에 대한 최초의 연구를 수행한 이정우 씨(당시 경북대 교수)는 1980년에서 1989년까지 10년 동안 토지 매매차익이 연평균 GNP의 23.6%에 달한다고 추산했고, 토지투기가 극성을 부렸던 1989년에는 GNP의 37.7%에 달했다고 추정했다. 만일 토지 임대소득에서 그 매입가격의 이자를 공제한 ‘순임대소득’까지 산입한다면,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의 규모는 같은 기간 연평균 GNP의 30%를 거뜬히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정우 씨와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서 남기업 씨 등은 『지방세정연감』의 취득세 자료와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자료를 분석하여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부동산 매매차익에 ‘순임대소득’을 더한 부동산 불로소득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추산했다. 남기업 씨 등의 분석이 의미가 있는 것은 국세청이 2007년부터 부동산 취득세 산정 기준을 실거래가로 정했기 때문에 부동산 매매차익을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GNP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26.8%, 2009년 24.0%, 2009년 27.8%, 2010년 26.3%, 2011년 24.4%, 2012년 23.1%, 2013년 22.9%, 2014년 21.7%, 2015년 22.1%에 달했다.(1)

부동산 불로소득의 문제점

부동산 소유가 극단적으로 편중됨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미 언급한 부의 불균형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소득의 분배도 극심하게 왜곡된다.

국민경제학은 전통적으로 국민소득이 이자, 지대, 임금으로 배분된다고 주장해 왔다. 소수의 손에 집중된 토지자산이 증가하면, 그들에게 귀속되는 지대의 규모도 방만하게 증가할 것이고, 이로 인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경제는 심각한 왜곡과 불균형 상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적으로 자본소득은 대부분 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 자원으로 저축되고, 노동소득은 가계 지출을 통하여 재화와 서비스의 구입비용으로 충당된다고 생각되었고, 자본소득에서 비롯되는 투자와 노동소득에서 비롯되는 소비가 국민경제 차원에서 거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져 왔다.

지대소득은 자본소득이나 노동소득과는 다른 성격을 가졌다. 토지를 소유했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해 발생하는 지대소득은 대표적인 불로소득이고, 자본소득의 일부와 노동소득의 일부를 빼앗음으로써 성립되는 소득이다. 지대소득은 생산 자본으로 둔갑하여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며, 사치품이나 과시적 소비가 아닌 한, 소비 부문으로 흘러들어가 소비를 활성화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지대소득이 투자와 소비의 거시 균형을 위해 이바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민경제학의 지대소득은 이 글에서 사용하는 ‘순임대소득’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는 부동산 불로소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매매차익과 순임대소득을 합친 부동산 불로소득은 그 본질상 더 큰 지대소득과 매매차익이 발생하는 영역으로 흘러들어가는 속성을 가진다. 그리하여 부동산 불로소득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 지가와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고 임대료를 인상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토지를 전혀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세대가 전체의 40.1%에 달하고, 무주택가구의 비율이 44%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 소유자들과 무소유자들 사이의 소득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사람들의 소득은 임대료 등의 형태로 부동산 소유자들에게로 일방적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부동산 소유로 인한 빈부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진다.

오늘날과 같이 생산과 소비를 초월하여 자립화된 화폐 시장이 발달하고, 화폐자본의 조달비용인 이자가 쌀 경우에는 금융권으로부터 화폐자본을 끌어내어 부동산 투기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쉽게 과열된다. 과열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어 집값이 상승하는 시기에 천문학적인 부채를 끌어들여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게 되고, ‘하우스 푸어’로 살아간다. 반면에 전세를 끼고 주택을 사재기하는 사람들은 과열된 부동산 시장에서 재테크 기술을 발휘하여 매매차익을 거뜬히 실현한다. 그리하여 ‘하우스 푸어’와 ‘레버리지 투기꾼’ 사이의 소득 격차는 다시 엄청나게 커진다.

부동산 소유에서 발생하는 소득은 정당한가?

필자는 앞에서 부동산 소유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불로소득’이라고 성격화해서 부동산 소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지만, 국민경제학은 지대소득의 발생과 그 정당성을 나름대로 논하고 있다. 국민경제학의 역사에서 지대론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이론가는 데이비드 라카아도(David Ricardo, 1772-1823)였다. 그의 지대론은 차액지대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토지 비옥도나 토지 접근성 혹은 토지 활용도에서 가장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는 토지 A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0이라고 간주하면, 그것은 토지 A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위해 토지가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토지에서 발생한 소득은 순전히 노동이나 자본이 기여해서 얻은 소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토지 비옥도나 토지 접근성 혹은 토지 활용도가 더 나은 토지 B에 같은 양의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여 얻은 소득이 토지 B에서 얻은 소득보다 많다면, 그 소득의 차액은 토지 B의 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경우, 토지 B의 소유자는 소득의 차액을 지대로 수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액지대론은 과연 타당한가? 몇 가지 경우를 놓고 그 타당성을 따져 보자. 첫째, 어떤 토지가 경작할 수 없을 만큼 황폐하다면, 그 토지는 농경지로서는 사용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농경지로서는 어떤 지대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차액지대론의 타당성을 따질 때, 이 경우는 논외로 쳐도 좋을 것이다.

둘째, 상대적으로 비옥한 토지를 활용할 경우에는 자연의 선물인 토지의 비옥도가 유지되는 기간 동안에, 토지소유자는, 비록 그가 실제로 공헌한 일이 없다손 치더라도, 자연의 혜택을 빌미로 삼아 더 많은 지대를 수취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나 토지 활용이 계속되어 비옥도가 떨어진다면, 그는 당연히 더 이상 차액지대를 요구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어떤 토지에 광물이 묻혀 있다는 것이 발견되어 채굴이 시작되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는 토지의 비옥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토지의 소유자가 지대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 토지에서 발생하는 소득은 광물을 시장에 내다판 금액에서 광물의 탐사와 채굴과 운반을 위해 투입된 자본과 노동의 비용을 공제한 것인데, 그 소득에 대해 토지 소유자는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넷째, 짠 물이 나와 농경지로 쓸 수 없거나 사람이 다니는 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 쓸모가 없는 토지가 갑자기 그 앞에 길이 나고 도시구역이 확정되어 땅값이 뛰었고, 큰돈을 지불해서라도 그 땅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고 한다면, 그 땅의 소유자는 그 땅으로 인하여 얻는 소득이나 지대에 대해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 땅의 가격을 상승시킨 요인은 공적인 손에 의해 집행된 도로개설비나 도시개발비였을 뿐, 그 땅의 소유자가 기여한 것은 없지 않은가?

여기서는 알기 쉽게 네 가지 경우만 언급하는 데 그치지만, 지대를 받아내기 위해 토지 소유자가 그 어떤 주장을 내세우든, 그 주장은 대부분 궁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토지 소유자가 자본이나 노동력을 투입하여 뭔가 한 일이 있다면 그 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겠지만, 위의 네 경우에는 토지소유자가 지대소득을 주장하기 위하여 한 일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둘째 경우에는 차액지대를 정당화할 수 있는 빌미가 있기에 한 두 마디 토를 달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토지를 계속 활용하여 토지의 비옥도가 떨어진다면, 결국 자본이나 노동력을 투입하여 토지의 비옥도를 유지하거나 차액지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농업이 발달하여 거의 모든 농경지의 비옥도가 경향적으로 떨어지게 되어 차액지대가 성립될 수 없다는 뜻이다.

엄격하게 따져 보면, 리카아도의 차액지대론은 지대를 정당화하는 이론이 아니라 지대 요구의 타당성을 부인하기 위해 고안된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초에 지대 수취자와 자본소득자 사이에서 소득 분배를 둘러싸고 격렬한 투쟁이 벌어졌을 때, 리카아도는 아일랜드에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학자로서 학문적 성실성을 발휘하여 지대소득의 부당성을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다.

마르크스는 리카아도의 주장을 조금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 상품의 가치 구성에서 지대가 차지할 여지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 토지는 상품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이바지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동가치론에 입각하면, 상품의 가치를 형성하는 것은 오직 상품 생산을 위한 노동력의 지출, 곧 상품에 응결한 노동의 양이므로 토지는 말할 것도 없고 자본까지도 상품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이바지한 것은 없다. 다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현실에서 나타나는 지대 현상을 서술하기 위하여 시장가치(Marktwert)라는 개념을 활용했다. 그는 상품에 내재된 본래적 가치와 시장 조건에 의해 변동되는 상품의 시장가치 사이의 편차에 주목하여 토지독점, 시장독점, 기술독점 등에서 비롯되는 지대소득을 상대적 지대 개념과 절대적 지대 개념으로 표기하였던 것이다.

맺음말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토지와 주택의 소유를 둘러싼 사회적 양극화는 매우 심각하고, 부동산의 소유에서 비롯되는 불로소득의 병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토지 불로소득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리카아도가 말한 차액지대론을 갖고 지대를 정당화하기 어려운 바로 그 만큼 부동산 소유자가 부동산 매매차익을 차지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논거도 궁색하다. 어떤 주택의 가격이 사회경제적 인프라나 문화적 인프라가 발달하여 뛰어올랐다고 했을 때, 주택 소유자가 그 지역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 그가 주택 가격 상승에 기여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병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토지와 땅을 위시하여 부동산 소유로 인해 엄청난 매매차익이 실현되도록 방치하는 부동산 보유제도를 개혁하여야 하고, 이미 발생한 토지 매매차익과 지대 수취를 통하여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정의를 추구하고 희년법의 정신에 충실한 교회는 부동산 불로소득이 정당하지 않기에 그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선포하여야 한다.

필자는 다음 연재에서 부동산 보유제도의 개혁과 지대 수취로 인한 불로소득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한다.

미주

(미주 1) 남기업 외, “부동산과불평등 그리고 국토보유세,” 『사회경제평론』 54 (2017), 124.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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