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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라는 말로 덮을 수 없는 것(호세아 10:1-15)천천히 걷자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 승인 2019.11.26 17:10

‘너희 자신을 위하여 묵은 땅을 갈아엎고, 그 땅에 정의의 씨를 뿌려서 사랑의 열매를 맺으라’(12절)고 기록된 말씀이 가슴을 울립니다.

이 “묵은 땅”은 희년을 지키느라 일부러 쉬게 한 땅이 아니라, 심판을 받아 멸망한 땅이거나 죄 때문에 방치되어 묵은 땅입니다. 이 땅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지켜냈어야 하는 땅이지만, 탐욕과 우상숭배에 빠져 그렇게 하지 못한 관계로 하나님께서 직접 고삐를 쥐고 갈아엎게 하십니다(11절).

희망이란 마인드 컨트롤만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1%든 0.1%든 근거가 있어야 희망이 공상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야 희망이 망상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희망이 구체적인 비전이 되려면 반드시 그 바람이 현실(열매)이 되게 하는 ‘믿음에 근거한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갈아엎고 씨뿌리는” 수고와 인내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 ‘너희 자신을 위하여 묵은 땅을 갈아엎고, 그 땅에 정의의 씨를 뿌려서 사랑의 열매를 맺으라’(12절) ⓒGetty Image

우상숭배는 공상에 근거한 헛수고이자 이스라엘의 묵은 땅을 만들어낸 근원입니다.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 탐욕 때문에 수치를 당하고(6절) 모든 것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시대에(7절) 이스라엘은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산들아 우리를 덮어서 숨겨다오”라고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8절). 희망이 사라져버리니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호세아 예언자는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라고 선언합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때, 모든 헛된 희망이 사라져버린 바로 그때가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실 때”라는 것입니다(사55:6).

물론, 징벌은 피해갈 수 없습니다. 가끔 ‘사과했는데 왜 용서해주지 않나?’ 하고 뻔뻔하게 구는 사람들도 있고, ‘믿는 사람이 용서할 줄 모르고, 왜 그렇게 독하냐?’하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가 아니라 회개의 종교입니다.

세례요한이 죄사함의 세례를 받으러 나오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욕하면서 먼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 것처럼(눅3:7-8), 우리도 그런 뻔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용서를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고 용서할 권리도 있지만, 최종적인 구원은 우리의 용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믿음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는 용서가 아니라 회개입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묵은 밭을 갈아엎는 사람에게 진정한 의미의 소망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믿음, 행동하게 하는 믿음을 위해 기도합시다.

여상범 목사(제주신흥교회)  uptig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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