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학술 칼럼
聖·性·誠의 여성신학 관점에서 본 박순경 통일신학과 세계(진실) II한국 여성신학자 박순경 통일신학의 세계문명사적 함의와 聖·性·誠의 여성신학 (마지막회)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 승인 2019.11.26 17:15

聖·性·誠 여성신학의 다원론적 부활 이해와 민족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세계평화

이제 박순경 통일신학 연재의 마지막 회에 도달했다. 지난번 5회째에 이어서 박순경 통일신학을 본인의 聖·性·誠 여성신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일이다. 나는 남한 교회와 사회의 변화와 남북의 진정성 있는 대화를 위해서 우리 신학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요청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남쪽 교회의 반생명적인 보수성과 자신들의 신앙만을 절대화하고 전체주의화하는 것을 내려놓는 일과 가장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박순경 통일신학은 7-80년대 한국의 민중신학이나 토착화신학과 논쟁하면서 이들이 2000년 전의 예수운동과 20세기의 민중운동을 ‘비역사적’으로 동일화하거나 예수 케리그마 자체에까지 비신화화를 적용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기준’과 ‘척도’(理, 박순경에게는 예수 부활 케리그마)를 손상시킨다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박순경 신학이 그러한 비판을 통해서 확보하려고 한 예수 그리스도 부활과 케리그마에 대한 강조가 다시 그녀에게서 극단적으로 추상화되고 절대화되었기 때문에 오늘 남쪽 교회와 사회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북과의 대화가 계속 어려운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관건은 바로 그 절대화되고 비역사화된 예수 그리스도성의 독점을 깨는 일인데, 이것을 나는 또 하나의 ‘다른’ 한국 신학의 추구라고 보면서 그것을 한민족의 다른 종교 전통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수행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본인도 ‘부활’과 ‘우리 몸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다’라는 의식을 박순경 신학이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에서 지적한 대로 단지 정치사회적 의미로만 환원해 버리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순경 신학이 강조해온 대로 그 묵시적 종말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몸의 부활’ 사건의 진실과 실제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계속 천착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본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몸의 부활, 기독교가 지금까지 그렇게 강조해온 대로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부활의 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종교 전통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오늘 우리가 또 다른 ‘부활 실제’(resurrection reality)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실들을 전하고 있다고 보는데, 예를 들어 삶과 죽음을 ‘리기’(理氣)의 집산으로 보는 유교가 말하는 ‘제사감격’(祭祀感激)의 이야기라든가, 『티벳 사자의 서』 라는 놀라운 죽음에 대한 성찰서를 낸 티벳불교의 ‘칠채화신’(七彩化身) 이야기 등을 들 수 있겠다.(미주 1)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이제 우리가 부활을 단지 신화적이고 실존론적으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고, 또한 그래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 실제를 유일하게 기독교 전통에서만의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혀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가 최근 세월호의 참사를 겪으면서는 그 부활의 실제가 참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더욱 더 ‘평범하게’ 확산되어 가는 것을 본다. 생각할 수도 없는 비참한 죽임 속에서 몸의 끝을 경험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고 ‘하늘의 별’이 되어서 여러 모양으로 계속해서 현현하는 아이들, 이들과 더불어 비록 그 사건에서 남은 자들이 되어서 기성교회는 떠났지만, 아니면 쫓겨났지만, 이제 한국사회의 어느 누구보다도 강력하고 진정성 있는 정의와 진실, 인간성의 사도가 되어서 한국 교회와 사회의 위선과 거짓을 흔들고 있는 세월호 어머니들, 아주 더디기는 하지만 그들 덕분에 점차로 함께 변해가는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종교 등, 나는 여기서 “부활의 평범성의 확대”와 ‘부활의 보편성’을 뚜렷이 보는 것이다.(미주 2)

▲ 현 강남대학교 설립자인 이호빈 목사(가운데 한복 차림)와 함석헌 선생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리고 제일 오른쪽이 박순경 명예교수님 ⓒhttp://kacm96.blogspot.com/2012/02/blog-post_8869.html

이러한 모든 성찰과 더불어 이제 본인의 聖·性·誠의 여성신학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좁은 의미로는 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거기서의 유교가 주로 지금까지 동아시아에서의 불교와 도교 전통도 함께 포괄하는 ‘신유교’(新儒敎, Neo-Confucianism) 전통을 말하는 것이므로 매우 포괄적인 의미에서 동서의 종교 전통들이 넓게 함께 포괄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아주 간단히 소개해 보면 지금까지 전통의 기독교 신학에서 핵심 언어였던 ‘신·신·신’(神·身·信)’의 언어를 신유교 한국 고유의 전통적 언어인 ‘성·성·성’(聖·性·誠)으로 치환 내지는 상호 교환해서 사고하려는 것이다.(미주 3) 그러면서 먼저 하나님 이해의 신론에서 박순경 통일신학의 기독교적 삼위일체의 하나님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이며, 간(間)세상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聖’(太極/無極)으로 표현하면서 박순경 통일신학에서의 유대 기독교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를 말한다. 聖·性·誠 여성신학 신론(聖)의 ‘통합성’을 말하는 것이다.(미주 4)

다음으로 신유교 전통의 ‘性’이라는 단어가 유교 전통에서 초월(天/理/心)과 내재인 인간영역(地/氣/身)을 매우 불이적(不二的)으로 통합하고 서로 연결하는 의미가 되는 것을 보고서 박순경 통일신학이 마르크스주의나 민중신학과 대화하면서도 그 안에 담지된 세속화와 물질주의화의 위험을 계속 지적하는데, 이 性의 개념은 박순경의 그러한 우려를 넘어서 보다 적실하게 영과 물질, 정신과 몸 사이의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새로운 그리스도론과 인간론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일이다. 性의 ‘타자성’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誠’은 이미 한국 토착화 신학자인 윤성범의 ‘誠의 신학’이 시작했고, 원초적으로는 유교 『중용』에서 참된 진실성과 성실성, 지속성을 가리키는 ‘하늘의 도’(天之道)를 誠으로 지목하면서 그 길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도’(人之道)라고 밝힌 중용적 이상에서 착상한 것이다. 즉 진정한 ‘성령’의 사람과 부활의 영의 사람은 그러한 진실성과 성실성으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화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하늘의 도를 지켜가는 것을 말하는 의미에서의 성령론인 것이다.

여기서 본인은 그러한 ‘誠’의 성령론은 전통의 여느 성령론보다도 더 급진적으로 ‘부활의 평범성’이 확장되고, 영의 세계성을 밝힐 수 있다고 본다. 본인은 그것을 한편으로 만물을 낳고, 살리고, 기르는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의 영성으로 표현해 오기도 하고, ‘지속성’의 여성영성으로 밝히면서 한국여성조직신학을 구성하려고 한 것들인데, 이번에는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 남북의 화해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동북아의 평화와 세계문명사적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는 한반도 통일여성신학의 영역에서 적용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인의 시도를 촉발시켜 주신 박순경 통일신학은 한국 기독교가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에 편승하고, 미국의 팽창주의와 반공주의와 짝하면서 어떻게 민족 분단과 비주체, 종속의 현실에서 역할을 해왔는지를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지적해 주고 있다. 특히 남한 교회가 자본주의와 맘몬의 노예가 되어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양산하고 숭미와 친일의 반민족적 행보를 보이면서 자신들만의 천국과 안락함에 빠져 하나님의 참된 복음과 영성을 왜곡하고 있는 지를 온 힘을 다해 밝혀주고 있다. 오늘 우리 기독인의 역할은, 특히 한국여성신학은 그 진지한 고통에 찬 외침과 예언을 깊이 숙지하면서 이 현실을 타개하는데 힘을 모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박순경 통일신학이 우리의 여성신학으로 자리하는 한 그 외침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의병운동으로서의 통일운동

그러한 생각과 더불어 보낸 지난한 시간이었다. 선생님의 글과 책을 접하면서 그 치밀함과 넓이와 깊이에 크게 놀랐고,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한 논문에 담아내면서 그로부터 나의 입장을 드러낼 수 있을지 결코 오를 수 없는 높은 성벽 앞에 가로막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지나갔고, 지금까지 앞에서 살핀 대로 엮어보면서도 계속해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이 모든 말과 글과 책을 통해서 선생님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를 묻고 또 물었다.

그것이란, 한민족이 식민지를 겪고 전쟁을 겪으면서 분단되어 이렇게 긴 시간을 서로 싸우며 여전히 고통 속에서 아파하고 있는데도 그 원인을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거기서 핵심적으로 부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 자본주의와 군사주의를 오히려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혜로 생각하면서 민족끼리는 서로 반목하고 싸우면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한국 반공기독교와 보수교회는 거기에 편승해서 오히려 반목과 갈등을 더하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 정황을 속히 알아차려서 이 부정의 경험을 오히려 한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넘어서 세계 인류 문명의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실제로 일구어내자는 것, 거기서 가장 약자 중의 약자이며 민중 중의 민중인 여성 민중들이 힘을 모아서 민족과 민중, 性의 세계 문제를 함께 새로운 영의 시각으로 다듬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는데 주체가 되자는 것,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탐색과 성찰의 과정에서 나는 박순경 선생님의 신학이 예전 조선 유교 사회에서 유학자들이 중국의 명나라(1368-1644)가 망하자 조선이 그 도통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했던 ‘소중화’(小中華) 의식을 가졌던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조선 유학자들은 자신들이 천하 도의 핵심을 이어받아서 이제 그 정신적 적장자로서 후세에 그것을 전해주고 이어나갈 명을 받았다고 여겼고, 그 가운데 시대의 말기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서구 근대의 물결이 밀려오자 자신들의 道와 理를 지키기 위해서 ‘위정척사’(衛正斥邪, 바른 것을 지켜내고 사악한 것을 물리침)의 결의와 투지로 밀려오는 변화의 바람을 막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도 잘 알다시피 그들은 거기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조선은 이웃나라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이후 나라는 분단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것이 다가 아니고, 끝이 아니었으며, 바로 그 위정척사의 투지와 결사가 이후 세차게 이어진 구한말 ‘의병활동’의 정신적 지주였고, 그 의병 정신에서 잘 드러난 ‘公’과 ‘義’의 정신이 3.1운동의 정신적 지주로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고 말하고자 한다.(미주 5) 3.1정신은 박순경 통일신학이 강조하듯이 기독교 신앙이 거기에 더해져서 이후 오늘까지 굽이굽이 한민족 해방운동과 민중민주 항쟁에서 디딤돌의 역할을 했고, 남북이 공동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에서도 초석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박순경 통일신학에게 기대되는 역할과 역량은 이상으로 본 논문이 지적한 한계와 제한점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며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본인은 세월호 4주기를 맞이하며 쓴 한 글에서 부활 실제의 진정한 현현은 “목숨을 건 추락”을 가능하게 한다고 썼다. 요한복음 21장 13-18절의 말씀을 따라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연거푸 물으시며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고, 네가 이제 어디로 가게 될는지,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 더 이상 네 소관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진정한 부활은 오히려 자기 주체의 포기, 자기 입장의 내려놓음이고, 자신이 진리라고 여겨오던 주관적 진실을 내려놓고 그 이후에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더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진리의 실제를 받아들이는 용기라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천동설을 내려놓고 겸허히 지동설의 ‘사실’과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서의 주관이 결코 삶의 주인공이 아닌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욱 더 확장된 넓이와 깊이에서 새로운 진실과 실제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미주 6) 박순경 선생님의 통일신학이 한국 교회와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러한 전회와 전복을 요구하는 도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나는 거기서 더 나아가서 오늘 우리 태양계의 지구에서 예전 동서의 구분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과 물질, 시간과 공간의 전래된 한계와 경계도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인간과 포스트휴먼의 경계를 넘어서 함께 블랙홀의 실제를 스스로의 감각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된 때에서는 그러한 지동설의 기독교 중심주의와 부활의 독점도 내려놓는 것이 자연스럽고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더욱 열려진 의식과 부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함께 추구하는 통일운동이야말로 앞으로의 21세기에 이 한반도와 세계를 위한 참된 열매를 가져오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지만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은 민족의 해방과 독립의 길을 민족의 성지 황해도 구월산의 ‘지원폭포골’에서 얻어진 ‘지원’(志遠)정신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임중도원’(任重道遠,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이라는 말씀도 생각났고, 후세의 증언가들이 맹자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그가 ‘모든 사람을 선하다’(性善)고 한 것이라고 한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도 생각났다.

박순경 통일신학은 1945년 해방 직후 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이 일구어왔던 좌우합작운동의 노력이 그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무척 애석하게 생각했다. 당시 우리의 처지는 그 일로 여운형이나 김구 등의 암살을 불러왔고, 지난 봄 창립 39주년을 맞이해서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에서 ‘3.1운동 백주년과 허스토리’라는 주제 아래 그 삶과 행적을 재현해 내고자 한 ‘(서대문 감옥소) 8호실 언니들’의 권애라(1897-1973) 여사와 같은 뛰어난 여성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를 오랫동안 잊고 지내도록 했다.

그 탐색에 따르면 권애라의 삶은 바로 ‘민족’과 ‘민중’, ‘性’의 문제를 모두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중첩적인 문제들과 씨름하며 그녀는 기독교 신앙과 사회주의 의식의 두 가지 관점을 동시에 돌아보면서 나름의 훌륭한 주체적인 삶을 살다간 여성이었다.(7) 박순경 통일신학은 한국 여성신학에게 이런 여성들과 함께 하라고 촉구하고, 우리에게 큰 축복이면서 동시에 무거운 민족화해와 통일이라는 임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 임무의 짐을 우리가 함께 나누어지면서 이 역할을 앞서 행한 여성선배들을 더욱 찾아내어서 한반도의 삶뿐 아니라 인류 문명의 의미로 풀어내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담당할 일일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 지금까지의 우리의 좁은 시각과 한정된 신앙을 민족과 민중, 여성과 세계의 관점에서 어떻게 더욱 ‘개조’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를 숙고하고 또 숙고할 일이다.(8)

미주

(미주 1) 이은선, “삶의 신학의 한 주제로서의 죽음, 죽음에 대한 종교다원적 성찰”, 대화문화아카데미, 『삶의 신학 콜로기움 생로병사 관혼상제』, 2007, 195-196쪽.
(미주 2) 이 “부활의 평범성의 확대”라는 말은 본인이 지금까지 聖性誠의 여성신학에서 계속 말해온 “聖의 평범성의 확대”라는 말을 더욱 급진화 시킨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聖·性·誠신학의 핵심을 지시하는 언술로 전통 서구 남성신학의 그리스도와 부활의 독점을 깨면서 온 시간과 공간을 하나님 나라로 화하게 하려는 이상의 표현이다. 이은선, “종교문화적 다원성과 한국 여성신학”, 한국여성신학회 엮음, 『한국여성신학과 다원주의』, 여성신학사상 제8집.
(미주 3) 이은선, “유교 문명사회에서의 한국교회와 제2의 종교개혁 그리고 동북아 평화이슈”, 변선환 아키브 편, 『종교개혁 500년, ‘以後’신학』,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7, 508-525; 이 글은 원래 2017년 5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독일 교회의 날 행사에서 발표한 글인데, 여기서 본인은 이 두 가지 언어군인 ‘神身信’과 ‘聖性誠’을 함께 가져와서 어떻게 루터의 종교개혁 삼대 원리인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총으로’, ‘오직 성서로’가 다시 동아시아적으로 개혁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미주 4) 이은선, 『한국 여성조직신학 탐구-聖性誠의 여성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4, 37-56쪽.
(미주 5) 이은선, “3.1운동 정신에서의 유교(대종교)와 기독교-21세기 동북아 평화를 위한 의미와 시사”, 변선환 아키브편, 『3.1정신과 ‘以後’ 기독교』,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9, 21-29쪽.
(미주 6) 이은선, “세월호 4주기: 부활 以後, 목숨을 건 추락”, 2018년 4.12(목), 세월호 참사 4주기 기억예배, 광화문 4.16광장.
(미주 7) 김판임,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 권애라와 그의 동지들”, <한국여성신학> 2019 여름 제89호, 한국여신학자협의회, 13-24쪽.
(미주 8) 이은선, “3.1운동 정신의 통합학문적 이해와 기독교 신앙의 미래”,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 편,  『3.1운동 백주년과 한국 종교개혁』,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019, 439쪽 이하.

이은선 명예교수(한국 信연구소 대표, 세종대)  leeus@sejong.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