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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라라 불러주시오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11.27 18:28
나오미가 그들(~베들레헴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마시고 나를 마라라 불러주시오. 전능자가 나를 매우 괴롭게 하셨으니 그렇습니다.(룻기 1,20)

나오미는 긴 모압 생을 끝내고 그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아직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그의 귀향은 고향 땅을 시끌시끌하게 만들었습니다. 홀로 돌아왔기 때문일까요? 남편도 없이 시어머니를 따라온 룻 때문일까요?

고향 사람들 못지 않게 나오미 자신이 그 처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나의 아름다움/즐거움이라는 뜻의 나오미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의 처지에는 쓰다, 슬프다, 고통스럽다는 뜻의 ‘마라’가 더 잘 어울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뜻밖입니다. 그는 자신이 풍족한 상태로 나갔는데 빈털털이로 돌아왔고 이렇게 된 것을 하나님의 징벌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괴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욥을 연상케 됩니다. 욥과 짝을 이루는 여인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말 가운데 한가지가 눈길을 끕니다. 풍족하게 나갔다는 말입니다.

▲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그를 따라온 룻 ⓒGetty Image

흉년이 들었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때문에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이 더 심한 괴로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들도 할 수만 있다면 흉년을 피할 곳으로 떠나고 싶었을 텐데 떠나지도 못했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 거기 머물 수밖에 없던 사람도 있었을 법합니다. 그런데 나오미 가족은 풍족하게 거기를 떠났습니다. 있는 것들을 다 처분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떠나는 나오미 가족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복잡하겠지만,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가 빈손으로 돌아온 데 놀랐을테고, 자식들과 남편도 없이 모압 며느리와 함께 오니 기가 찼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고향 사람들이 떠들썩했던 실제 이유를 보게 됩니다. 나오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징벌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을 뇌두고 떠난 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 자신을 포함해 누구나 그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보았을 수 있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어쩌면 돌아오기로 결심할 때 이미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탕자로 불리는 둘째 아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시끌시끌하던 사람들의 소리가 노래 소리로 바뀌는 날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룻에게서 나온 아기를 안고 ‘생명과 삶의 회복’을 깊고 넓게 느끼며 온 몸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에 휩싸일 때조차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며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새출발의 용기를 얻는 오늘이기를. 룻과 같은 삶의 동지를 얻는 행복한 이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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