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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명쾌하며 화려하고, 거칠고 소박하고성령과 성경 (1)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19.11.30 17:44

칼빈은 앞에서 이성적 논증들로 성경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8장에서 그는 인간의 이성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예컨대 인문주의적 연구방법들을 통하여 성경의 신빙성이 충분히 증명된다고 말합니다.

외부의 증거들이 쓸모없어질 때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자칫 바로 앞에서 “성경의 자증”을 확고히 말한 칼빈 자신의 논지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8장의 제목을 “성경에 대한 신념을 확증하는 이성적 증거들”이라고 말했던 어떤 칼빈 학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들어가면, 8장을 시작하는 본문의 첫 문장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줍니다.

▲ 플라톤 석상 ⓒGetty Image
성경에 대한 이러한 확실성이 인간의 판단보다 더 높고 더 강하지 않는 한(바꿔 말하면, 인간의 다른 어떤 판단보다 더 높고 강한 이 성령의 증거에 의한 확실성을 배제한다면), 논증으로 성경의 권위를 수호한다든가, 교회의 일반적인 동의로 그것을 확립한다든가, 혹은 어떤 다른 무엇의 지원을 받아 확증한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I.viii.1).

성령의 내적 증거가 없다면, 그러한 외부의 증거들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그러한 증거들이 요긴한 증거들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내적 증거를 전제한다면, “이전에는 마음에 성경의 확실성을 강하게 심어주지 못하고 고착시켜 주지 못하던 논증들이 이제는 매우 유용한 도움”(I.viii.1)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칼빈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와 수사학자들의 책들과 성경을 비교함으로써 성경이 지니고 있는 신적인 지혜와 능력의 탁월함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인간의 저작이 아무리 기교 면에서 잘 다듬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만큼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성경의 이 특수한 힘은 명백해진다. 데모스테네스나 키케로의 글을 읽어보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라. 그것들은 놀라운 방법으로 독자를 매혹시키며 기쁘게 하고 감동을 주며 또 황홀하게 만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읽은 후에는 이 성경을 읽는데 전념하라. 그리하면 성경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며 우리 마음에 스며들 뿐만 아니라 골수에까지 새겨짐으로써, 그 깊은 인상과 비교할 때 수사학자나 철학자들의 힘은 거의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으로 얻게 되는 일체의 재능과 미덕을 훨씬 능가하는 이 성경은 신적인 무엇을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I.viii.1).

성경은 문체가 아니다

그래서 2절에서 칼빈은 결정적인 것은 문체가 아니라 내용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성경에는 어떠한 세속적인 저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우아하고 명쾌하며 화려한 문체의 글만이 아니라 거칠고 소박한 문체를 드러내는 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이 평범한 문체에 하늘나라의 숭고한 신비가 실려서 전달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어떤 수사학자가 내놓을 수 있는 세련된 문체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렘브란트, “예레미야” ⓒWikiCommons
사실 선지자들 중 어떤 이들의 문체는 우아하고 명쾌하며 심지어는 화려하기까지 하므로, 그들의 수사법은 어떠한 세속적인 저자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음을 나는 인정한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러한 실례를 보여주심으로써, 비록 다른 곳에서 소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문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수사법에서 자기에게 조금도 결함이 없다는 것을 보이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아름답고 즐거운 말들을 풍부하게 사용한 다윗과 이사야, 그 리고 그와 같은 이들의 글이나 또는 거칠지만 문체의 소박함을 느낄 수 있는 목자 아모스나 예레미야 또는 스가랴의 글을 읽어보면, 내가 이미 말한 바 있는 성령의 위엄이 어디서나 뚜렷하게 나타나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I.viii.2).

이어서 다른 증거들도 소개되지만 자세히 살펴볼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의 고전성, 진실성, 구약성경에 소개된 기적들, 구약성경이 보존된 사실, 그리고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신약성경의 숭고한 진리들이 기록된 사실, 성경의 권위가 끊임없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확고히 서 있다는 사실 등이 거론되는데, 칼빈은 이 모든 사실들이 다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입증해준다고 말 합니다(I.viii.3-12). 그러나 칼빈은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처음의 진술로 돌아갑니다.

성부께서 자신의 위엄을 성경에 나타내시며, 성경의 존귀성을 모든 논쟁의 영역에서 지키시지 않는 한, 그들 스스로 견고한 신앙을 마련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확실성이 성령의 내적 확신 위에 세워질 때에만, 비로소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을 궁극적으로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실로 성경을 확증하려는 인간적인 증거는, 그 주요하고 우선적인 증거에 대하여 제2차적인 보호자의 역할만 한다면 결코 무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신자에게 논증을 통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하려는 자들은 매우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 아니고는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I.viii.13).

칼빈은 7장에서 논쟁을 통해서는 성경에 대한 견고한 신앙을 결코 세울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칼빈은 제3권 성령론에서 믿음은 성령 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며,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믿음을 일으키는 일”이라고 말할 것입니다(III.i.4). 그렇게 여기서 그는 성령에 의해서 믿음이 생기는 그 순간에, 단지 그 때에 성경의 권위는 인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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