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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크란요르단에서 보내는 다섯 번째 편지
수헤이르 | 승인 2019.12.07 18:04

아침에 올리브나무 숲을 걸어 갈 때면 후드둑 후드둑 올리브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부지런한 아저씨들이 이른 아침부터 대추를 털 듯 작대기를 들고 올리브를 털면 나무 아래에 먹 포도 같은 올리브가 모여진다.

기온으로만 느끼는 요르단의 계절

요르단에도 가을이 왔다. 한국처럼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단풍은 볼 수 없지만 계절은 가을이다.

▲ 요르단의 계절은 기온을 통해서만 느끼게 된다. ⓒ수헤이르

우기가 지나고 나자 암만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고 높았다. 처음엔 맑은 하늘이 참 좋았다. 파란 하늘을 보며 걷는 발걸음은 경쾌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새털구름, 양털구름, 뭉게구름처럼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이 그리웠다.  뿐만 아니라 먹구름이나 소나기구름으로 덮인 하늘마저 보고 싶기도 했다.

한결 같은 것은  하늘 뿐만이 아니다. 나무는 사철 푸르다. 그저 계절을 구분 할 수 있는 것은 기온이 오르고 내리는 온도의 변화로만 느낄 수 있다.

계절이 지루하게 느껴 질 때 쯤 올리브 열매를 따는 농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은 계절 속에서도 올리브 나무는 하얗고 작은 꽃을 피우더니 꽃이 바닥에 내려앉으면서 녹갈색의 올리브가 다닥다닥 열렸다, 그리고 점점 진 보라색으로 변하더니 드디어 추수 때가 된 것이다. 

계절은 철마다 말없이 바뀌어 가고 있었고 나는 계절의 변화에 무심하였다. 생각해보면 평온 한 날들이고 조용한 계절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시간이다.

슈크란

‘슈크란’은 아랍어로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슈크란’ 하고 인사하면 ‘아프완’이라고 대답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 딱히 대답 할 말을 못 찾는다. 그래서 ‘뭘요’, ‘아니에요’ 라고 애매하게 대답을 하거나 쑥스러운 미소로 대신 한다. 나는 우리말에서 아직도 감사의 인사에 명쾌하게 대답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아랍어의 ‘슈크란’이란 감사의 인사에는 ‘아프완’하며 명랑하게 대답을 한다.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참 아이러니 한 반응이다.

나는 ‘슈크란’이라는 인사를 들을 때 마다 기분이 좋다.  물론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도 먼저 ‘슈크란’ 이라는 어감이 좋다.

‘슈크란’이라는 인사 속에는 슈크림 빵 속에 들어있는 커스터드 크림처럼 부드러우며 바닐라 향이 전해 오는 것 같다. 또한 다정한 사람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살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건조하지도 잔망스럽지도 않은 인사말

‘슈크란’은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말이 아니다. 또한 너무 정중하여 더불어 정중해야 할 것 같은 인사말도 아니다. 딱딱하지도 건조하지도 잔망스럽지도 거칠지도 않다.  그저 숲 속의 피톤치드처럼 싱그럽게 들린다.

▲ 낙엽은 없지만 요르단에도 가을이 왔다. ⓒ수헤이르

내가 아랍어를 말할 때 유일하게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들은 말은 ‘슈크란’이다. 사실 ‘슈크란’이라는 말은 발음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혀를 굴려야 한다던가 목에서 소리를 끌어올려 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편하게 말하면 된다.

아랍어는 표현력이 매우 뛰어나고 아름답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말은 ‘슈크란’인 것 같다. 요르단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듣고 사용하는 말도 ‘슈크란’이다.

나는 사람들과 헤어질 때 ‘마쌀라-마’ 라는 인사가 있어도 ‘슈크란’하며 고맙다는 인사로 대신 한다. 그리고 ‘참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할 때는 ‘슈크란 키티르’라는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슈크란! 슈크란!” 하며 ‘슈크란’을 두 번 연속하여 말한다.  

아마 그 때 부터였을 것이다. 자주 가는 마트에 점원은 단골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기는커녕 눈인사조차도 아낀다. 외국인인 나를 보고 한 번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 본적도 없다. 참으로 무뚝뚝하고 인간미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 싶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야채와 과일을 사다 보니 짐이 양손에 가득이다. 낑낑거리며 마트의 계단을 내려와서 짐을 내려놓았다. 좀 쉴 겸 가방 속에서 든 핸드폰을 찾고 있는데 헐레벌떡 누군가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점원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내게 지갑을 건넸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온지도 모르고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는 내게 말없이 지갑을 건네는 그의 얼굴에는 책임을 다한 자의 안도의 표정이 들어 있었다.

찾으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전해 줘도 될 일을, 계산대를 비우고 달려와 지갑을 전해주고 급히 돌아가는 그의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나는 그의 등 뒤에서  “슈크란 슈크란”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일상이 모두 슈크란

암만은 교통이 복잡하다. 내가 사는 곳은 차는 많은데 신호등이나 횡단보도가 거의 없어 무단 횡단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걱정 할 일은 아니다. 길을 건널 때 마다 지나가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차가 기다려준다. 요르단은 언제나 사람이 먼저다.  차에서 느긋이 기다려 주는 운전자들에게 나는 “슈크란” “슈크란” 하며 길을 건넌다.

무뚝뚝하지만 날씨처럼 변덕스럽지 않은 요르단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감이 ‘슈크란’이다.

눈길을 주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꽃을 피워 준 계절에게도 ‘슈크란’을 전하다. 우기가 지난 후 한 번도 비다운 비가 온 적이 없었는데도 제철에 맞는 과일과 채소를 먹으며 지낼 수 있었던 날들이 ‘슈크란’이다.  

마음으로 봐야 더 ‘슈크란’인 세상에 살고 있는 것도 ‘슈크란’이다. 

수헤이르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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