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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신학자, 거리에서 하느님을 외치다이정배 교수의 설교집 『우리는 하느님을 거리에서 만난다』(동연, 2019)
이정훈 | 승인 2019.12.13 17:01
“이 책 『우리는 하느님을 거리에서 만난다』(동연, 2019)는 지난 3년 동안 거리에서, 교회에서 행했던 설교문을 모은 것이다. 3.1 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을 생각하며 33편의 글을 선정하여-그러나 35편이 되어 버렸다-1, 2부로 나눠 편집했다. 학교를 떠난 지 벌써 3년 하고도 절반의 해가 더 지났다. 이 기간에 고통의 현장, 거리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한 장로교 여성 목회자에 의해 어느 자리에서 ‘거리 신학자’로 호명된 이후 그 말이 줄곧 나를 따라 다녔다. 사실 30년을 강단 신학자로 살아왔던 내게 ‘거리 신학자’란 가당치 않다. 그럼에도 그렇게 불린 이후 더 많이 거리에서, 현장에서 설교할 기회들이 주어졌으니 그 호칭을 예사롭게 여길 수 없게 되었다. 세월호 설교가 처음 시작이었고 이후 교단 문제를 비롯하여 백남기 님의 죽음 등 시대적 사안에 따른 현장 예배에서 말씀을 전해야만 했다.”
- 이정배, 『우리는 하느님을 거리에서 만난다』(서울: 동연출판사, 2019), 7.

20세기 신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 칭해졌던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설교를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설교란 하나님 말씀 자체에 봉사하는 교회에 명령된 한 시도로, 이것은 이 일을 위해 부름받은 자에 의해 자유로운 언어 가운데 성경 본문을 현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한 통고로 그들에게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수행된다.”(칼 바르트, 『칼 바르트의 설교학』, 정인교 옮김[서울: 한들출판사, 1999], 44)

설교에 대한 정의를 바르트의 이야기로 모두 해소할 수 없지만 적어도 두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설교가 성경 본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밀접한 연관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우스개 소리가 가능한데, 성서와 세상 사이의 줄타기가 설교라고 말이다.

누군가 이러한 바르트에게 설교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바르트의 답변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언이 되었다.

“나는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신문을 들고, 둘을 번갈아 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살아야 할 삶의 원리와 방향을 알려주고, 신문은 우리의 현실을 알려줍니다.”

한 손에 신문을 든 거리의 신학자

올해 5월 출판된 ‘거리 신학자’ 이정배 교수의 『우리는 하느님을 거리에서 만난다』는 그리스도인이 속해져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설교집이다. 어쩌면 사회가 보여주는 현실을 가감없이 응시하고 있는 설교집이라고 해야 더 적합한 표현이다. 바르트의 표현대로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있는 설교집이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문제에 이정배 교수는 등이 떠밀리다 싶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강단을 떠나 선후배들의 요청으로 한국 교회가 어떤 응답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자리에서 설교가 행해졌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라는 설교문에서 이정배 교수는 이렇게 외쳤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부활을 논쟁거리로 삼는 이들에게 하느님이 죽은 자가 아닌 산자의 하느님을 말하였듯, 모세의 십계명을 들이댄 이들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답했듯이 예수는 시대의 징표를 하늘의 징표라 여기며 시대를 옳게 보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우리들 현실을 빼앗고 있는 탓입니다. 정부는 장밋빛 미래의 청사진을 알 수 없는 수치로 제시하며 종교들 역시 죽은 이후 천국행을 소망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모든 이들이 고통받으며 신음하고 있는데 미래를 위한 고통이니 참으라 했고 내세의 축복을 위해 이 땅의 현실을 감내하라는 말뿐입니다. 저 깊은 바닷속에 아직 ‘사람이 있음’에도 말입니다. 이 땅의 정치와 종교가 저마다 아픈 시대의 징조 대신 먼 미래, 하늘의 징표를 쏟아 놓고 있습니다. 동성애자와 이슬람을 자신들 최대의 적이라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타자를 희생시켜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자 할 뿐입니다. 이 점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향해 자녀들이 천국에 갔으니 잠잠할 것을 요구하는 교회들이나 허울 좋은 보상금으로 이들 가족들의 입을 막고자 했던 정부는 너무도 빼닮았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이 시대의 징표이자 이 땅의 실상인 것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려던 결과입니다. 하늘의 붉고 흐린 것이 비올 것의 징조였듯 세월호 참사가 명백한 시대의 징표였건만, 권력자들은 지금 당시의 사람들처럼 하늘의 표징을 앞세워 시대의 고통을 덮고, 묻고자 할 뿐입니다.”(45-46)

종교와 정치의 현실을 이만큼 선명하고, 선명하기에 아프도록 표현할 수 있을까. 세월호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나 이웃종교를 향한 혐오 현상에 대해서도 그 근본을 통찰하고 있다. 그래서 부끄럽고 아프게 느껴진다.

거리의 신학자가 이야기 하는 신학적 명제들

하지만 이정배 교수의 설교집은 시대를 통찰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해법을 성서 뿐만 아니라 종교를 넘나들며 제시하고 있다. 또 하나 긴 글을 인용한다.

“오늘의 교회상이 이렇듯 변질된 것은 기독교가 이 땅에 잘못된 방식으로 정착된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이 땅의 종교 문화와 제대로 만났더라면 한국교회가 서구적 형태와 변별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리되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 종교든 긍/부정적 측면이 있는 것인데 불행히도 제도화된 교회의 부정적 측면과 이 땅의 부정적 종교현상이 접목되고 말았습니다. … 혹자는 이것을 한국적 기독교의 모습이라 폄하하고 제 종교들과의 단절 내지 투쟁을 기독교 본연의 과제라 인식하나 이것은 잘못된 평가입니다. 이런 부정성은 기독교에도 비(非)본질성이 있듯 본래 이 땅의 주인이었던 종교들의 일면일 뿐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이들 종교들에서 우리는 초대교회 가치를 강화시킬 수 있고, 새 시대에 필요한 누룩과 같은 요소를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가치 지향적 만남을 위해 우리는 향후 또 하나의 ‘脫’을 지향해야 할 것인바. 그것은 바로 ‘脫’서구입니다. 그 타방에서 교회론의 ‘한국적’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다시 프로테스트의 마지막 과제라 생각합니다.”(“다시 프로테스트: 시월의 프로테스탄트”, 259-260)

그리고 이정배 교수의 설교집을 대하면서 나름 놀랐던 것은 설교 제목 자체가 하나의 신학적 명제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몇 가지만 소개해 본다. “왜 아기 예수는 비방 받는 자의 표증이었는가?”, “시대를 향한 예수의 불편한 지적질, 그것이 사회적 영성이다”, “예수 족보 속에 ‘난민’이 있다”, “환대가 복음이다”, “기억의 종교가 할 일은 기억 투쟁이다”, “우리가 부활해야 예수도 부활한다”

이정배 교수가 제시한 이러한 신학적 명제 앞에 그리스도인의 실천은 어떠해야 할까 하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뒤따라 붙는 경험을 했다. 한국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명제들이기에 한국교회의 병리적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현실도 보게 되었다. 가까이는 전광훈 같은 사람들이 모델이 아닐까.

이제 마지막으로 이 설교집에서 이정배 교수의 다짐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던 구절을 소개한다.

“그동안 삶의 알리바이를 위해 종종 현장을 찾았으나 이제는 현실에 삶을 깊게 뿌리 내리고 싶습니다. 아마도 삶에는 때가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지킬 때가 있으면 놓을 때가 있는 법이고 움켜쥘 때가 있었다면 펼쳐야 될 순에 이른 탓입니다. 이 ‘때’를 옳게 성찰하는 것이 최소한 신앙적 태도라 여겨집니다.”(“가시나무에겐 그늘이 없다”, 172)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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