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성서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두려움을 넘어 기쁨으로 가는 길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12.15 16:18
이 성전 (건축)이 다리우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끝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머지 귀환자들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기뻐하며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드렸다.(에스라 6,15-16)

바벨론에서 포로들이 돌아온지 22여년만의 일입니다.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전이 무너졌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괴로움과 슬픔을 겪었습니다. 포로들의 해방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 무너진 터를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전 없는 삶은 터전을 잃은 삶이었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성전건축이 상당히 늦어진 것은 좀 의외입니다. 포로들이 돌아온 다음에도 성전건축은 좀처럼 시작되지 않습니다. 웬 일일까요? 성전부재의 고통을 잊지 않았음에도 그들이 해방의 기쁨을 성전 건축으로 현실화하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때도 그들은 겨우(?) 제단만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이상을 기획하지 못한 이유는 다른 민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두려웠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물리적 충돌도 배제할 수 없었던 듯합니다. 그러니 제단을 세우는 데에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 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How deserted lies the City」(1860) ⓒGetty Image

용기의 근원?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한데 그 사랑의 근원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이 세상의 두려움을 이깁니다. 이김은 그 사랑의 능력을 더 키울 것입니다.

제단 설립의 기쁨은 마침내 성전의 기초공사로 이어집니다. 해방 2년의 감격입니다. 그러나 환호성도 잠시 이 선한 공사는 중단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길어져만 갑니다. 방해세력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페르시아 제국에 종속된 유다는 속수무책입니다. 제국의 허락없이 공사를 재개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며 사랑을 거둘까요? 하늘을 잊은 채 땅의 일에 몰두할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요기까지니까 우리의 사랑도 여기까지야 할까요?

공사가 중단된 성전의 기초는 보면 볼수록 속만 상합니다. 망각 속에 묻어두는 게 편한 듯 세월은 덧없이 흘러만갑니다. 망각 저편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일깨우며 미래로 불러내는 하나님의 소리가 예언자들을 통해 울렸습니다. 상황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역사는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고 굴곡이 있다는 것이 때로는 견디기 어려울 수 있고 때로는 포기하고플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시간이 걸려도 인내하며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지친 사람들을 일으키고 힘주며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그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성전봉헌의 축제를 열기에 이르기까지 그들 곁을 지키셨습니다. 이 사랑의 길을 하나님은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사랑의 길에 우여곡절이 있어도 끝까지 갈 수 있게 주께서 사랑의 힘을 더하시는 오늘이기를. 실망으로 뒷걸음칠 때에도 우리를 기다리시며 손내미시는 주님께 사랑으로 답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상기 목사(백합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이해학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0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