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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세상을 보는 눈이며 민족의 기억“말은 하느님의 마루” - 우리말에서 듣는 하늘의 소리 (1)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 승인 2019.12.15 17:00

인간이 ‘철학적 동물(animal philosophicum)’임은 잘 알다시피 인간이 이성적인 사유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이성적 동물(animal rationale)’일 수 있는 것은 그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찍부터 간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을 ‘언어능력이 있는 생명체(ζωον λογον εχον)’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이 그리스적 인간규정이 로마문화권으로 번역되면서 ‘이성적 동물’로 변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1) “인간은 말하기 때문에 이성적인 동물인 것이다(Homo animal rationale quia orationale).”

언어 속에 사는 인간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언어를 말하는가? 개인의 언어는 그가 그 속에서 성장한 일정한 공통어이다. 이 공통어는 바로 그의 모국어이다. 그 모국어에서 개인은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의 경험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의 지도를 받는다. 경험은 개인 자신이 소화하는 인상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의 인도를 받는다.(2)

일상생활에서도, 과학[학문]에서도 모국어가 개인의 해석과 사유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으로 간섭하고 있다는 것이 확증된다. 따라서 우리는 모국어가 우리를 대신해서 사유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3)

모국어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언어공동체의 언어이다. 한글은 한국의 언어공동체에 속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 소유재이다. 그 공동체 속에서 인간들은 언어의 소유자들이다. 바로 언어에서는 어떤 인간도 이 소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언제나 한 언어공동체에 속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가장 일반적인 문화재이다. 어떤 인간도 그 자신의 개인적인 힘으로 말미암아 그의 언어재를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언어의 소유는 언어공동체에 대한 소속성으로부터 인간에게서 생겨나며, 인간은 그의 모국어를 습득하면서, 즉 인간은 이 언어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서 자라난다.(4)

▲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과 부인 이장련 여사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도 이런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사람이 있는 곳에 말이 있으며, 겨레의 사는 곳에 겨렛말이 산다. 겨렛말은 실로 겨레의 정신이요. 생명이다. 겨렛말의 소리가 울리는 곳에는 겨레의 정신이 약동하며, 겨렛말이 번지는 곳에는 그 겨레의 생명이 번진다. 그리하여, 겨레와 겨렛말과는 흥망을 같이하며, 성쇠를 같이한다.”(5)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세계관이다

모든 민족에게는 그 언어 속에 하나의 세계관이 갈무리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를 언어공동체의 운명, 그 지리적, 역사적 형세, 그 정신적이고 외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그 민족의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상태가 두 민족에게 동일하지 않듯이, 이러한 다른 상태에서 생겨난 두 언어 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세계상 역시 같은 것일 수 없다. 언어보다도 한 민족의 운명과 견고하게 결합된 것은 없으며, 한 민족과 그 언어와의 사이보다 더 밀접한 상호작용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6)

그런 의미에서 외솔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배달말은 배달 겨레의 문화의 연장이요, 창조의 결과이다. 문화와 창조가, 한가지로, 자연에 대한 사람의 이상 실현의 정신적 자유를 뜻한다. 그런데, 자유는 정신의 본질이요, 생명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우리 겨레의 창조이요, 자유이며, 생명이다.”(81)

언어공동체는 다른 모든 공동체의 전제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기 때문만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의 토대가 되는 공통의 세계관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많은 공동생활과 공동작용에 대한 전제가 어디엔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언어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한 언어의 효력범위는 한 민족에게 자연적인 영역이 된다. 한 언어에 속하는 모든 이들은 그 어떤 다른 공동체보다도 서로 가까이 있으며, 그들은 운명적으로 서로, 그리고 그들의 언어와 결합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7)

이런 의사소통공동체로서의 민족공동체를 외솔 선생은 일찍이 겨레라는 말로써 풀이하였다.

“겨레는 두 가지의 기초를 가졌다. 하나는 자연스런 기초이니, 한가지의 피를 타고 한 땅에 나서 사는 일이요, 또 하나는 문화스런 기초이니, 한가지의 문화를 지니고 있는 일이다. 문화란 것은, 바깥 자연의 땅과 그 밖의 물건에다가, 사람의 슬기로운 이상(理想)대로 힘을 더하여서,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쓸 물건을 만들며, 아낙 자연[내부자연(內部自然)]의 마음에다가, 사람의 슬기로운 이상대로 힘을 더하여, 과학 ‧ 도덕 ‧ 예술 ‧ 종교를 만들어냄을 이름이다. 그리하여, 피의 공동은 한 줄기의 목숨을 가짐을 뜻하고, 문화의 공동은 한 형식(形式=꼴재)의 사는 이상(理想)과 사는 길[생활의 도(生活의 道)]을 가짐을 뜻함이니 말과 풍속 습관이 다 이에 딸린다. 다시 말하면, 겨레는 다만 피를 함께 타고 났을 뿐 아니라, 또 그 피로 된 목숨을 살아 나가는 방식을 같이하여 지키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겨레란 문화적 개념이다. 만약, 저 피의 공동만 있고, 이 문화의 공동이 없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종학에서의 종족(種族)이 될 뿐이요, 겨레는 되지 못한다.”(46)

언어는 사유의 통로이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체험내용을 정돈하는 데에도 모국어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의 인식을 개념적이고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도 모국어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우리의 행위 역시 모국어의 안내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대체가 우리는 잘 갈무리되어 있는 세계관을 모국어를 통해 전수받으며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국어 사용 집단의 사유의 동일성과 동종성 역시 모국어에 감사해야 함을 보았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주체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이 땅의 철학자들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모국어인 우리말에 통달하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말로 철학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는 것이다. 철학함에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언어공동체는 운명적으로 서로 사이에 우리말로 결속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의미로 언어의 중요성을 외솔 선생은 이렇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말은 오랫동안의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이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의 쌓음이다. 따라, 말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개인이나 겨레의 문화의 형태를 나타내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 말의 거울은 다만 수동적으로 사람의 문화 활동의 열매를 거두어 가지고 있음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다시 반사적으로 그 빛살을 쏘아내어서, 사람의 문화 활동을 비추며, 북돋우며, 재촉하는 적극스런 노릇[적극적 기능(積極的 機能)]을 한다. 그러므로, 말의 거울은, 다만 지난적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아, 올적[미래(未來)]의 소망을 점칠 수 있는 것이다.”(28)

마지막으로 문화의 세기에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외솔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말은 정신의 표현이요, 자유의 산물이다. 말은 자유 정신의 애지음[창조(創造)]이다. 말은 다만 애지음으로 말미암아 성립되는 것일 뿐 아니라, 도로 또 사랑을 애지으며, 슬기를 애지으며, 생활을 애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은 자유 정신의 애지음의 결과인 동시에, 또 자유 정신의 나타남[발현(發現)]의 원인이요 수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말은 애지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애지음[창조(創造)]은 사람 살이의 충실한 번짐[발전(發展)]이라, 이것 아니고는 문화의 밝음이 없으며, 이것 아니고는 생활의 충실이 없다. 말은 결코 단순한 빈 그릇이 아니라, 내용 그것이다. 말은 애지어진 문화의 꽃일 뿐 아니라, 또, 문화의 애지음의 거름[비료(肥料)]이다.”(99)

 

미주

(미주 1) 이러한 사실이 벌써 철학함에 언어가, 즉 모국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미주 2) 참조. H. Lipps, Untersuchungen zur Phänomenologie der Erkenntnis (인식의 현상학을 위한 탐구들), II. Teil, Frankfurt a.M., 1976, 24.
(미주 3) 참조. 레오 바이스게르버, 『모국어와 정신형성』, 허발 옮김, 문예출판사, 1993, 162.
(미주 4) 참조. 같은 책, 69.
(미주 5) 최현배,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 [정음사,] 1951, 51.
(미주 6) 참조. 레오 바이스게르버, 같은 책, 134.
(미주 7) 같은 책, 136.

이기상 명예교수(한국외대)  saemo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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