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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유산”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12.16 17:37
… 20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이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 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29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32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누가복음 15:11~32/새번역)

가장 아름다운 비유 중 하나로 꼽히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입니다. 장남 입장에 서있던 이들에게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죄인들과 식탁을 함께 하는 예수님께 불평하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 그들에게 들려주신 세 비유 중 하나입니다. 잃은 양, 잃은 돈의 비유에 이어 마지막 갈무리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탕자의 비유라는 제목부터 동생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안 그래도 서운했을 장남이 더 서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에 빗댄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장남 같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전하고자 하신 그 마음은 무엇일까요?

▲ 렘브란트, 「돌아온 탕아」

이 비유는 장남의 마음에 빗대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 마음을 알아주고 있습니다. 아버지 곁에서 오래도록 순종하며 섬기던 마음, 그래서 서운한 마음을 넌지시 읽어주십니다. 옹졸해 보일 수도 있는 형의 마음에 대해 어떤 비판이나 책망이 없습니다. 곁에만 있었을 뿐, 아버지의 아픈 마음 헤아리지 못한 점에서는 형도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돌아온 동생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어떤 책망도 없이 그대로 받아주셨듯이, 형의 투정도, 질투와 냉정함도 그대로 받아주십니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지만, 그대로에 멈추게 하지는 않습니다. 죄인을 용서해주시지만 죄인의 삶 그대로를 방치하지 않습니다. 햇살이 나무를 자라게 하듯, 사랑은 보다 성숙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스스로 자라나게 합니다. 장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해주시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전해주시고 동참의 기회를 주십니다.

언제 돌아올지 노심초사 기다리던 마음,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남루한 실루엣만 보고도 알아보신 마음, 당시 가부장문화에서 손가락질 받을 것도 잊고 달려가 끌어안고 입 맞춘 마음, 가타부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지와 옷과 잔치로 아들 자격을 회복해주시 마음… 그 애틋한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죄인들과 함께 하는 식탁, 가장 일상적이기에 가장 혁명적입니다. 비난과 오해를 샀던 그 나눔, 왜 죄인들을 맞이해 그 식탁잔치를 벌이셨는지. 그 사랑과 뜻을 함께 맛볼 수 있도록 초대해주십니다. ‘너도 애비의 기쁨에 함께 하자구나.’

장남이 이미 받은 유산이 무엇인지도 일깨우십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지 않니.”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자신의 것입니다. 재산만이 아닙니다. 동생을 기다리던 아픈 가슴과 돌아온 기쁨에 잔치를 벌이는 기쁨까지, 아버지의 것은 아들의 것입니다. 큰 아들은 가장 풍성한 부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우는 부요함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잊혀진 유산, 반드시 되찾아 물려받아야할 유산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는 원인입니다. 늘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는 삶이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장남이 놓치지 말아야할 유산은, 주님의 임재와 동행입니다. 어느 날인가 자신도 동생처럼 죄에 무너지고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사랑의 품입니다. 필히 물려받아야 할 유산 역시 그 사랑 아니겠습니까. 상처주고 아프게 한 이를 언제까지나 기다려주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받아주는 그 사랑!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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