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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종과 주인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12.18 16:29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종들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이 허리를 동여매고, 그들을 식탁에 (비스듬히 눕혀) 앉히고 곁에 와 시중들 것이다.(누가복음 12,37)

혼인집에 간 주인이 돌아왔을 때 주인을 맞는 종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언제든 돌아왔을 때, 특히 새벽 두세 시나 되었을 때 그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종을 보면 그는 어떻게 할까요? 주인과 종이 구별되는 신분제 사회에서 주인은 종이 그렇게 맞는 것을 대체로 당연히 여기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불호령이 떨어지겠지요. 그때와는 사회가 다른 현재에도 집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깨어 있어서 즉시 문을 열어주는 종돌에게 행복하다고 선언합니다. 행복하다는 말은 산상수훈에서 복을 선언할 때 사용한 말과 같습니다. 그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복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아는 우리에게 이 말은 그 내용이 무엇일지 상당한 기대를 불러 일으킵니다.

▲ 등불을 켜놓고 종들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Getty Image

그 복의 내용이 바로 위의 본문에 있습니다. 종들에겐 당연할지도 모를 행위인데 그렇게 한 사람들에게 주인은 스스로 종이 됩니다. 물론 이것이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서라면 일회적인 것이겠지요. 그럴지라도 파격적입니다. 누가 식탁을 준비했는지는 보도되지 않지만 식탁이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주인을 위한 식탁이 아니라 종들을 위한 식탁입니다. 종들은 식탁을 준비하면서 올 손님들이 누구인지 서로 물어보기도 하며 궁금해 했을 것입니다. 여느 때와 달리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 테니까요.

식탁이 다 준비되자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인이 종들처럼 허리띠를 동여맸습니다. 왜? 주인이 자신을 종처럼 낮출만한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종들을 식사하는 자세하는 의자에 앉히기 시작합니다. 그러시면 안됩니다 하고 손사래치는 종도 있겠지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의자에 앉히고는 주인이 그들 곁에 섭니다. 시중드는 자로 그들 가운데 계십니다(눅 22,27). 자리가 뒤바뀐 그 광경에 종들은 송구스러워하며 불편해 했을까요? 주인의 종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요?

하지만 진지한 주인의 모습에 종들은 주인의 서빙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주인의 자리로 높였습니다. 사회제도에도 불구하고 종들은 주인 앞에서 더이상 종들이 아닙니다. 주인의 시중을 받는 종들은 점차 그 의미를 깨닫기 시작하고 그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해방과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를 얻은 종들은 이제부터 종으로서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종이 될 것입니다.

깨어 주님을 기다리며 맞는 성실한 종의 이날이기를. 종이 주인으로 높여지는 행복한 오늘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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