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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놓아드리다”살며 묵상하며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 승인 2019.12.19 17:26
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 9 그 사람은 곧 나아서,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대 사람들은 병이 나은 사람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안식일이니,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소.”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나를 낫게 해주신 분이 나더러,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라’ 하셨소.” 12 유대 사람들이 물었다. “그대에게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요?” 그런데 병 나은 사람은, 자기를 고쳐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이 붐비었고, 예수께서는 그 곳을 빠져나가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요한복음 5:8~14/새번역)

어느 교회 성도들에게 이유를 모르는 습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면 곧바로 오른쪽 벽을 보며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쪽에는 빈 벽 밖에 없는데 왜 그리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예전에는 그곳에 그리스도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쪽을 보며 기도하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예수상을 치웠지만, 그것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계속 그쪽을 보고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 세대는 이유도 모르고 어려서부터 어른들을 따라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유는 사라지고, 습관만 남은 것입니다. 이유를 모르고 따라만 하면 속빈 행위만 남기 쉽습니다.

▲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1892-1979), 「부활후」(1962), 비단에 채색 79×52㎝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 목숨을 걸만큼 열심히 율법을 만들어 지킵니다. 그런데 그 율법에 눈이 멀어 보지 못합니다. 38년 병들었던 사람이 자리를 걷어 일어난 그 환희와 기쁨이 보이지 않습니다. 병자를 도운 사랑은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안식을 어겼다고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거룩하다는 형식에 집착하여 그 의도를 놓치면, 엉뚱한 행위가 되고 맙니다. 사람을 사랑하라고 주신 안식일(막2:27)이 사람을 억누르는 이유가 됩니다. 단지 안식일 율법을 어긴 불경으로만 봅니다. 안식일의 뜻을 망각하자, 잔혹한 폭력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십니다. 병을 고쳐주시고도 아무 말 없이 사라지셨습니다. 인정, 칭찬 따위에는 아무 관심 없으십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무 말씀 없으실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다른 목표를 위해 이용하지도 않으십니다.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사실 내가 바로 메시야다. 그러니 나를 믿어야, 나를 따라야 …” 이런 뒷말이 없으십니다. 신앙인이라면 거룩하게 여길만한 일, 전도나 제자 삼기 등에 이용하지 않으십니다. 오롯이 사랑하기만 하십니다. 오롯이 그 병자에게만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증상만 치료해 주시지 않고 죄의 뿌리까지 치유해 주실 뿐입니다. 그 사람이 병에서 풀려날 뿐만 아니라 거룩하게 살아갈 삶에만 관심을 두십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형식이 아니라 그 본질인 사랑에 집중하셨듯이, 메시야나 구원에 대한 교리적 형식이 아니라 그 본질인 사랑에만 집중하십니다. 그 사람을 향한 사랑에만 집중하십니다. 그리스도론, 대속, 영생… 이 모든 말은 사랑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림자가 사랑을 만들지 못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이 모든 그림자를 제자리에 놓이게 합니다. 또한 사랑은 자유롭게 그림자의 모양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게 하소서.” 자신이 이해하고 집착하고 원하는 하나님, 그 틀이 아무리 거룩하고 아름다워도 하나님을 다 담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비는 그 틀을 겸손히 내려놓을 때 열립니다. 그러나 엑카르트의 기도가 이렇게 들려옵니다. “(다 헤아려 알 수 없는)하나님을 위해 (교리로 틀지운)하나님을 버릴 뿐만 아니라, 죄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네가 집착하는)하나님을 버려라.”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순간도 하나님을 놓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집착하고 기대한 메시야 하나님이 죽은 날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상상하지도 못한 하나님의 신비가 드러나기 시작한 날입니다.

하태혁 목사(단해감리교회)  devi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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