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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반종교 운동북한 선교를 위해 꼭 알아야 할 주체사상 100문 100답(65)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 승인 2019.12.19 17:28

Q: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은 어떻게 변하여 왔나요?(2)_반종교 운동 심화기(1970~1980)의 종교 인식(1)

A: 지난 연재에 이어 주체사상의 종교 인식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번 연재에서 살펴 볼 시기는 1970년에서 1980년에 이르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북에서 반종교 운동이 심도 있게 진행되던 시기입니다.

1972년 세계적인 해빙무드 속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남북교류의 가능성이 대두되었습니다. 남의 종교와 북의 주체사상이 실제로 대면해야 할 상황이 닥쳐온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은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으로의 헌법 개정을 통해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여 보장하는 한편, 종교에 대한 비판을 심화시켜 나갑니다.

1948년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 규정에서 “공민은 신앙 및 종교의식 거행의 자유를 가진다”라고만 명시한데 비하여, 1972년에 제정된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종교 비판에 있어서도 반종교 운동 초기에는 맑스주의 유물론에 입각하여 원론적 차원에서 종교의 허구성과 반동성을 지적한 반면, 1970년대 중반부터는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반종교 운동 심화기의 종교비판은 그 논조가 반종교 운동 초기의 철학적이고 사상적인 비판으로부터 인생관적 측면의 비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에 따라 종교 비판도 종교 전반에 대한 도식적인 비판보다는 개별 종교의 역사나 상황, 교리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한 비판으로 심화되어 전개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반종교 운동 심화기’라고 명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도 깊은 반종교 운동이 전개된 배경에는 북의 주체사상이 남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종교들과 직접 대면하고, ‘내이션’(국가/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할 ‘내셔널리즘’(국가/민족주의)의 지위를 두고 경쟁하여야 할 가능성에서 비롯된 절박성과 진지성이 놓여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지난 2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주교들이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해 미사를 봉헌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기는 북에서 종교인들과의 통일전선적 협조관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크게 강화된 시기입니다. 이러한 노력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습니다. 그 요인들 중 첫째는 종교영역에서도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되어 북의 종교인들이 확고하게 사회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다는 자신감입니다.

둘째는 미중 관계 개선으로 인한 한반도 주변 정세의 호전과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대표되는 남북대화의 급진전입니다. 셋째는 세계교회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와 바티칸, 남미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신학의 대두, 체코의 신학자 요세프 흐로마드카를 필두로 한 유럽에서의 그리스도교-맑스주의 사이의 대화, 각국 공산당들의 통일전선 구축에로의 종교정책 수정 등 국제적 종교정세의 변화입니다. 넷째는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필두로 한 남의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반독재 투쟁에의 참여입니다.

이상의 요인들은 서로 맞물려 주체사상의 종교 이해에 있어 일정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 결과가 종교인들과의 통일전선적 협조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북이 구축하고자 한 통일전선적 협조관계란 어디까지나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한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측면은 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며, 다른 한 측면은 종교와 대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모순적인 것 같지만, 북이 통일전선 구축을 위한 과정에서 같은 편으로 ‘묶어세워야’ 할 종교와의 협조를 위해서는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동시에 북이 구축할 이 통일전선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주체사상과는 다른 사상체계로서 ‘잡사상’의 일종인 종교와 반드시 ‘대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 주체사상의 종교이해가 심화되고 종교 인식이 변화하였다는 사실은 1975년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출판된 허종호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리론』이라는 단행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허종호는 ‘종교’가 역사적으로 ‘억압과 착취의 도구’였으며 ‘남조선’에 대한 미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 침략의 주요한 수단’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남조선’에는 1,795만 여명의 ‘종교인’이 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군사파쇼통치’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조선의 종교계’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종교문제를 신중히 다루어야 하며 종교 인사들과의 사업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허종호는 ‘종교인들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수령’ 김일성의 ‘교시’를 바탕으로, “종교와 종교 신도를 같이 보아서는 안 되며 종교 신도도 개별적으로 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이러한 입장은 종교 전반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태도는 ‘종교’ 자체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극복 대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태도는 ‘종교 신도’에 대해서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연합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수령’ 김일성으로부터 비롯된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이 시기 북의 당국이 펼친 종교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시기 북의 당국이 펼친 종교정책도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측면은 ‘유화책’입니다. 이는 북의 당국이 종교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각종 종교단체들의 활동을 허락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다른 한 측면은 ‘대결책’입니다. 이는 북의 당국이 주체사상을 사상적 무기로 삼아 개별 종교들의 사상과 행태를 조목조목 연구하고 그 허위성과 반동성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는 ‘반종교 선전’으로 드러납니다. 여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북의 주체사상과 대화함에 있어 두 가지 태도를 겸하여야 하며, 따라서 그리스도교-주체사상 사이의 대화도 두 가지 측면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사이의 대화의 한 측면은 ‘협력적 대화’로 서로의 이해를 증진하고,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려는 노력 속에서 상호 인정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대화라는 측면입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사이의 대화의 다른 한 측면은 ‘대결적 대화’로 종교의 허구성을 주장하는 주체사상의 견해에 맞서 종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려는 대화라는 측면입니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적 대화’와 ‘대결적 대화’가 각각 다른 대화가 아니며,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라는 하나의 대화가 가지고 있는 양 측면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사상 신봉자들과 협력적 대화를 하면서도 그리스도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려는 노력을 늦추지 않아야 하며, 주체사상 신봉자들과 그리스도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는 대결적 대화를 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포용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정대일 연구실장(그리스도교-주체사상 대화연구소)  jungsc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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