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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 무너진 세상에서 기다림의 신앙누가복음이 전하는 예수 탄생이야기 (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12.22 17:13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누가복음 1:69-71)

누가복음 1장은 누가복음의 서문이며, 누가복음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방향을 제시하는 첫 페이지입니다. 그 첫 페이지에 누가복음은 80절이나 되는 긴 내용을 담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예언으로 끝나게 됩니다.

첫 주에 사가랴가 천사를 만난 사건을 말씀드릴 때, 그가 말할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이 그가 환상을 보았는지 알았다고 진술하는 점을 통해, 사가랴는 에스겔과 연결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 연결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선 성전에 대한 간략한 상황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만들었던 첫 번째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6년 시드기야 왕 때에 파괴됩니다. 이때는 본래 바벨론의 속국이던 시기였는데, 바벨론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남유다의 왕 시드기야는 기원전 590년 경에 바벨론을 배신하였고, 이에 따라 느부갓네살은 3년에 걸친 침공으로 예루살렘을 함락시킵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야기는 열왕기하 25장, 예레미야 52장, 에스겔 33장 등에 나타납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성이 함락되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고, 에스겔은 598년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상태에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에스겔을 조금 더 살펴보면, 3장과 33장이 파수꾼 소명 이야기로 연결되는데, 3장에서 파수꾼으로 임명받은 에스겔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죄악을 알려야 하는 파수꾼의 사명과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은 모순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이스라엘은 죄로 인해 무조건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임을 보여줍니다. 아직은 회개의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33장에 가서야 에스겔의 입이 열리고 그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때는 에스겔이 예루살렘의 함락 소식을 전해 들은 직후였습니다. 즉 예루살렘 함락을 통해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았고, 이제는 회개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때임을 말합니다.

저희가 에스라-느헤미야를 통해서 알고 있듯이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 예루사렘으로 돌아온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는 성전을 건축합니다. 이를 제2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기원전 20년 경에 헤롯 대왕은 제2성전을 개축, 증축하는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 외형을 증축하는 일은 몇 년만에 끝났지만, 전체 성전 공사가 기원후 60년대에 끝났다고 말합니다. 성전 증축, 개축을 80년에 걸쳐서 진행했다는 이야기는 크게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만, 대략 80년간 성전의 세부적인 공사가 계속해서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원후 60년 경부터는 더 이상 성전에 대한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맞는 듯 합니다.

▲ Francesco Hayez, 「The destruction of the temple of Jerusalem」(1867) ⓒWikiCommons

헤롯에 의해 개축, 증축된 성전은 유대-로마 전쟁이 일어났던 기원후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파괴됩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의 신앙적, 정치적 구심점을 파괴함으로써 그들의 반란 의지를 꺽으려던 행위로 보입니다.

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누가복음이 예루살렘 성전, 헤롯이 증축한 성전이 파괴된 기원후 70년 이후에 기록된 복음서이고, 누가복음의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가랴의 예언과 에스겔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후에 예언을 선포한 에스겔과 헤롯 성전이 파괴된 후에 복음서를 기록한 누가복음은 어쩌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누가복음이 에스겔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사가랴가 벙어리가 된 사건을 그리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인 사가랴의 예언을 에스겔이 33장 이후에 선포한 예언, 입이 열림과 함께 선포했던 예언과 연결시켜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에스겔의 입이 열렸을 때, 33장 23-29절에서 선포한 예언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선포였습니다. 에스겔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퍼져있던 이야기를 비판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 한 명에게도 이 땅을 주셨는데, 우리가 이렇게 많은데 이 땅을 차지하지 못하겠느냐?”

그 다음에 25절은 그들의 잘못을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고기를 피째로 먹고, 우상을 섬기며,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데, 어떻게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겠느냐?”

이어진 26절은 또 말합니다.

“너희가 칼을 의지하여 가증한 일을 행하고,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는데, 어떻게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겠느냐?”

다음으로 이어지는 27-29절은 그들이 받을 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스겔의 선포는 분명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 그들이 자신들의 힘, 칼에 의지하여 바벨론에 대항하려고 했던 점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들이 자신의 칼에 의지했다는 말은 약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들은 분명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주셨듯이 우리에게도 이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벌인 일입니다.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가졌습니다만, 그들 삶의 태도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거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로 피를 먹지 말라 하셨지만, 이들은 고기를 피째 먹었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선지 해장국 금지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어떠한 생명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이들이 고기를 피째 먹었다는 이야기는 이들이 하나님 주신 생명을 가볍게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들은 우상을 숭배하였고, 사람의 피를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다는 이야기는 언듯 보기에, 전쟁에 대한 금지로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호세아가 아합의 집안을 멸절시켰던 예후를 향해 심판을 선언하는 것과 같이, 아무리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과도한 피흘림은 그 대가를 받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34장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에 제대로 된 목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보면, 여기에 나타난 피흘림은 전쟁에 의한 피흘림은 아닌 듯 합니다. 정당성을 가진 전쟁도 잘못되었다는 호세아가 말한 의미로 선포된 예언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에스겔 34장 3-4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목자, 지도자들이 약한 이들을 돕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취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사람의 피흘림은 권력자들의 외면으로 인해 발생한 약자들의 고통과 낮은 계층의 아픔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선포 뒤에 에스겔은 다윗의 집안에서 한 사람의 목자가 일어나게 되리라는 예언을 선포합니다. 그것이 에스겔 34장 7-31절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장 68-79절은 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에서 목자를 세우시고 그 목자가 이스라엘을 다시금 일으키리라는 예언입니다.

에스겔과 누가복음의 두 가지 신앙

저는 여러분께 신앙의 두 가지 측면을 말씀드리고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첫째는 이들의 선포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된 때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전의 파괴는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런 순간에 이들은 하나님에 의한 구원을 선포합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이 성전이 파괴되었지만,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선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분명히 구원하신다는 희망을 선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복음성가로 잘 알고 있는 하박국의 선포, 하박국 3장 17-18절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의 선포와 같은 의미의 신앙이 에스겔과 누가복음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터전이 파괴된 때에, 내 소출이 모두 사라진 때에, 인생의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그때에도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여전히 나는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스라엘 역사를 아는 건, 성경을 읽는데 조금의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성경의 저자들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 우리에게 어떤 신앙을 전하려고 했는지를 알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된 신앙은 우리가 상상하기도 어려운, 가장 처참한 순간에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희망을 찾겠다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께도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우리가 보이고 있는 삶의 태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태도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에스겔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누가복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하나님의 뜻과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도우신다고 말했습니다.

에스겔 시절에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칼을 들어 바벨론에 대항했던 이스라엘 백성이나, 누가복음 시절에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면서 칼을 들어 로마에 대항했던 이스라엘 백성이나, 이들이 취한 방식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고 생각했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지난주에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누가복음 23장에 나타난, 예수님 십자가 한 편에 함께 매달린 행악자는 예수님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지금 당장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그리스도가 왜 로마의 폭거 앞에 힘없이 죽어 가고 있냐고 외칩니다. 이 정치범의 외침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으로 이끌 그리스도라면 우리와 함께 칼을 들고 우리 앞에 서서 로마군을 무찔러야 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누구라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그런 이들을 향해서 다른 정치범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로마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그들의 폭력마저 품으신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에스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신앙입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는 너무나 폭력적입니다. 우리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폭력성이 우리 안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사과할 줄도 모르기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또 내 반대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기에 화해와 평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적대적 관계만이 확장되어 갈 뿐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 말씀을 예레미야의 말처럼 마음에 새기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만 살아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에 오늘 말씀에서 사가랴가 예언한 마지막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이 말씀이 여러분께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 이끄시는 평강의 길로만 나아가게 되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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